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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근의 유통칼럼] 우리나라 라면전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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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근의 유통칼럼] 우리나라 라면전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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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근 한국에너지공단 이사
삼양식품의 ‘삼양라면’은 1963년 탄생된 이후 1983년까지 20년 동안 절대지존의 위상으로 시장에서 군림했다. 1977년 삼양식품에 입사한 필자는 그 과정을 잘 지켜보았다. 당시 ‘형님먼저 아우먼저’하며 고전하던 농심은 ‘시지프스 신화’를 연상했다. 농심은 깡3 스낵(새우깡, 양파깡, 고구마깡) 위주로 시장을 지탱했으며 당시 ‘소고기라면’과 ‘된장라면’ 등 주력 면(麵)상품은 ‘패하는 전쟁’임에도 지속적으로 경쟁하는 인내력을 보여주었다. 삼양식품과 농심의 마케팅전쟁에서 새로운 전환기는 정권이 바뀌면서 찾아왔다. 당시 삼양과 농심의 시장구조에서 갑자기 청보, 팔도, 빙그레 라면이 새롭게 진입하면서 5파전으로 새로운 경쟁양상이 전개되면서 소비환경도 동시에 변했다.

지루한 ‘라면마케팅’ 전쟁에서 80년대 승리를 위한 첫 번째 작품은 경기도 안성(安城)지역연고를 강조한 ‘안성탕면’(1983년 출시•소비자가격 120원)이다. 안성탕면은 매장에서 100원에 판매되면서 ‘삼양라면’(소비자가격 100원)의 아성에 변화가 나타났다. 당시 삼양라면은 소비자가격이 100원이었지만, 매장에서 90원에 판매되면서 10원 동전을 지불하는 형태였고 제품의 맛이 거의 고정화되는 형태가 지속되었다. 경쟁사들은 이러한 시장변화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고급 면(麵)시장을 노렸다. 농심은 ‘너구리’(1982) 우동라면을 출시하고 삼양 ‘5분 용기면’에 대응한 ‘3분 사발면’(1982)•팔도(한국야쿠르트) ‘도시락’(1986년)•농심 ‘짜파케티’(1984)•팔도 비빔면(1984)•농심 CEO 성씨(매울辛)와 같은 ‘辛라면’(1986)•오뚜기 ‘진라면’(1988년)이 출시되면서 삼양은 선두자리를 잃게 되었다.

이러한 농심의 역공에 고전하던 삼양식품이 반전의 기회마저 취할 수 없었던 것은 1989년 11월 25일부터 20여 일간 신문지상을 강타했던 ‘우지파동’이 결정적이었다. 공업용 우지파동은 이후 누명에서 벗어났지만 결과는 영원한 2등으로 전략시켰다. 또한 농심이 승리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신제품을 개발하기 위한 동결냉조공법으로 생산된 스프공장과 새로운 광고방식(CM송 개발)도 주효했지만 무엇보다 삼양식품의 경영전략에 문제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특히 대관령목장 개발과 ‘종합식품회사’로서의 도약을 위해 새로운 시장(유제품, 장유, 식용유 등)으로 전선을 넓히면서 주력병력 분산과 효율성이 적은 사업에 전투력을 집중하는 전략을 펼친 것이다.

우리 라면업계는 큰사발, 튀김우동, 오징어짬뽕, 생생우동, 꼬꼬면, 수타면, 나가사끼 짬뽕, 기스면, 짜왕 등 소비트렌드 변화에 따라 프리미엄 라면시대를 알리고 있다. 특히 업계 4사는 ‘짜장면경쟁’에서 오뚜기•팔도•삼양식품 ‘진짜장’, ‘팔도짜장면’, ‘갓짜장’ 등을 물리치고 농심 ‘짜왕’의 승리소식으로 종결되는가 하면 연이어 오뚜기가 가장 먼저 신제품을 출시하여 팔도•농심•삼양식품 등이 순차적으로 후속제품을 출시하여 ‘짬뽕전쟁’이 수행되면서 판촉전투가 치열했었다. 특히 오뚜기 ‘진짬뽕’이 어느 대형매장에서 품귀현상을 빚으면서 ‘辛라면’을 추월했다고 선전했던 적이 있다. 이처럼 라면업계는 전설이 된 辛라면에 대한 공략은 지상과제이다.
라면업계는 하얀 국물과 빨간 국물의 각양각색 신상품들을 우후죽순으로 쏟아내면서 지금도 진화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부동의 시장점유율 1위인 농심(61.6%)은 辛라면의 명성을 앞세워 오뚜기(18.3%)•삼양(11.4%)•팔도(8.7%)에 앞지르고 있으나, 해외시장에서도 승리를 위하여 서로 신상품을 출시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농심은 辛라면을 필두로 안성탕면, 짜파게티, 너구리, 육개장 등 ‘스테디셀러’ 제품군을 중심으로 성벽을 쌓고 있어, 소비자들이 쉽게 등을 돌리지는 않을 것이다.

전쟁은 사람이 수행하는 것으로 방심은 금물이다. 마케팅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선 최고경영자의 목적달성과 비전 제시가 시스템적으로 구체적이어야 하며,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의욕관리와 두뇌개발노력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기업문화와 경영체질을 개선하여 변화되는 소비패턴과 새로운 시장구조를 제대로 예측한 광고•판촉수립과 직원의 처우개선을 실현하는 것이다. 어느 기업이나 ‘마케팅 전쟁’에서 영원한 승자는 있을 수가 없으나, 승리하는 길은 전략과 전술을 제대로 발휘하는 것이다. 만약 잘 나가는 기업이라도 최고경영자의 영감이 부족하거나 안이한 시장대처능력과 구성원들의 의욕들이 약해지면 망하게 되는 것이다.
임실근 한국에너지공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