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일 관세폭탄 D-4...김동관 한화 부회장까지 워싱턴行, '마스가‘에 한국 경제 생존 건다

마린뉴스, 이코노믹 타임스 등 주요 외신 보도와 국내 복수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최근 뉴욕과 스코틀랜드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만나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MASGA)' 프로젝트를 핵심으로 한 한미 조선산업 협력 구상을 촘촘하게 설명했다.
이번 제안은 일본이 지난 22일 5500억 달러(약 765조 원) 투자 약속으로 15% 관세율을 확보한 직후 나온 것으로, 아시아 주요국들 간 관세 회피를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럽연합(EU)도 6000억 달러(약 835조 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하며 15% 관세율을 확보했다. 트럼프의 대표 정치 구호인 '마가(MAGA)'에 조선업을 뜻하는 'Shipbuilding'을 더해 명명된 이 프로젝트는 한국 민간 조선사들의 대규모 미국 현지 투자와 한국수출입은행, 한국무역보험공사 등 공적 금융기관의 대출과 보증을 포괄하는 꾸러미로 구성됐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도 지난 28일 정부의 대미 관세 협상을 지원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출국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김 부회장은 협상 시한인 8월 1일까지 미국 현지에 머물며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의 통상 협의에 힘을 보탠다.
◇ "0.13% vs 29%" 세계 2위 조선 강국의 절실한 카드
세계 조선업계에서 한국은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올해 1분기 한국 조선사들은 세계 수주에서 45%의 점유율을 기록했으며, 연간 기준으로는 29.24%의 시장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46.59%로 1위, 일본은 17.25%로 3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4분기 2021년 이후 처음으로 중국을 앞서며 업계 회복세를 보이기도 했다.
이에 비해 미국의 조선업 현실은 참담한 수준이다. 미국은 전 세계 조선 시장에서 0.13%에 불과한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1980년대 초 300개가 넘던 조선소는 현재 20개 미만으로 급감했다. 미국 해군 전문지 '프로시딩스'는 지난해 2월 "미국 해군 함정들의 평균 인도 지연이 26개월에 이르며, 현재 조선소 역량으로는 보유 함정의 유지보수가 20년 뒤처져 있다"고 지적했다.
2023년 한 해 동안 미국은 상선 5척 미만을 건조한 데 비해 중국은 1700척 이상을 건조했으며, 상선 보유 척수 역시 미국은 200척 미만인 반면 중국은 7000척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의 위기감은 중국의 급속한 해군력 증강과 직결된다.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은 2014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해군 함정 보유국이 됐으며, 현재 370척 이상의 전투함을 보유하고 있다.
김정관 장관은 러트닉 장관 자택에서 열린 협상에서 미리 준비한 패널을 보이며 MASGA 프로젝트에 관해 설명했다고 전해진다. 대통령실은 지난 26일 "미국 측의 조선 분야에 대한 높은 관심을 확인하고, 양국 간 조선 협력을 포함한 상호 합의 가능한 방안을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 기술 유출 vs 시장 확대, 양날의 검
증권가에서는 한국 조선사들의 주가 상승을 예상하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달 1~28일 HD현대중공업(10.46%), 한화오션(28.86%), 삼성중공업(11.03%)이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나이스신용평가와 한기업평가가 HD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의 신용등급을 각각 'A(긍정적)'에서 'A+(긍정적)'로, 'BBB+(안정적)'에서 'A-(안정적)'로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
실제로 한국 조선사들의 미국 진출은 이미 시작됐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필라델피아 조선소(Philly Shipyard)를 인수해 미국 해군 유지보수 사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올해 4월에는 6억 달러(약 8350억 원) 규모의 부유식 도크와 초대형 크레인 신설 등 대규모 설비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4월 미국 최대 군함 건조사인 헌팅턴 잉걸스 인더스트리스(HII)와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HD현대중공업 주원호 함정특수선 사업본부장은 당시 "한미 혈맹 국가의 대표 조선사 간 협력이 양국 조선업 발전은 물론 안보 협력 강화에도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사는 공정 자동화와 로봇, 인공지능 도입을 통한 디지털 조선소 구축 등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그런데 장기적으로는 경쟁자 육성이라는 딜레마도 존재한다. 미국이 한국의 기술력을 활용해 자국 조선업을 재건하려는 목적이 명확한 만큼, 핵심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 측은 한국 통상팀과의 관세 협상에서 조선업 협력과 관련해 한국 조선업체의 미국 현지 투자, 핵심 기술 이전, 인력 양성 지원의 세 가지를 주요 요구사항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투자 부문에서는 한국 조선사들의 미국 내 신규 조선소 건설과 운영, 기존 조선소 인수를 통한 생산 거점 확보를 요구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관세 협상 지원을 위해 한화필리십야드(필리조선소)에 대한 추가 투자를 정부에 제안했다고 한다.
기술 이전 부문에서는 한국의 빠른 선박 건조 기술력과 한국식 생산관리 기법, 공정 최적화 시스템 전수를 원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이미 헌팅턴 잉걸스와 선박 생산성 향상과 조선 첨단 기술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인력 양성 부문에서는 미국 조선업 인력 양성 프로그램 운영과 디지털 조선소 구축을 위한 공정 자동화, 로봇, 인공지능 도입 기술 전수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에서는 일본의 5500억 달러(약 766조 원) 투자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제안도 실질 구속력이 부족한 '수증기' 수준일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8월 1일 관세 협상 마감을 앞두고 한미 간 합의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 조선업계의 세계 경쟁력이 미중 패권 경쟁 구도에서 어떤 몫을 하게 될지 주목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