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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돈으로 中 드론부품 사는 우크라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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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돈으로 中 드론부품 사는 우크라 딜레마

600억유로 방위차관 첫 배정분서 예외 인정…유럽 방산 자립 한계 드러나
지난 2019년 11월 13일(현지시각)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중국 드론업체 DJI의 드론 추적 앱 시연 중 드론 한 대가 하늘에 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2019년 11월 13일(현지시각)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중국 드론업체 DJI의 드론 추적 앱 시연 중 드론 한 대가 하늘에 떠 있다. 사진=로이터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EU) 방위 차관 자금으로 중국산 드론 부품을 살 수 있게 됐다.

유럽산 조달을 원칙으로 내세운 EU가 전장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중국산 핵심 부품 구매를 예외적으로 허용한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우크라이나가 60억유로(약 10조2000억원) 규모 EU 방위 차관 첫 배정분 가운데 일부를 중국산 드론 부품 구매에 쓸 수 있도록 예외를 인정받았다고 1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 자금은 더 큰 규모의 우크라이나 지원 대출 중 방위 조달에 배정된 600억유로(약 102조2000억원)의 첫 집행분이다.
이번 결정은 유럽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통해 역내 방위산업 기반을 키우려 하면서도 실제 전장에서는 여전히 중국산 부품에 의존하고 있음을 드러낸다는 분석이다.

◇ 드론 조달 5.9조유로 예외 적용


우크라이나가 예외를 인정받은 자금은 드론 조달에 집중된다.

FT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59억유로(약 10조원) 규모 첫 방위 조달분에 대해 특정 중국산 부품을 살 수 있도록 EU에 예외를 요청했고 이를 승인받았다. 유럽에서 충분한 물량을 빠르게 확보하기 어려운 부품이 대상이다.

EU 차관 조건상 방위 물자는 원칙적으로 EU 단일시장과 우크라이나, 캐나다 등 승인된 파트너 국가에서 조달해야 한다. 영국도 14일 이 체계에 참여했다. 다른 동맹국도 EU와 안보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제도에 기여하면 조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승인되지 않은 국가의 부품은 계약 가치의 35%를 넘을 수 없다. 방산 구매가 EU의 안보와 방위 이익에 반해서도 안 된다는 조건도 있다.

그러나 예외 조항이 있다. 우크라이나가 필요한 물자를 승인된 국가에서 충분히 빠르게 또는 필요한 물량만큼 확보할 수 없으면 EU 집행위원회에 다른 국가 조달 허가를 요청할 수 있다. 이번 중국산 드론 부품 구매는 이 예외 조항을 적용한 사례다.

◇ 전장은 드론이 지배


우크라이나가 중국산 부품 구매를 요구한 배경에는 드론전의 압도적 비중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4년 넘게 이어지며 드론 중심 전쟁으로 바뀌었다. 정찰과 포병 유도, 자폭 공격, 참호 타격, 전차 추적까지 드론이 전장의 거의 모든 단계에 관여한다.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은 러시아군 전장 사상자의 약 80%가 드론에 의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이 수치가 정확히 검증된 것은 아니지만 드론이 전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졌다는 점은 분명하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공습과 포격 속에서도 유럽에서 가장 혁신적인 방위산업 중 하나를 만들어냈다. 국내 드론 생산업체들은 빠른 개량과 대량 생산, 전장 피드백 반영에서 기존 유럽 방산업체보다 민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드론 소모 속도는 생산 능력을 앞지르고 있다. 모터와 배터리, 카메라, 통신 장치, 전자부품 등 특정 부품은 유럽과 우크라이나 자체 공급만으로 수요를 맞추기 어렵다.

◇ 중국은 양쪽 모두의 공급원


이번 결정은 중국의 복합적 위치도 드러낸다.

EU는 중국을 러시아 전쟁 수행의 핵심 조력자로 비판해왔다. 중국 기업들이 러시아 군수산업에 필요한 부품과 장비를 공급한다는 이유에서다. 유럽은 중국이 러시아의 군사·산업 기반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보고 압박을 강화해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무기 생산망도 중국 부품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상업용 드론 생태계와 전자부품 공급망에서 중국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전 세계 드론 부품과 배터리, 카메라, 모터 상당 부분은 중국 공급망에 얽혀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쪽의 전쟁 수행에 간접적으로 연결되는 공급원이 됐다. EU가 중국을 러시아 지원 문제로 비판하면서도 우크라이나에는 중국산 부품 구매를 허용한 것은 전시 조달의 현실을 반영한다.

◇ 유럽 방산 자립의 빈틈


EU는 우크라이나 지원을 단순한 군사 원조에 그치지 않고 역내 방위산업 육성과 연결해왔다. EU 자금으로 무기와 장비를 조달할 경우 원칙적으로 유럽산이나 승인된 파트너국 제품을 쓰도록 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러나 드론 부품 예외는 이 전략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통적 무기체계에서는 유럽 방산업체가 강점을 갖고 있지만 소형 드론과 상업용 전자부품, 빠른 대량 생산 분야에서는 중국 공급망의 비중이 크다.

우크라이나가 필요한 것은 몇 년 뒤 납품될 첨단 무기만이 아니다. 매일 전장에서 소모되는 수천대의 드론과 즉시 조립 가능한 부품이다. 유럽 방산업계가 이런 속도와 가격, 물량을 맞추지 못하면 우크라이나는 중국산 부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EU가 예외를 허용한 것은 정치적으로 불편한 결정이지만 군사적으로는 현실적 선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35% 규정과 예외의 긴장


이번 사안은 EU 방위 조달 규정의 경계도 시험한다.

EU는 승인되지 않은 국가 부품 비중을 35% 이하로 제한해 역내 산업 육성과 안보 통제를 동시에 노린다. 이 규정은 한국과 미국, 튀르키예 등 비EU 방산업체의 접근에도 영향을 준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장에서는 특정 부품을 빠르게 구하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조달 속도가 늦어질 수 있고, 이는 전장 대응력 약화로 이어진다.

이번 예외는 EU가 원칙을 유지하되 전시 상황에서는 일부 유연성을 인정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런 예외가 반복되면 EU가 내세운 방산 자립과 역내 조달 원칙의 실효성도 논란이 될 수 있다.

특히 중국산 부품은 안보 검증과 공급망 통제 문제가 따라붙는다. 전자부품과 통신장비는 성능뿐 아니라 보안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 우크라이나가 어떤 부품을 어느 범위에서 조달하는지에 따라 논란의 크기는 달라질 수 있다.

◇ 우크라이나 지원의 새 현실


이번 결정은 우크라이나 지원이 단순한 자금 제공을 넘어 공급망 전쟁으로 바뀌고 있음을 시사한다.

EU는 900억유로 규모 우크라이나 지원대출을 통해 재정 안정과 방위 조달을 함께 지원하고 있다. 이 가운데 600억유로는 방위 지원에 배정됐다. 올해에는 283억유로가 우크라이나 방위산업 역량 지원에 집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자금이 있어도 필요한 물자를 원하는 시점에 살 수 있어야 한다. 드론 부품처럼 민간 기술과 군사 수요가 결합된 분야에서는 중국 의존을 단기간에 끊기 어렵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