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통해 백악관에 新제안 전달… 트럼프 상황실 긴급 회의 소집
수입 원유 95% 차단 한국, 브렌트유 배럴당 108달러 속 '에너지 비상'
수입 원유 95% 차단 한국, 브렌트유 배럴당 108달러 속 '에너지 비상'
이미지 확대보기알자지라, 뉴욕타임스, CBS뉴스, 악시오스 등 주요 외신은 27일(현지시각), 이란이 핵 문제를 일단 뒤로 미루고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과 전쟁 종식을 먼저 타결하자는 새로운 협상안을 파키스탄 중재단을 통해 백악관에 전달한 것으로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같은 날 국가안보팀과 긴급 상황실 회의를 열고 이 제안의 수용 여부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 59일째 이 수로가 사실상 봉쇄된 채 유지되면서 국제 원유 기준가인 브렌트유는 배럴당 108달러(약 15만 원)를 돌파했고, 수입 원유의 95%를 이 해협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도 경보음이 울리고 있다.
이란, '호르무즈 먼저, 핵은 나중에' 분리 협상 제안
미국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Axios)는 27일 미국 정부 관계자 1명과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 2명을 인용해 이란이 새 협상안을 미국 측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제안의 핵심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먼저 풀고 전쟁을 끝낸 뒤, 핵 프로그램 관련 협상은 별도 단계에서 진행하자는 것이다.
이란 외무장관 아바스 아라그치는 이슬라마바드 방문 기간 파키스탄·이집트·튀르키예·카타르 중재국 대표들에게 이란 지도부 내에서 미국의 핵 요구에 어떻게 응해야 할지를 두고 내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란에 최소 10년간 우라늄 농축 중단과 농축 우라늄의 국외 반출을 요구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도 이날 같은 내용을 확인하며, 이 안이 파키스탄 중재단을 통해 미국에 전달됐으며 해협 봉쇄 해제 후에야 핵 협상을 시작하는 구조라고 전했다.
이 제안이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전쟁 목표를 정면으로 건드린다는 점에서 수용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봉쇄 해제와 전쟁 종식은 향후 협상에서 이란의 농축 우라늄 재고 제거와 농축 중단을 압박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렛대를 사실상 없애버리는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백악관 대변인 올리비아 웨일스는 "민감한 외교 협의는 언론을 통해 진행하지 않는다. 미국은 모든 패를 쥐고 있으며, 이란이 핵무기를 갖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을 거래만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직접 전화하면 된다"… 파키스탄 협상 결렬 후 외교 공백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27일 파키스탄에서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와 재러드 쿠슈너를 통한 간접 협상을 추진했으나 이를 전격 취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모든 패를 쥐고 있다. 협상하고 싶으면 직접 오거나 전화하면 된다"고 말했다.
아라그치는 이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을 위해 도착했으며, 미국이 '과도한 요구'를 했기 때문에 이전 협상이 성과 없이 끝났다고 미국을 비판했다.
아라그치는 이번 러시아 방문 전 오만과 파키스탄을 잇달아 찾았다. 카타르 총리 겸 외무장관 셰이크 모하메드 빈 압둘라흐만 알타니는 이란 외무장관과의 통화에서 모든 당사자가 중재 노력에 참여해야 하고, 해상 항로를 개방하여 압박 수단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연구소 국제안보 프로그램 책임자 에마 쇼티스는 알자지라에 "트럼프가 주말에 파키스탄 특사 파견을 취소하면서 미국과 이란이 완전한 교착 상태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면서도 "이 상황의 변동성과 두 지도자의 성격을 감안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극도로 어렵다"고 말했다.
브렌트유 108달러… 한국 원유 95% 통로 59일째 막혀
국제 원유 기준가 브렌트유 6월물은 2% 이상 올라 배럴당 108달러(약 15만8800원)를 기록했으며, 미국산 서부텍사스원유(WTI)도 2% 넘게 올라 배럴당 96달러(약 14만 원)를 웃돌았다.
골드만삭스 분석가들은 페르시아만 수출 정상화 시점 전망을 6월 말로 늦추고, 브렌트유가 연말에 배럴당 90달러(약 13만2300원) 선에 머물 것으로 전망을 상향했다. 전쟁 전 전망치인 60달러(약 8만8200원)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한국입장에서 이 봉쇄는 남다른 타격이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약 70%가 중동산이며, 이 가운데 95%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경유한다.
한국무역협회는 우회 항로를 이용할 경우 해상운임이 기존 대비 최대 50~80% 오를 것으로 분석했으며, 과거 분쟁 당시 화물 보험료가 최대 7배까지 할증된 사례도 있다.
에너지 분석기관 제로 카본 애널리틱스(Zero Carbon Analytics)는 에너지 안보 취약도 평가에서 일본에 이어 한국을 두 번째로 위험도가 높은 나라로 분류했다.
미국 내 휘발유 전국 평균 가격은 갤런당 4.11달러(약 6000원)로 전쟁 시작 이후 37% 올랐으며, 경유는 갤런당 5.46달러(약 8000원)로 45% 급등했다. 한국도 서울 주유소 기름값이 전쟁 시작 이후 18% 이상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콜럼비아대학교 글로벌에너지정책센터 창립 소장 제이슨 보르도프는 뉴욕타임스에 "물리적 공급 부족이 아시아에 먼저 나타나고 있으며 유럽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은 가장 마지막으로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번 사태로 한국의 2026년 경제성장률이 기존 전망치 2.1%에서 1.7%로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는데, 이는 주요국 가운데 가장 큰 하락폭이다.
협상 타결까지 넘어야 할 산
전문가들은 이란의 새 제안이 협상을 촉진하기보다는 미·이란 간 요구 격차가 얼마나 큰지를 재차 확인시켜 준다고 본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새로운 해양 관리 체제 수립, 미국의 불가침 보장, 전쟁 배상금, 제재 전면 해제를 요구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핵 프로그램 포기를 핵심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어 양측 입장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에너지 전문가들과 정치 분석가들은 설령 전쟁이 내일 끝나더라도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통항이 전쟁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이번 사태가 자유로운 해상 통행이 얼마나 쉽게 차단될 수 있는지를 증명했기 때문에 위험 부담과 비용이 항구적으로 높아질 것이라는 게 이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소장 애덤 포즌은 "지금 이 순간의 스냅샷으로는 미국이 직접적인 피해를 덜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지나치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한국 정부는 현재 208일분의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으며 자원안보 위기경보를 '경계' 단계로 격상한 상태다. 그러나 증권업계에서는 "봉쇄가 수개월 이상 이어지면 한국의 성장률이 1%대 초반으로 떨어지고 소비자물가는 5%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란 외무장관은 이날 러시아에서 푸틴 대통령과 만나 "미국의 잘못된 접근과 과도한 요구 때문에 이전 협상이 진전에도 목표에 이르지 못했다"고 밝혔다.
아라그치의 모스크바 방문은 러시아의 외교적 지렛대를 활용하고 향후 대결 국면에 대비하는 이중 포석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새 제안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해협 봉쇄 압박을 이어갈지에 따라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향방이 좌우될 전망이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