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이영칠의 음악기행(9)] 헝가리③편 헝가리의 이모저모…관광, 유학, 풍습으로 본 헝가리

공유
5

[이영칠의 음악기행(9)] 헝가리③편 헝가리의 이모저모…관광, 유학, 풍습으로 본 헝가리

헝가리와 한국의 음악 교류를 살펴본다. 2007년 11월 전통 실내악단 ‘다스름’이 부다페스트와 사라예보(Sarajevo)에서 공연하였다(11월 26일; 우라니아 국립영화극장, 11월 28일; 사라예보 국립극장). 이 공연에 각 450여 명(우라니아 452석)과 300여 명(사라예보 국립극장, 450석)이 관람하였다. ‘다스름’ 공연은 높은 수준의 편곡을 바탕으로 실력 있는 젊은 음악가가 우리의 전통 악기로 크로스오버(crossover) 음악을 연주하여 유럽의 정상급 무대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2008년 10월 2일 한국 합창단의 수준을 헝가리에 알린 서울시 소년소녀합창단이 우라니아 국립영화극장에서 공연하였고, 350여 명이 관람하였다.

2009년 5월에 엘테(ELTE) 대학교에서 한국의 날 행사가 열렸다. 주제는 한국 문학, 영화 예술, 음식, 한국과 헝가리 관계, 북한의 선군 정책이었다. 2009년 6월 9일에 한국·헝가리 친선협회(헝가리 학술원, 헝가리 외교연구원, 헝가리 경제협회 협찬) 주최로 “헝가리와 한국 양자 관계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제목으로 학술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한국·헝가리 양국 관계 전 분야에 걸친 주제 발표를 통해 수교 20주년을 회고하고 향후 관계 증진 방안을 모색하였다. 이 회의에 우리 정부 대표단, 헝가리 각계 주요 인사 300명이 참석하였다.
2009년 수교 20주년 기념 한국영화제가 6월 22일부터 26일까지 우라니아 국립영화극장에서 열렸다. 이 영화제에서는 「밀양」, 「집으로」, 「기담」, 「음란서생」, 「8월의 크리스마스」, 「말아톤」, 「식객」, 「살인의 추억」,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라디오 스타」 등 10편이 총 10회에 걸쳐 상영되었다. 이 영화제에서 1630명이 관람했으며(대극장 452석, 소극장 60석 규모) 당초 극장에서 상영 예정이었던 4개 작품은 운집한 관객 때문에 대극장으로 옮겨 상영하였다.

2009년 수교 20주년을 기념해 국립무용단이 8월 25일 빅신하즈(Vigszinhaz) 국립극장에서 ‘코리아 환타지’를 공연하였다. 이슈트반 힐레르(Istvan Hiller) 교육문화부 장관 등 주재국 주요 인사 1000여 명이 관람하였다. 수교 20주년 기념 ‘서울의 날’ 기념 공연은 2009년 9월 14일 팰리스 오브 아츠(Palace of Arts)에서 열렸다. 이 행사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헝가리 방문을 계기로 서울시 예술공연단의 부다페스트 공연이 있었다. 2009년 9월 25일~27일에는 국기원 태권도 시범단이 파견되어 헝가리 시범 공연을 추진하였다. 9월 26일에 공개 시범 및 퍼포먼스가 있었고, 9월 27일에는 비공식 시범 및 트레이닝 실습이 있었다.

헝가리에서의 유학비는 연간 평균 1000~7000유로(한화 130~900만원), 침실1개 아파트, 각종 공공요금을 제외하고 월간 평균 임대료가 200~250유로(한화 25만~32만원) 정도 든다. 교통, 음식, 오락 등 주간 평균 기타 생활비를 70유로(한화 9만원) 정도 잡으면 된다. 헝가리는 기숙사에 입주하기가 힘든 편이다. 대부분 학교 주변에 원룸을 얻어 생활한다. 부다페스트의 15~20평대 기준 원룸 월세는 약 30만~50만원이다. 헝가리 현지 물가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이거나 약간 저렴한 편, 식료품은 우리나라에 비해 약 20% 정도 저렴하며, 교통비, 식비, 통신비 등 평균 60만 원 정도가 들어간다.



헝가리의 유명 관광지, 휴양지를 살펴본다. 부다 지역과 페스트 지역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 부다 지역

1) 마차슈 성당(Matyas Templom)


정식 이름은 성모마리아 대성당이다. 이곳의 남쪽 탑에 마차슈 후냐디 왕가의 문장과 그의 머리카락이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마차슈 성당으로 불린다. 이 성당은 고딕 양식으로 13세기 중반, 벨라 4세에 의해 건축되었으며, 역대 국왕의 결혼식과 대관식의 장소로서 이용되었다.

1541년에 오스만 제국은 부다를 점령하고, 이후 이 성당은 주요한 모스크가 되었다. 성당은 모스크로 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 추가로 타격을 입어 내부의 벽에 그려져 있던 호화스런 프레스코화는 흰색으로 칠해져 망가지고, 남겨진 비품은 약탈당했다. 또한, 벽면도 이슬람 고유의 아라베스크 무늬로 장식되었다.


1686년 대 터키 전쟁 때 성당의 벽이 동맹 측의 대포에 의해 파괴되고, 이 때 예전부터 봉납되어 오던 마리아 상이 벽속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기도 중이던 오스만 제국의 이슬람 교도 앞에 마리아 상이 나타나자, 부다 주둔군의 사기는 붕괴되고 이 날, 부다는 함락되어 오스만 제국의 지배가 종결되었다. 이로 인해, 마차슈 성당은 "성모 마리아의 기적이 있었던 장소"라고 불린다.

마차슈 성당은 식민 지배가 끝난 뒤인 19세기에 건축가 슐렉 프리제슈가 본래의 13세기의 설계도를 통해 복원 작업을 하였다. 지금은 부다의 풍요로움을 상징하고, 헝가리인에게 안식처로 인식된다. 부다페스트 관광지로 놓칠 수 없는 곳이 마차슈 성당이다.

2) 어부의 요새(Halaszbastya)


건국 1000년 기념으로 세워졌다. 1899년에서 1905년 사이에 지어졌으며, 왕궁 언덕의 동쪽에 우뚝 서 있는 네오 로마네스크와 네오 고딕 양식이 절묘하게 혼재된 건물이다. 여기에 쓰인 석조물의 상당수는 옛 왕궁의 잔해를 재사용한 것이다.

이미지 확대보기
어부의 요새는 헝가리 애국정신의 한 상징으로 19세기 시민군이 왕궁을 지키고 있을 때 도나우 강의 어부들이 강을 건너 기습하는 적을 막기 위해 이 요새를 방어한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중세에는 어부들이 도나우 강에서 왕궁 지구 어시장으로 가는 지름길로 사용되었다.

요새에서는 동양적 색깔이 짙은 고깔모자 모양의 일곱 개 탑을 볼 수 있는데, 건국 당시 마자르족 일곱 부족을 상징한다. 긴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하얀색의 화려한 성벽과 마차슈 성당까지 뻗어있는 계단이 아름답다. 요새 앞에 최초의 국왕 성 이슈트반의 기마상이 서있다.

3) 부다 왕궁


13세기 몽골 침입 이후 에스테르곰에서 이곳으로 피난 온 벨라 4세가 방어를 위해 높이 솟은 부다의 언덕에 최초로 지은 왕궁이다. 이후 마차시 왕 시절의 모든 건물들은 르네상스 스타일로 변형되었고, 궁전은 중부 유럽의 문화, 예술, 정치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이미지 확대보기

1541년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쟁과 1686년 십자군 전쟁을 거치면서 차례로 파괴되었다가 17세기에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마리아 테레지아에 의해 현재의 크기로 개축되었고,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격으로 지붕이 완전히 파괴되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대 네오 바르크 양식으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은 역사박물관과 국립미술관, 국립도서관 등으로 쓰이고 있다.

◇ 페스트 지역

1) 성 이슈트반 성당(Szent Istvan Bazilika)


네오 르네상스 양식으로, 1851년에 시작해 1905년에 완성되었다. 당시 헝가리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인 요제프 힐드와 미클로시 이블이 공동으로 설계했다. 성 이슈트반 성당은 본래 1848년에 기공식을 가졌으나 연이어 발발한 헝가리 독립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1851년부터 재개되었다. 대성당 건축이 한참이던 1868년에 대폭풍이 불어 대성당의 돔이 날아 가버리는 사고가 있었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야 1905년에 공사는 끝이 났다.


이 성당은 엥겔스 광장 근처에 위치한 부다페스트에서 규모가 가장 큰 성당이며 기독교를 헝가리에 전파해 기독교 성인으로 추앙받는 이슈트반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전체 구조가 그리스 십자가 형상이며, 내부 기둥은 비정상적으로 비대하게 만들어져 있는데, 이는 기둥이 지탱하는 아치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면 양쪽 탑은 80m로 96m 높이의 중앙 돔 탑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중앙 돔 탑의 높이는 헝가리의 건국년도인 896년을 상징한다. 도나우 강변의 모든 건축물은 도시 미관을 위해 이보다 높이 지을 수 없게 규제되어 있다.

성당 입구에서는 성 이슈트반의 부조와 그리스도 부활 프레스코화를 만날 수 있으며, 중앙문에는 12제자가 새겨져 있다. 성당 내부에는 당대의 저명한 헝가리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가득하다. 중앙 돔은 부다페스트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로 활용되고, 성당의 정문 위에는 오른손에 홀을, 왼손에 구슬을 들고 있는 성 이슈트반의 동상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성 이슈트반의 오른손을 황금성물 안에 미라로 보존하고 있는데. 주제단의 뒤쪽에 있는 '신성한 오른손 예배당'에서 성 이슈트반의 오른손을 볼 수 있다.

2) 헝가리 국회의사당(Hungarian Parliament Building)


영국 국회의사당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국회의사당이다. 건국 1000년을 기념하여 건축한 네오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1882년 새로운 국회의사당을 지어 민족적 자존심을 세우기로 하고 정부에서 건축설계 공모전을 하게 되었는데, 이 공모전 당선자가 당시 부다페스트 기술대학교 교수였던 임레 쉬테인들이었다고 합니다. 실제 건축공사는 1887년에 시작되었고 설계자 쉬테인들이 사망한 1902년에 완공되었다.

이미지 확대보기
국회의사당 건축은 가장 비용이 많이 든 대역사였다. 이 공사에는 '민족 자존'이라는 명분이 걸려있었는데, "우리의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단순 원칙, 건축 자재도 모두 헝가리에서 나는 것이고, 헝가리의 기술과 인력으로만 건물을 짓는다는 원칙이 적용되었다. 외벽에는 헝가리 역대 통치자 88명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지붕에는 1년 365일을 상징하는 365개의 첨탑이 있다. 내부에는 총 691개의 집무실이 있으며, 카펫의 길이는 무려 3456m에 이른다.

김춘수 시인의 시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의 배경이 바로 국회의사당 앞에 있는 코슈트 광장이다. 이곳은 1956년 혁명 당시 부다페스트 대학생과 시민들이 소련군의 철수와 헝가리의 민주화를 요구하면서 연좌데모를 벌이다가 소련군의 총탄에 쓰러져간 곳으로, 헝가리 민주의회정치의 현장으로도 유명하다.

국회의사당을 둘러싼 채 조각으로 남은 네 명의 정치가는 헝가리의 현대 정치사를 보여준다. 남쪽 끝에는 합스부르크에 반대해 독립운동을 벌였지만 1711년 망명에 오른 페렌츠 라코치(Ferenc Rakczi), 북쪽에는 헝가리를 이끌고 오스트리아에 대항해 독립전쟁을 했으나 1849년 혁명 실패와 함께 망명에 오른 라요시 코수트(Lajos Kossuth), 제1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무너진 이후 독립된 헝가리의 첫 번째 대통령이었으나 1919년 망명에 오른 미하이 카로이(Mihaly Karolyi)의 동상이 있다. 1956년 소련에 저항해 헝가리인들이 봉기했던 1956년 혁명의 총아였던 임레 나지(Imre Nagy)의 동상이 세워져있다. 헝가리의 비극을 바탕으로 정치 민주화를 이룩해낸 것이 바로 국회의사당의 모습이다.

3) 헝가리 국립 박물관(Hungarian National Museum)


페렌츠 세체니(Ferenc Szechenyi)는 1802년 그가 평생 모아온 헝가리 유물을 헝가리 국민에게 바치겠다는 선언을 했고, 당시 헝가리를 지배하고 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프란츠 1세​ 황제는 흔쾌히 이를 허락했다. 이에 따라 이 해에 세체니 백작의 소장품을 전시할 국립박물관 설립 계획이 공식화되었고, 세체니 백작이 자신의 저택을 1802년 국립박물관으로 개축하였다. 그의 많은 수집품들을 이곳에 전시함으로써 개관한 박물관이다.

그 당시 세체니 백작의 컬렉션은 1만1884점에 달하던 인쇄물, 1145점의 육필 원고, 142권 분량의 지도와 구리 접시, 2019점의 금화, 고가구 등이었다. 19세기 초 유럽의 박물관 수준으로 본다면 유럽에서 3위에 오를 정도였다. 엄청난 양의 컬렉션이었던 만큼 보관 또한 문제였다. 처음에는 바오르 딸 수도회에 맡겨졌으나 나폴레옹 전쟁이 유럽으로 확산되자 대학 빌딩에 안치되기도 하였다. 1807년 헝가리 국회는 이 새로운 유물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새로운 기관을 만들고 헝가리 전역에 흩어져 있던 개인 소장품도 모았다.

이미지 확대보기
1846년 이래 헝가리 건축가 미하이 폴라크(Mihaly Pollack)가 설계한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을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형태인 건물 앞의 열주가 인상적이다. 선사시대로부터 국가의 설립을 거쳐 1990년까지 헝가리의 역사가 일목요연하게 전시되고 있다.

1848년 3월 15일 박물관 정원에서 헝가리 민족시인 샨도르 페퇴피(sandor Pet?​fi)가 국가를 낭송하는 등 박물관은 '1848년 혁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매년 3월 15일 박물관 앞 계단에서 재현되어 그날의 장엄하고도 비장한 분위기를 다시 연출하는 행사가 되었다. 헝가리의 역사적 유물을 수집, 보관하고 있는 국립박물관은 그 자체가 바로 헝가리 민족정신과 자유를 위한 이정표의 역할을 하고 있다. 1985년 에스테르곰(Esztergom)의 성(城) 박물관이 국립 박물관과 통합되었다.

4) 헝가리 국립 오페라 하우스(Magyar Allami Operahaz)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헝가리 페스트 중부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다. 페스트의 브로드웨이라 할 수 있는 안드라시 거리 22번지에 있으며 헝가리 오페라의 본산으로, 미크로시 이비의 설계로 1875년 시작된 공사가 1884년에 완공되었고, 그 해 9월 27일 헝가리 왕립 오페라 하우스라는 이름으로 개장하였다. 그 후 1980년 전면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재개관되었다. 19세기 헝가리 건축물 가운데 주요 건축물로써, 건축 당시 부다페스트 시청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건설 자금을 제공하였다. 개관 당시 유럽에서 가장 현대적 오페라 극장이었다. 가장 화려하면서도 실용적인 극장으로 꼽히고 있다. 부다페스트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꼽히는 곳인 이 국립 오페라 극장의 내부는 헝가리 유명 화가들이 그린 걸작 그림들로 장식되어 화려함을 뽐내고 있다.

헝가리의 대표 휴양지를 살펴보자.

발라톤


이미지 확대보기
중부유럽의 가장 큰 호수이며 헝가리의 대표 휴양지로, 면적이 598㎢ 이니 605㎢의 서울이 호수에 거의 들어갈 정도이다. 호수의 수질 성분은 알칼리성으로 류머티즘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호수 북쪽 지역은 지중해성 기후와 질 좋은 흙이 와인 생산의 최적요건을 만들어 주요 와인 생산지가 되었다.

헤비츠

 헤비츠이미지 확대보기
헤비츠

헤비츠는 녹음으로 둘러싸인 온천이 유명한 곳으로, 하나의 호수가 다 온천으로 쓰이고 있다. 이곳은 호수 가운데 건물을 세워 실내에서 온천을 즐길 수 있게 해놓았고 실외에 나가서도 온천을 할 수 있다. 워낙 넓은 호수라 제대로 보려면 며칠은 있어야 한다. 호수 북쪽은 케스트헤 티치 궁전이 볼만하고 남쪽마을 쉬오포크는 젊은이들이 파티를 많이 벌인다 하여 '헝가리 파티의 수도'라고 불린다.
이영칠 불가리아 소피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종신 객원지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