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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인데 경력부터 요구…美 대졸자 취업문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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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인데 경력부터 요구…美 대졸자 취업문 닫혔다

무경력 허용 공고 4년 새 73% 급감…채용 50건 중 1건뿐, 지원자는 3배로
지난 2017년 5월 12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남가주대(USC) 졸업식에서 한 졸업생이 학사모를 들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2017년 5월 12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남가주대(USC) 졸업식에서 한 졸업생이 학사모를 들고 있다. 사진=로이터

미국에서 대학 졸업생이 지원할 수 있는 ‘진짜 신입 일자리’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기업들이 신입사원을 채용해 업무를 가르치기보다 입사 직후부터 바로 일할 수 있는 경력자를 선호하면서 경력이 없는 지원자를 받아주는 사무직 공고가 50건 가운데 1건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처음 취업하려면 경력이 필요하지만 취업하지 못하면 경력을 쌓을 수도 없는 악순환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채용 플랫폼 캐디언트가 지난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동일한 기업군이 게시한 사무직 채용공고 7984건을 분석한 결과 경력이 전혀 없는 지원자를 받는 공고의 비중이 4년 동안 73% 감소했다며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3일(현지시각) 이같이 보도했다.

◇‘신입 채용’인데도 경험부터 요구

캐디언트에 따르면 2022년에는 사무직 채용공고 15건 가운데 1건이 경력 없는 지원자의 지원을 허용했다. 2026년에는 이 비율이 50건 가운데 1건으로 줄었다.

채용공고 100건을 살펴보더라도 대학을 갓 졸업한 무경력자가 명확하게 지원할 수 있는 자리는 2건 정도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조사 대상 기업들의 사무직 채용공고 자체도 4년 사이 27% 줄었다.

일자리는 감소했지만 공고 하나에 지원하는 사람은 2022년보다 세 배 이상 늘었다. 신입 지원자는 줄어든 자리를 놓고 같은 졸업생뿐 아니라 이미 경력을 쌓은 구직자와도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반면 고위 경력자를 요구하는 공고는 두 배로 늘었다.

기업들이 경력이 없는 초보자를 교육하기보다 업무 경험이 풍부해 즉시 투입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방향으로 채용방식을 바꾸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 분석은 IT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보건의료와 정부기관, 전력·수도 등 공공서비스, 교통 분야를 포함해 AI가 아직 대규모로 일자리를 대체하지 않았다고 여겨지는 업종도 조사 대상에 들어갔다.

경력직 선호 현상이 기술업계의 감원이나 AI 도입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일상적인 서비스와 공공부문까지 확산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만 7984건은 일정한 기업군의 채용 변화를 추적한 자료다. 미국 전체 기업의 모든 채용공고를 조사한 통계는 아니므로 구체적인 비율을 미국 고용시장 전체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취업해야 경력 쌓는데 경력 없으면 탈락

최근 미국 대학 졸업생이 처한 가장 큰 문제는 첫 경력을 시작할 기회 자체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신입사원은 직장에서 기초 업무를 배우고 실무 경험을 쌓은 뒤 더 높은 단계의 직무로 이동한다.

그러나 기업이 초급 일자리에도 1년이나 2년 이상의 경험을 요구하면 졸업생은 첫 직장에 들어갈 수 없다.

취업하려면 경력이 필요하고 경력을 얻으려면 먼저 취업해야 하는 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미국 대졸 청년의 실업률에도 반영되고 있다. 22∼27세의 최근 대졸자 실업률은 5.6%로 미국 전체 근로자 실업률 4.2%보다 1.4%포인트 높았다.

일반적으로 대학 학위는 실업 위험을 낮추는 요인으로 여겨졌지만 사회에 처음 진입하는 대졸자는 전체 근로자보다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기업들이 학위보다 경력을 중시하면서 채용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캐디언트에 따르면 미국 전체 고용의 약 27%는 통상 2년제나 4년제 대학 학위를 요구하는 직종에 속한다.

최근에는 대학 학위는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관련 업무 경험을 요구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만으로 업무 능력을 인정하기보다 이전 직장에서 비슷한 일을 해봤는지를 먼저 확인한다는 의미다.

이 경우 대졸 신입은 학위를 갖고도 경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탈락할 수 있다. 학위가 없는 경력자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인턴 경험도 자동심사 통과 장담 못해

캐디언트에 따르면 대학 재학 중 인턴으로 일한 경험이 기업이 요구하는 경력으로 인정될 수는 있다. 그러나 인턴 경험을 정식 근무 경력으로 볼지는 기업마다 다르다고 캐디언트는 지적했다.

같은 직무의 인턴을 몇 달간 수행했더라도 채용공고가 ‘1년 이상의 실무 경력’을 요구하면 지원 단계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있다.

더 큰 문제는 지원서를 사람보다 채용관리시스템이 먼저 심사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채용관리시스템은 기업이 지원자의 이력서와 지원서를 접수하고 분류하는 프로그램이다.

기업은 학력과 기술, 자격증, 직무 관련 단어, 근무연수 등을 기준으로 지원자를 자동으로 걸러낼 수 있다.

지원자가 실제로 업무를 수행할 능력이 있더라도 이력서에 회사가 설정한 핵심 단어나 경력연수가 없으면 채용 담당자가 읽어보기도 전에 탈락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업이 최소 경력 1년을 자동심사 조건으로 설정하면 10개월 동안 인턴으로 일한 졸업생은 다른 능력을 평가받기 전에 제외될 수 있다.

빌 매스틴 캐디언트 최고경영자(CEO)는 “인턴 경험을 경력으로 인정할지는 회사마다 다르지만 디지털 채용시스템이 지원자를 경력연수와 핵심 단어로 먼저 걸러내는 과정이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런 방식은 지원자가 가진 잠재력이나 학교 프로젝트, 봉사활동, 비정규 업무 경험을 채용 담당자가 직접 살펴볼 기회를 줄인다.

경험이 없는 신입을 교육해 키우는 방식에서 이미 필요한 경험을 갖춘 사람만 선별하는 방식으로 채용의 중심이 옮겨가는 것이다.

미국대학고용주협회도 2026년 졸업생 채용이 정체된 가운데 기업들이 인턴 경험과 실제 업무능력, 직무 준비도를 계속 중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캐디언트 조사에서 드러난 변화는 단순히 신입 채용공고가 줄어든 데 그치지 않는다.

기업이 사회초년생에게 경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줄이면서 대학 졸업생이 첫 경력을 어디에서 어떻게 쌓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존 고용 구조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의미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