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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속에 담긴 이야기] 왕의 입맛을 사로잡은 ‘인절미와 도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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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속에 담긴 이야기] 왕의 입맛을 사로잡은 ‘인절미와 도루묵’

인절미, 인조 때 "임씨네 떡이 '절미'로구나"서 유래

도루묵, 하던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 일컬어
민속 축제가 열리는 곳이면 으레 떡메치기 놀이가 빠지지 않는다. 곱게 찐 찹쌀을 떡판에 올려놓고 방망이로 열심히 메질을 하면 차진 떡 반죽이 만들어지고, 이 반죽을 직사각형 형태로 잘게 썰어 깨나 콩고물을 묻히면 맛있는 ‘인절미’가 완성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떡을 좋아해서 종류도 많고 이름도 다양하다. 이 중 ‘인절미’란 명칭은 충남 공주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광해군을 내치고 인조임금이 새롭게 왕에 오른 사건을 ‘인조반정’이라 하는데, 이 반정에 가담했던 ‘이괄’이란 신하가 자신의 공로를 덜 인정해 줬다고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킨다. 역사서에서는 이를 ‘이괄의 난’이라고 한다. 당시 이괄은 많은 군사를 이끌고 삽시간에 한양으로 쳐들어왔는데, 미처 방어태세를 갖추지 못한 인조는 급히 공주의 공산성으로 피신을 하게 된다.

이곳에서 인조는 근심의 나날을 보내며 입맛까지 잃어 식사도 제대로 못했다. 이 소문을 듣고 공주에 사는 임 아무개가 정성스레 떡을 만들어서 인조 임금에게 바쳤다. 임금은 감격해서 떡을 먹는데 기막히게 맛이 좋아 주변 신하에게 떡을 보내온 백성이 누구냐고 묻자 ‘임씨’라고 대답하니, “임씨네 떡이 ‘절미’로구나”하며 감탄했다고 한다. ‘절미’는 한자로 ‘絶 味’ 즉 절대적인 맛, 최고의 맛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멋진 경치를 ‘절경’이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한편 반란이 진압되고 인조 임금도 한양으로 돌아갔는데, ‘임절미’는 공주의 떡으로 남게 되었다. ‘임절미’는 이후에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졌다가 어느 순간부터 ‘인절미’로 바뀌어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인절미’와 비슷한 유래어로 ‘도루묵’이 있다. 흔히 ‘말짱 도루묵’이란 말로 많이 사용되는 도루묵의 본래 이름은 목어(木魚)였는데 당시 사람들은 ‘묵어’라 발음했다. 이 묵어가 ‘도루묵’의 이름을 가지게 된 연유는 선조 임금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을 당한 선조는 개성을 거쳐 의주까지 피란을 떠나야 했다. 피란길이다 보니 모든 것들이 부족했고 특히 먹거리가 변변할 리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어부가 임금에게 묵어를 바쳤다. 오랜만에 싱싱하고 담백한 생선을 본 임금은 식욕이 당겼고, 먹어보니 아주 맛있었다. 그래서 선조는 신하에게 말하기를 "이렇게 맛있는 생선 이름을 ‘묵’이라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은어’라고 하여라"라고 명했다. 이렇게 하여 묵이라는 이름을 가진 생선은 그때부터 은어라고 불리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궁궐로 돌아온 선조는 어느 날 문득 피란 중에 먹었던 은어의 맛이 떠올라 그 생선을 다시 수랏상에 올리라고 했다. 그런데 고기를 맛본 임금은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그전에는 굉장히 맛있더니 지금 보니 맛이 아주 형편없구나. 이 정도의 맛이라면 이 고기의 이름을 도로 묵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은어로 불리던 생선의 이름은 도로 ‘묵’이라 부르게 되었고 이 말이 나중에는 ‘도로’란 단어까지 합쳐져 도로목이 되었다가 차츰 도루묵으로 발음하게 된 것이다.

도루묵에 대한 이야기가 회자되면서, 하던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원래대로 돌아간 것이나 또는 허사가 되었을 때 ‘말짱 도루묵’이라는 속담을 만들게 된다. 하지만 생선 도루묵은 제철에 잡아서 굵은 소금을 치고 연탄에 구워 먹으면 ‘절미’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홍남일 한·외국인 친선문화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