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즉위 후 국민과 소통하며 왕실 현대화·통합 행보
장남 호콘 왕세자 자동 승계…공식 칭호 '호콘 8세'
장남 호콘 왕세자 자동 승계…공식 칭호 '호콘 8세'
이미지 확대보기AFP를 포함한 외신 등에 따르면 이날 노르웨이 왕실은 이날 성명을 통해 "하랄 5세 국왕이 오늘 서거했음을 알리게 돼 매우 슬프다"며 "국왕은 오늘 오전 6시35분 오슬로 대학병원에서 평화롭게 영면했다"고 밝혔다.
하랄 5세의 서거로 장남인 호콘 왕세자(53)가 자동으로 왕위를 이어받는다. 새 국왕의 공식 칭호는 호콘 8세이며, 왕실의 공식 구호는 선대부터 이어져 온 '모든 것을 노르웨이를 위해'를 계속 사용한다. 장례식과 새 국왕의 즉위 일정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하랄 5세는 용혈성 빈혈 치료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으로 지난 17일부터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이후 혈액 내 세균 감염으로 지난 주말부터 병세가 급격히 악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지 확대보기요나스 가르 스퇴르 노르웨이 총리는 "나라 전체가 슬픔에 빠졌다"며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하랄 5세는 노르웨이 국민에게 한결같은 믿음을 보여줬고, 우리가 우리 자신과 서로에게서 가장 좋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애도했다.
하랄 5세는 1991년 부친 올라브 5세가 서거한 뒤 왕위에 올라 35년간 재위했다. 최근 크고 작은 건강 문제로 공식 활동을 줄이기는 했지만, 의회에서 '평생 서약'을 했다며 호콘 왕세자에게 양위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왕위를 지켰다.
정치적 권한은 제한적이었지만 하랄 5세는 왕실 현대화를 추진하고 전국을 돌며 시민들과 직접 소통하는 등 소탈하고 통합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이 때문에 왕실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높은 국민적 인기를 유지하며 노르웨이 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조부인 호콘 7세 역시 나치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고 노르웨이 정부와 함께 영국으로 망명해 국민적 존경을 받은 인물이다. 이러한 왕실의 전쟁 경험과 하랄 5세의 통합적 행보는 노르웨이에서 왕실에 대한 지지를 유지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노르웨이 국민의 약 3분의 2가 왕실 존치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지 확대보기하랄 5세는 스포츠에서도 남다른 경력을 남겼다. 선왕 올라브 5세가 1928년 올림픽 요트 금메달리스트였던 것처럼 하랄 5세 역시 요트 선수로 활약했다. 여러 차례 노르웨이 국기를 달고 올림픽에 출전했고 1987년에는 요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결혼 역시 당시 유럽 왕실의 관행을 고려하면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하랄 5세는 왕실이 귀족 가문 출신 여성과 결혼하라고 압박했지만 9년 동안 이를 거부하고 고교 시절 연인이었던 사업가의 딸 소냐 하랄센과의 결혼을 고집했다.
부친 올라브 5세는 평민 여성과의 결혼이 왕실의 입지를 약화시킬 것을 우려했지만, 결국 결혼을 허락했다. 1968년 8월 열린 당시 하랄 왕세자와 소냐의 결혼식에는 노르웨이 국민들이 열렬히 호응했다. 소냐 왕비는 이후 약 60년간 하랄 5세와 함께하며 그의 마지막 순간까지 곁을 지켰다.
하랄 5세의 선택은 이후 자녀들의 결혼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호콘 왕세자는 결혼 전 아들을 둔 미혼모 출신의 평민 여성 메테마리트와 결혼했고, 딸 마르타 루이세 공주는 2024년 미국의 유명 무속인과 결혼했다.
국가적 위기 때 국민을 위로하는 역할도 맡았다. 2011년 극우 청년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폭탄과 총기를 이용해 77명을 살해한 노르웨이 최악의 참사가 발생했을 당시 하랄 5세는 국민들에게 노르웨이 사회와 민주주의, 자유에 대한 믿음을 갖고 두려움을 이겨내자는 메시지를 전했다.
즉위 25주년을 맞은 2016년 연설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평등과 난민 포용, 종교적 관용을 강조했다. 당시 그는 성적 지향과 종교를 이유로 사람을 구분하지 않는 노르웨이 사회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다만 올해 들어서는 왕실 구성원들의 잇단 논란으로 하랄 5세가 편치 않은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며느리인 메테마리트 왕세자빈은 2019년 옥중 사망한 미국인 성착취범 제프리 엡스틴과 과거 친밀하게 교류한 정황이 올해 초 알려지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메테마리트 왕세자빈이 결혼 전 다른 남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마리우스 보르그 회이뷔 역시 성폭행 등 30여건의 범죄 혐의로 기소돼 지난 6월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잇단 스캔들은 노르웨이 왕실의 이미지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하랄 5세는 35년간 군주로 재위하며 정치적 권한보다 국민과의 소통과 통합에 무게를 둔 왕실의 모습을 보여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의 별세와 함께 호콘 8세 시대가 열리면서 노르웨이 왕실이 선대의 통합적 유산을 어떻게 이어갈지도 주목된다.
최한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gksruf0615@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