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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 월가 황제의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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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 월가 황제의 충고

"현재 가격에서는 주식도, 장기 미국 국채도 사지 않겠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CEO/로이터  이미지 확대보기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CEO/로이터

뉴욕 증시의 S&P500 지수가 인공지능(AI) 열풍과 인플레이션 둔화세에 힘입어 올해 들어서만 10% 가까이 치솟던 순간,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 최고경영자(CEO)가 내던진 단호한 일갈이다. 모두가 낙관론에 취해 샴페인을 터뜨릴 때, '월가의 황제'로 불리는 그는 CNBC와의 인터뷰를 통해 세계 경제가 직면한 거대한 위험을 시장이 심각하게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정면으로 경고했다.

다이먼 CEO가 제시한 시장의 핵심 위험 요인은 구체적이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이어지는 전쟁, 격화하는 미·중 갈등, 그리고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정부 재정적자와 군사비 지출이다. 그는 "낙타의 등에 지푸라기가 계속 쌓이다 보면 결국 뼈가 부러지는 임계점에 도달한다"며, 현재의 지정학적·재정적 악재들이 언제든 시장을 뒤흔들 변곡점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특히 미국의 지속적인 재정적자가 결국 국채 시장에 치명적인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부 부채를 떠안는 대가로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하는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s)'이 등판하면서 금리를 끌어올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연방준비제도(Fed)의 목표치인 2%까지 내려가더라도 10년물 미국 국채 금리는 4~4.5% 수준을 유지해야 정상이며, 따라서 국채 가격의 추가 상승 여력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주식 시장 역시 고평가 상태라고 단언했다. 개별 우수 종목이라면 몰라도, 현재의 밸류에이션 수준에서 시장 전체를 매수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입장이다. 증시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AI 투자 열풍에 대해서도 닷컴 버블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환기했다. 인터넷 초기 강자였던 야후와 넷스케이프는 사라지고 결국 구글과 페이스북이 승자가 되었듯, AI 역시 산업을 변화시키겠지만 투자자들이 기대하는 방식이나 시간표대로 성과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냉정한 진단이다.

제이미 다이먼은 1956년 뉴욕 퀸스의 그리스계 미국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3대에 걸친 금융가 집안이었다. 증조부 시절 미국으로 이주하며 성을 '다이먼'으로 바꾸었고, 할아버지와 아버지 샌디 다이먼 모두 증권 중개인으로 활약했다. 어린 시절부터 식탁에서 주식 시장과 경제 지표를 논하며 자란 배경이 그의 금융 감각을 형성했다.터프츠 대학교에서 심리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다이먼은 하버드 경영대학원(HBS)을 최우수 등급(Baker Scholar)으로 졸업했다. 당시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등 주요 투자은행들이 제시한 거액의 연봉을 거절하고, 그는 금융계의 신성이었던 샌디 와일(Sandy Weill)의 비서 자리를 선택했다. 연봉은 절반 수준이었으나 기업 인수합병과 경영 실무를 현장에서 직접 배우겠다는 결단이었다.

샌디 와일과 제이미 다이먼은 월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콤비였다. 와일이 과감한 M&A를 지휘하는 전략가였다면, 다이먼은 치밀한 리스크 관리와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운영의 핵심이었다.두 사람은 상업신용공사를 시작으로 프라이메리카, 트래블러스 그룹 등을 연이어 인수했다. 이어 1998년에는 당시 세계 최대 은행이었던 시티코프와 트래블러스의 전격 합병을 성사시키며 거대 금융 공룡 시티그룹(Citigroup)을 출범시켰다. 이로써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장벽을 허문 '유니버설 뱅킹'의 시대가 열렸다.권력의 정상에서 스승과의 갈등이 불거졌다. 경영 권력 분점과 후계 구도를 둘러싼 대립 끝에, 1998년 11월 다이먼은 16년간 몸담았던 시티그룹에서 전격 해임되었다.

해임 이후 2년간 야인으로 지내던 다이먼은 2000년 만성 부실에 시달리던 시카고의 중견 은행 뱅크원(Bank One)의 CEO로 복귀했다.그는 즉각 고강도 개혁에 착수했다. 방만한 지출을 철저히 통제하고, 전산 시스템을 하나로 통합했으며, 부실 채권을 과감히 정리해 대차대조표를 건전화했다. 부실에 허덕이던 뱅크원은 단 4년 만에 미국 내 최우수 알짜 은행으로 탈바꿈했다.이 성과를 눈여겨본 JP모건체이스는 2004년 뱅크원을 580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다이먼을 차기 CEO로 지목했다. 2005년 12월, 다이먼은 마침내 JP모건체이스의 수장에 오르며 월가의 중심에 복귀했다.

제이미 다이먼이 '월가의 황제'로 입지를 확고히 한 계기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레먼 브라더스가 파산하고 시티그룹과 메릴린치가 휘청거릴 때, JP모건체이스는 유일하게 견고하게 버텼다.이 비결은 다이먼이 고수해 온 '요새 재무제표(Fortress Balance Sheet)' 철학에 있었다. 그는 당장의 수익성이 높더라도 리스크를 측정하기 어려운 파생상품 투자를 철저히 제한하고, 최악의 사태에 대비한 유동성과 자본 적정성을 유지했다.그 결과 JP모건체이스는 정부 구제금융 없이 위기를 견뎌냈을 뿐만 아니라, 붕괴 위기에 처했던 투자은행 베어스턴스(Bear Stearns)와 최대 저축은행 워싱턴뮤추얼(Washington Mutual)을 연이어 인수했다. 위기 속에서 대형 자산들을 인수하며 JP모건체이스는 자산, 예금, 투자은행 전 부문에서 미국 1위 은행으로 도약했다.

다이먼은 금융계를 넘어 미국 정치·경제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그는 자신을 '사회적으로는 진보, 재정적으로는 보수'라고 정의한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초기에는 재무장관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금융규제 법안인 '도드-프랭크법'을 두고 행정부와 대립하며 거리를 두었다.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관계 역시 실용주의적 입장을 취해 왔다. 트럼프 1기 시절 대통령 직속 전략정책포럼에 참여해 법인세 감세와 규제 완화를 지지했으나, 2021년 의회 의사당 난입 사태 등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그럼에도 최근 다보스포럼 등에서는 트럼프의 NATO 관련 입장 및 대중국 정책의 성과를 인정하는 등 진영에 매이지 않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국 정치권에서는 공화당과 민주당을 가리지 않고 국가적 위기 때마다 그의 이름을 재무장관이나 대권 후보로 거론하곤 한다.

오늘날 JP모건체이스는 글로벌 금융 자본주의의 중심에 서 있다. 그 자리를 20년 가깝게 지켜온 제이미 다이먼의 리더십은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모두가 시장의 상승세에 열광할 때 대차대조표의 건전성을 점검하고, 지정학적 리스크와 재정 적자의 위험을 경고하는 그의 행보는 철저한 현실 감각에 기반하고 있다.

"낙타의 등에 지푸라기가 쌓이다 보면 결국 뼈가 부러진다." 다이먼의 최근 발언은 자산 가격 상승에 가려진 시장의 구조적 위험을 직시하라는 엄중한 경고다. 시장이 환호에 도취되어 있는 지금, 그의 경고는 투자자들이 무엇을 점검해야 하는지 명확히 가리키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