트럼프, 파키스탄 중재 수용…이란 "심각하게 분열" 명분
브렌트유 95달러 돌파…한국 원유수입 70.7% 호르무즈 통과 '비상'
브렌트유 95달러 돌파…한국 원유수입 70.7% 호르무즈 통과 '비상'
이미지 확대보기중동발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한국 경제의 최대 변수로 재부상했다.
미국과 이란 간 2차 평화협상이 개시 직전 무산되고 휴전이 무기한 연장된 가운데, 글로벌 원유·액화천연가스(LNG) 공급망의 핵심 관문인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 원유수입의 70.7%를 중동에 의존하고 수입 원유의 95%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구조여서 에너지 안보와 물가 관리에 빨간불이 켜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정부가 심각하게 분열돼 있고, 파키스탄의 아심 무니르 육군참모총장과 셰바즈 샤리프 총리의 요청에 따라 이란 지도부와 대표단이 통일된 제안을 내놓을 때까지 이란에 대한 공격을 보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협상 결렬 직전까지 갔던 긴박한 외교전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미군에 봉쇄 지속을 지시했다"며 지난 13일(현지시각) 시행에 들어간 해군의 이란 항구 봉쇄 조치는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휴전 연장과 동시에 경제 압박 카드는 더욱 조이겠다는 의미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릴 예정이던 2차 평화협상은 사실상 결렬 직전까지 갔다.
JD 밴스 부통령이 탑승 예정이던 에어포스2는 워싱턴 인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서 하루 종일 대기만 하다 이륙하지 못했다.
WSJ 21일자 보도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밴스 부통령,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존 랫클리프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 핵심 안보팀과 백악관에서 연쇄 회의를 가졌다.
측근들은 이 자리에서 이란 강경파가 대통령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어 협상 타결이 어려울 수 있다고 보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습 재개를 검토하면서도 확전에는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고 WSJ은 전했다.
이란의 반응은 냉담하다. 이란 국영 타스님통신은 이란 협상팀이 파키스탄 중재인을 통해 "미국이 적절한 합의에 도달하는 것을 방해하는 만큼 협상 참여는 시간 낭비"라며 불참 의사를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마흐디 모하마디 이란 의회 의장 자문관은 엑스(옛 트위터)에 "패자는 조건을 지시할 수 없다"며 "트럼프의 휴전 연장은 기습공격을 위한 시간 벌기"라고 주장했다.
아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은 "이란 항구 봉쇄는 전쟁 행위이자 휴전 위반"이라고 강도 높게 반발했다.
가디언이 21일자로 집계한 내용을 보면, 지난 2월 28일(현지시각) 개전 이후 이란에서 최소 3375명, 레바논에서 2290명 이상이 숨지는 등 사상자가 5500명을 넘어섰다.
이스라엘은 23명, 걸프 아랍국에서 12명 이상이 희생됐으며 미군 13명도 전사했다. 이란 반관영 타스님통신은 지난 14일(현지시각) 정부 대변인을 인용해 이란 측 물적 피해가 2700억 달러(약 398조 6820억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유가 재급등…한국 제조업 비용 압박 가중
이번 사태의 핵심 쟁점은 호르무즈 해협 통항권과 이란의 우라늄 농축 문제 두 가지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이달 발표한 4월 월간 석유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월 세계 석유 공급량은 하루 1010만 배럴 급감한 9700만 배럴을 기록했다.
IEA는 이를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급 차질"로 규정했다. 북해 브렌트유는 3월 한때 배럴당 130달러까지 치솟아 개전 이전보다 60달러나 뛰었다.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집계를 보면 21일(현지시각)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선물은 장중 한때 5% 급등해 배럴당 92달러를 돌파했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휴전 연장 발표 이후 90달러 수준으로 상승폭을 축소했다.
브렌트유 선물도 95달러 안팎에서 움직였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지난달 브렌트유 평균 가격이 배럴당 103달러를 기록했고, 2분기에는 115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유가 급등 파장은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달 국내 석유류 물가는 전년 동월보다 9.9% 급등해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세를 주도했다.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지난 20일 기준 리터당 2000원을 돌파했으며, 경북 포항 등 일부 지역에서는 경유 가격이 휘발유를 웃도는 가격 역전 현상도 나타났다.
산업연구원은 지난달 16일 발표한 '미국-이란 전쟁의 리스크 확산과 한국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두바이유 기준 국제유가가 전쟁 발발 전 배럴당 72달러 수준에서 103달러까지 40% 넘게 급등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국제유가가 10% 오르면 국내 제조업 전체 평균 생산비용이 0.71% 증가한다고 추정했다. 특히 석유제품 산업은 6.30%, 화학제품은 1.59%의 비용 상승 부담을 안을 것으로 봤다.
한국무역협회 통계를 보면 한국의 원유수입 중 중동 의존도는 70.7%에 이르고 이 중 95%가 호르무즈 해협을 경유한다. 나프타 수입의 54%도 같은 경로를 거친다.
다만 호르무즈 봉쇄 이후 정유업계가 수입선 다변화에 나서면서 지난달 비중동산 원유 수입액은 22억 470만 달러(약 3조 2545억원)로 전년보다 30.1% 늘었다.
미국산 원유는 13억 7804만 달러(약 2조 342억원)로 75.8% 급증했고, 호주와 말레이시아산도 각각 44.7%, 140% 늘었다.
정부는 지난 11일(국내 시각) 국회 본회의에서 26조 2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석유 최고가격제에 따른 정유사 손실 보전에 4조 2000억원, 소득 하위 70% 3580만 명에게 1인당 최소 10만원에서 최대 60만원을 지급하는 고유가 피해 지원금에 4조 8000억원이 배정됐다.
적자 국채 발행 없이 초과세수 25조 2000억원과 기금 자체 재원 1조원으로 충당하는 방식이다.
양기욱 산업통상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2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전쟁 기간 유럽 석유제품의 증감률은 한국의 상승률과 큰 차이가 나지 않고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더 낮은 수준"이라며 석유 최고가격제에 대한 일각의 비판을 반박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주요국의 휘발유 가격은 같은 기간 17% 안팎 올랐고 경유는 30% 이상 뛰어 한국보다 약 5%포인트 더 상승했다.
경제관련 연구기관에서는 "전쟁이 장기화하면 온 국민이 고통을 분담해야 하는 시점이 올 수 있다"며 "향후 얼마나 투입될지 알 수 없는 석유 최고가격제와 같은 제도는 빠르게 종료해야 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농축 우라늄·호르무즈 통제가 최대 쟁점
협상 테이블의 최대 난관은 이란의 농축 우라늄 처리 방안이다. 미국 측은 지난 11일 1차 협상에서 20년간 농축 중단을 제안했고, 이란은 5년을 역제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농축 전면 중단과 기존 농축 우라늄의 국외 반출을 요구하고 있다. 이란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서명국으로서 평화적 이용 권리를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호르무즈 해협 문제도 첨예하다. 로이터통신이 지난 20일 보도한 분석을 보면, 이란 혁명수비대 관계자는 호르무즈 해협을 "수십 년간 준비해온 황금 자산"으로 표현했다.
에브테삼 알케트비 에미레이트정책센터 소장은 로이터에 "지금 형성되는 것은 역사적 합의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분쟁의 정교한 설계"라고 비판했다.
걸프 아랍국들은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통항권만 다루고 미사일이나 대리 세력 문제를 제쳐둘 경우, 지역 안보가 구조적으로 악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마이클 싱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중동담당 선임국장은 WSJ에 "미국의 봉쇄는 이란이 먼저 무너질 것이라는 도박"이라며 "이란 정권은 생존을 걸고 싸우고 있고 석유 수출 중단을 견뎌낼 능력을 이미 보여줬다"고 말했다.
반면 마리아 술탄 남아시아전략안정연구소(SASSI) 사무총장은 알자지라 인터뷰에서 "24∼48시간 내 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며 "양측 모두 다음 단계 전쟁 비용이 지역과 세계 경제에 재앙적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고 전망했다.
향후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갈래로 갈린다. 첫째, 이란이 통일된 제안을 제출해 협상이 재개되고 단계적 봉쇄 완화와 농축 제한이 패키지로 타결되는 경로다.
둘째, 미국이 봉쇄 압박을 유지하는 가운데 이란 경제가 먼저 한계에 이르러 조건부 타결에 이르는 경우다. 셋째, 알자지라 분석처럼 '동결된 분쟁' 상태가 장기화해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상시 제약을 받는 구조가 굳어지는 상황이다.
어느 경로든 한국의 에너지 수급과 물가 관리에는 당분간 고변동성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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