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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 협상 후순위로 미룬 '3단계 평화안' 제시…트럼프 "불만족" 즉각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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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 협상 후순위로 미룬 '3단계 평화안' 제시…트럼프 "불만족" 즉각 거부

트럼프 "핵은 처음부터 다뤄야"…루비오 "이란, 시간 벌기 전술"
이란 저장 여유 최대 22일…오는 5월 중순 하루 150만 배럴 추가 감산 위기
호르무즈 해협 지나는 유조선. 사진=연합뉴스 이미지 확대보기
호르무즈 해협 지나는 유조선. 사진=연합뉴스
로이터통신·월스트리트저널·CNN·CBS뉴스·BBC·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들은 28일(현지시각), 이란이 핵 프로그램 논의를 전쟁 종료 이후로 미루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먼저 해제하는 '3단계 평화안'을 미국에 제시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만족하지 못한다"며 즉각 거부하면서 전쟁 9주째를 맞는 미·이란 교착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클플러(Kpler)는 28일(현지시각) 이란의 원유 저장 가용 기간이 최대 22일에 불과하다고 경고했다. 국제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 선물은 같은 날 배럴당 108달러 68센트(약 16만 원)까지 올랐다.

이란의 '핵 후순위' 3단계 협상안…트럼프 즉각 거부

로이터통신이 28일(현지시각) 복수의 이란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이란은 아바스 아라그치 외교부 장관이 지난 주말 이슬라마바드를 두 차례 방문하며 중재국에 전달한 새 협상안에서 전쟁 종료와 핵 프로그램 논의를 별개로 처리할 것을 제안했다.
아라그치 장관은 28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도 회담했다.

이란의 3단계 구상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단계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끝내고 재개 불가 보장을 제공하면, 두 번째 단계에서 미 해군의 이란 항만 봉쇄 해제와 호르무즈 해협 관리 문제를 협의한다.

이후 세 번째 단계에 가서야 핵 프로그램 논의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란은 우라늄 농축 권리에 대한 미국의 인정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 안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자신의 월요일 안보팀 회의 내용을 전한 미 관리는 "트럼프 대통령은 핵 문제가 처음부터 다뤄져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이란의 제안에 만족하지 못했다"고 로이터통신에 익명을 전제로 말했다.

CNN도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가 이 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고 전했다.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이란의 협상안이 "예상보다는 낫다"고 평가하면서도 "이란의 급진 성직자 정권이 권력을 유지하는 한 언젠가는 핵무기를 원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며 "핵 문제는 여전히 핵심 사안"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별도로 "이란은 협상에 능한 나라"라면서 "시간을 버는 전술을 허용할 수 없다"고도 강조했다.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INSS)의 이란 프로그램 책임자인 라즈 짐트 박사는 소셜미디어 X에 올린 글에서 "전쟁 종료 후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나중에도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고 지적했다.

저장 여유 최대 22일…골드만삭스 "이미 하루 250만 배럴 감산"


28일(현지시각) 블룸버그와 비즈니스스탠더드 등에 따르면, 클플러는 이날 보고서에서 이란의 남은 육상 원유 저장 여유 기간이 12~22일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이 기간이 지나면 오는 5월 중순까지 이란이 하루 150만 배럴을 추가로 감산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클플러는 내다봤다.

미 해군이 4월 13일(현지시각) 이란 항만 봉쇄를 단행한 뒤 이란의 원유 수출은 격감했다. 클플러에 따르면 봉쇄 이전인 지난 3월 이란의 하루 평균 원유 수출량은 185만 배럴이었으나, 봉쇄 이후(4월 14~23일) 56만 7천 배럴로 약 70% 급감했다.

전쟁 전인 올해 2월에는 하루 200만 배럴을 수출했다. 클플러의 호마윤 팔라크샤히 원유 분석 책임자는 뉴스위크에 "봉쇄가 유지될 경우 이란의 원유 생산이 현재 하루 275만 배럴에서 120만~130만 배럴로 떨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분석에서 이란이 전쟁 발발(2월 28일) 이후 이미 하루 250만 배럴의 원유 생산을 줄인 것으로 추산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등 주변 산유국들도 전쟁 영향으로 생산을 줄이고 있다.

이란은 원유 저장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긴급 대책을 동원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이란은 아바즈, 아살루예 등 남부 석유 거점에서 오랫동안 방치됐던 노후 탱크와 임시 컨테이너를 동원하고, 중국 이우·시안으로 이어지는 철로를 통한 원유 수출도 모색하고 있다.

선박 추적 기업 탱커트래커스에 따르면 이란은 30년 된 초대형 유조선을 다시 꺼내 원유 해상 저장에 활용하고 있다. 콜럼비아대학교 에너지 정책 전문가인 에리카 다운스 박사는 "절박한 상황은 절박한 조치를 부른다"고 월스트리트저널에 말했다.

클플러는 지금까지 미 해군 봉쇄선을 돌파한 이란 유조선이 단 한 척도 관측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란의 재정 타격은 원유 대금 결제 특성상 3~4개월 뒤에야 본격화할 전망이다.

이란산 원유가 주요 소비처인 중국 항구에 도착하기까지 약 2개월, 대금 결제에 또 2개월이 걸리기 때문이다.

글로벌 공급 충격…한국도 수입 원유 95% '직격탄'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세계 경제에 광범위한 파장을 내고 있다. 해협을 오가는 선박 수는 전쟁 전 하루 138척(미 합동해양정보센터 기준)에서 최근 4척 수준으로 급감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번 사태를 "사상 최대의 에너지 공급 충격"으로 규정했으며, 대서양위원회는 클플러 데이터를 토대로 이달 말까지 누적 공급 손실이 6억 5천만 배럴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공급망 충격은 석유 이외 분야로도 번졌다. 로이터통신은 이란의 사우디아라비아 주바일 석유화학 단지 공습으로 세계 고순도 폴리페닐렌에테르(PPE) 수지 공급의 약 70%를 담당하는 사우디 화학기업 사빅(SABIC)의 생산이 중단되면서 인쇄회로기판(PCB) 가격이 4월 한 달에만 최대 40% 급등했다고 골드만삭스 메모를 인용해 보도했다. PCB는 사실상 모든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이다.

한국은 수입 원유의 약 7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수입 원유의 95%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구조다. 이란은 봉쇄에 따른 이란 원유 탱커 나포를 "공해상의 노골적인 약탈 행위"라고 비난했으며, 미 재무부는 이란 제재 대상 항공사와 거래하는 제3국 기업에 대한 미국 제재 가능성을 경고했다.

외교 공전…러시아 중재·유엔 핵 회의 충돌


아라그치 장관은 28일 푸틴 대통령과 약 90분에 걸친 회담 후 "미국은 목표 중 어느 하나도 달성하지 못했다"며 "그래서 협상을 요청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크렘린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러시아가 "양측 모두 수용 가능한 선의의 중재 서비스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이미 이란과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맺고 있으며, 유럽 정보기관들은 러시아가 이란에 첨단 드론 기술을 지원할 가능성을 경고한 상태다. 모스크바는 이란의 농축 우라늄 보관을 제안했으나 워싱턴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같은 날 유엔(UN) 본부에서는 핵비확산조약(NPT) 검토회의가 개막하면서 미·이란 간 정면충돌이 벌어졌다.

크리스토퍼 여우 미 국무부 군비통제·비확산 담당 차관보는 이란이 34명의 회의 부의장단에 선출된 것을 두고 "NPT에 대한 모욕이자 이 회의 신뢰성에 대한 수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레자 나자피 이란 주유엔 빈 대사는 "핵무기를 사용한 유일한 국가인 미국이 준수 여부의 심판자를 자처하는 것은 옹호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앙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안보리 해사 안보 회의에서 "이란을 포함한 걸프 지역의 제약이 텅 빈 연료 탱크, 텅 빈 선반, 텅 빈 식탁으로 연결되고 있다"며 호르무즈 해협의 조속한 재개방을 촉구했다.

수십 개국도 바레인 주도의 공동성명을 통해 해협의 "시급하고 방해 없는 재개방"을 요구했다.

레바논에서는 4월 16일(현지시각) 미국 중재로 발표된 휴전이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이스라엘군과 헤즈볼라가 드론 공격을 주고받으면서 레바논의 3월 2일 이후 사망자는 2521명, 부상자는 7804명으로 늘었다.

전망: 협상의 분기점은 '저장고 포화' 시점


협상의 관건은 이란이 원유 저장 한계에 몰리기 전에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느냐다. 런던 채텀하우스의 사남 바킬 중동·북아프리카 프로그램 국장은 월스트리트저널에 "생산 중단은 압박을 가중시키고 협상 동기를 자극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정 충격이 3~4개월 뒤에야 본격화하는 구조여서 이란이 단기간 내 협상을 서두를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도 있다.

워싱턴 안팎에서도 압박이 거세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는 가운데, 미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이번 주 전쟁 권한 결의안에 대한 여섯 번째 표결을 강제할 방침이다.

시티인덱스와 포렉스닷컴의 시장 분석가 파와드 라자크자다는 "원유 거래자들에게 이제 수사가 아니라 호르무즈 해협을 실제 통과하는 원유의 물리적 흐름이 중요하다"며 "그 흐름은 지금 여전히 억제돼 있다"고 밝혔다.

대서양위원회는 "이번 위기는 1973년 오일 쇼크 당시 세계 석유 생산의 7%가 줄어든 것과 비교해 현재 약 13%가 차단된, 사상 유례없는 물리적 공급 충격"이라고 분석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