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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속에 담긴 이야기] 어른과 어린이의 말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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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속에 담긴 이야기] 어른과 어린이의 말 뿌리

‘어른’하면 성인 남녀를 통칭하지만, 그 말 뿌리는 자못 흥미롭다. 어른은 ‘어르다’에서 파생되었고 ‘어르다’는 옛말 ‘얼우다’가 변형된 것이다. 오늘날의 의미는 ‘편안하게 하다’ 또는 ‘모아서 합하다’이지만 예전에는 ‘사랑을 나누다’의 뜻으로 쓰였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버혀내여, 춘풍 이불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얼운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청구영언에 실린 황진이의 시조이다. 여기에서 ‘얼운님’이 바로 사랑을 나누는 대상을 말한다.

황진이의 죽음을 애석해 하며 그녀의 무덤에서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웠난다…’의 시조를 바친 풍류시인 <임제>의 또 다른 시조에도 유사한 표현이 나온다.

“북천이 맑다커늘 우장(비옷)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마즈니 얼어 잘가 하노라.”

기생 찬비에게 ‘오늘 밤 사랑을 나누며 자는 게 어떤 가’를 묻는 마지막 구절에 ‘얼어’가 바로 그것이다.

신라의 <서동요>에도 '얼어 두고'라는 구절이 있다. "선화공주니믄/ 남 그스기 얼어 두고 / 맛둥 방을 / 밤의 몰 안고 가다." 현대적으로 해석해 보면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사랑을 나누려고 서동의 방을 밤에 은밀히 찾아 간다’가 된다. 여기에 나오는 '얼어 두고'라는 말은 성행위를 일컫는다.

이처럼 세 가지의 사례를 종합해 보면 ‘어른’이란 ‘얼우다’의 명사형으로 성행위가 가능한 세대를 나타낸다고 볼 수가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어른’은 앞서 기술 했듯이 남을 편안하게 하고 배려하는 ‘어르다’에서의 ‘어른’이 진정한 의미의 어른이 아닐까 한다.
어른의 상대어인 ‘어린이’는 그 어원을 ‘어리다’에서 찾을 수 있다. 어리다의 옛 뜻은 ‘어리석다’이다. 지금은 ‘어리석다’의 뜻이 ‘생각이나 행동이 슬기롭지 못하고 아둔하다’는 부정적 의미로 쓰이지만, 예전에는 ‘미처(아직) 깨우치지 못하다’의 표현으로 안타까움을 담고 있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반포 중에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쎄 이런 전차로 어린 백성이 니르고져 홇베이셔도….” 이런 구절이 들어 있다. 여기서 <어린 백성>의 뜻이 바로 어리석은 백성이고, 아직 깨우치지 못한 백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아직 깨우치지 못했지만 가능성이 있음을 나타내는 ‘어리다’에서 ‘어린이’라는 말을 새롭게 지어낸 사람은 방정환 선생이다. 선생은 일제에 갇혀있는 암울한 조선민족의 희망을 어린이에게 찾았다. 1921년 5월에 ‘어린이 날’을 제안하면서, 어린이의 의미를 대내외에 알리고 어린이의 꿈이 무럭무럭 자라 독립의 발판이 되도록 어른이 힘써야 한다고 역설했다. 따라서 선생이 지어내고 지금껏 사용되는 ‘어린이’의 다른 말은 ‘미래의 희망’인 것이다.
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