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작은 부랴부랴 설계 의뢰를 하고 수천 명의 목수와 미장이를 모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사를 서둘렀다. 생일날 아침, 성은 완성되었다. 일월성(一月城)으로 불리는 ‘모나트슐로스’의 미확인된 이야기이다.
철학자 괴테는 건축가에게 “한 번도 살아 보지 못할 건물을 만들기 위해 영혼과 마음, 열정을 송두리째 쏟아야 하는 짓궂은 운명을 갖고 사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건축가 김중업씨는 건축설계작업에 몰입하는 순간이야말로 ‘꿈과 사랑을 시간과 공간속에 정성들여 녹여 붓는 작업’이라고 했다.
건축가들의 영혼과 열정으로 지어지는 건축물은 도시의 랜드마크가 된다. 높을수록 더 그렇다. 자세히 보니 꽃이 아름답다고 했던 시인의 詩에서처럼 하늘 높은 건축물들은 자세히 보면 아름다운 구석이 많다. 건축물은 도시의 얼굴이며 사람을 이끄는 매력적인 구조물이다. 도시 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초고층 건물이다. 좀 더 하늘로 치솟으려는 인류의 욕망과 초고층 건물을 지으려는 인간의 욕망은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바꿔 버린다.
초고층 빌딩은 입면과 높이의 비율이 5:1 이상을 말한다. 초고층 건물엔 도시의 과거가 숨 쉬고 있고, 미래도 깃들어 있다. 인구 300만 명의 도시 시카고는 초고층의 메카답게 건축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시카고에 들어선 초고층 빌딩 숲
‘마리나시티’(Marina City)는 1964년 완공된 주상복합건물이다. 쌍둥이 건물로 유명한 이 건물은 옥수수 같이 생긴 빌딩 두 개가 나란히 올라서 있다. 타원형으로 돌아가면서 건물 구멍 사이로 보이는 것은 자동차 뒷부분이다. 주차된 모습은 마치 벌집 같다.
시카고가 초고층 시티로 바뀐 것은 화재 때문이다. 1871년 시카고에 대형 화재가 발생하여 도시 중심부 전체를 잿더미를 만들었다. 도시 재건은 아예 새로운 방향으로 초점을 잡았다. ‘미시간호’를 끼고 있는 당시 시카고는 철도산업의 핵심도시이자 상공업 중심지로 번성 중이었다. 급격하게 늘어나는 인구를 흡수하기 위해서라도 도시 재건은 빨리 이뤄줘야 했다. 여기서 나온 발상이 초고층 도시였다.

1891년 10층만 넘어도 초고층으로 불리던 시대에 16층의 ‘모나드낙’(Monadnock) 건물이 완공되자 사람들은 놀랐다. 철 구조물로 지은 16층의 ‘릴라이언스(Reliance)빌딩’이 올라가자 사람들은 고개를 뒤로 꺾어 빌딩을 바라보았다. 날씬한 미인의 몸뚱이가 하늘로 솟은 듯한 광경에 넋을 잃었다. 미국의 다른 도시가 4~5층의 아름다운 건물을 지을 때 시카고에서는 10층이나 되는 고층건물을 빠르게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철강재를 건축 구조물에 채용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의 중심지 맨해튼에서는 1900년대부터 마천루(고층빌딩)가 경쟁적으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1930년에 준공된 77층(319m)짜리 ‘크라이슬러 빌딩’을 필두로 이듬해에는 102층(381m)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들어섰다. 당시 베들레헴스틸에서 개발된 H빔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하늘로 치솟는 건축물에는 베들레헴의 H빔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102층짜리 초고층 빌딩을 단지 410일만에 완공한 시간의 단축은 H빔의 활용도가 매우 높았기 때문이었다. 건축가들은 1주일에 평균 4~5층씩 올렸다는 자랑을 내놨다. 이 빌딩은 1945년 미군 B-25 쌍발 폭격기가 안개 속을 비행하다 부딪쳐 14명이 사망했지만 건물은 말짱했다. 이것도 철강 구조물이 튼튼하다는 증거였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창문 6400개, 수용인원 1만8000명, 분당 360m 속도로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 65대, 화장실 2500개, 계단 1860개를 가진 초고층 빌딩이다. 빌딩건설을 위해 36만5000톤의 철강재와 1000만개의 벽돌이 동원됐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누린 ‘세계 최고(最高)’라는 지존의 자리는 417m(110층) 높이의 세계무역센터가 세워진 1972년까지 41년간 지속됐다. 그러나 세계무역센터는 2년 뒤인 1974년 높이 443m(110층)의 시카고 ‘시어스 타워’가 등장하면서 단명에 그쳤고 세계무역센터빌딩은 2001년 9‧11 알카에다 테러공격으로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지금은 다시 완전하게 복구됐지만 당시 무역센터의 골격을 유지했던 철강재들은 영국과 미국 곳곳으로 기부되어 기념비 제작에 사용되었다.
‘마천루 지구’ 별칭 얻은 맨해튼
오래전 맨해튼에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크라이슬러 빌딩’, ‘록펠러 센터’ 등 75개의 빌딩이 들어서면서 ‘마천루 지구’라는 별칭이 붙었다. 시카고가 제2의 초고층시대 전성기를 맞은 것은 1952년. ‘레이크 쇼어 드라이브 아파트’(Lake shore Drive Apartment)의 완공부터이다.
1960년대 시카고의 초고층 건물은 조형적인 아름다움보다는 기능을 중시한 단순한 디자인이 주를 이루었다. 그때 시카고 건축업계의 원칙은 최대한 장식 배제, 돈 들어가는 일 차단, 되도록 높이 쌓아 올리는 것 3가지였다.

대표적인 건물은 ‘존핸콕센터’(John Hancock Center)이다. 이 건물은 1969년에 완공된 100층짜리 건물이다. 건물 외관에 대형 철 구조물로 엑스-브레이싱을 했다. 사무용뿐만 아니라 주거기능까지 포함된 이 건물의 골격은 커다란 X자로 되어 있다.
1965년에 착공하여 1969년에 완성한 ‘존핸콕센터’는 칸마다 기둥을 세우는 대신 대형 철강재를 사선으로 넣은 지지대로 건물을 지탱시켰다. ‘존핸콕빌딩’의 X자는 창문을 넓게 꾸며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을 가졌다.
1974년 시카고에는 초고층 빌딩 ‘시어스타워’(Sears Tower)가 탄생했다. 높이가 443m이며, 108층의 사무용 건물이다. 필자가 1996년 ‘시어스타워’ 꼭대기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시카고의 야경은 황홀지경이었다. 계획된 도시답게 각 건물에서 내 뿜는 전등 빛은 360도 방향으로 돌아가면서 열병식 하듯 나란히 뻗어 있었다. 별천지 같았다.
1990년 이후 초고층 건물은 아시아로 이전했다. 2014년 11월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초고층 빌딩은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이다. 영화 ‘미션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에서 주요 배경으로 등장했다. 대역이나 CG없이 배우가 직접 촬영을 했다고 해서 주목을 끌었다. 삼성물산이 건설한 이 빌딩은 163층으로 높이는 828m에 달한다. 이 빌딩 112층에서는 포드자동차의 2015년형 노란색 머스탱의 상징적인 조랑말 배지를 전달하는 이벤트가 열리기도 했다. 초고층 건물은 상징성과 주목을 쉽게 이끌 수 있는 장점 때문에 각종 이벤트 행사를 열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최적격이다.
828m의 초고층 빌딩 부르즈 할리파
쿠웨이트가 계획 중인 마천루. 높이는 무려 1001m로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에 건설 중인 제다타워(1007m) 다음으로 높다. 완공되면 곧바로 세계 2위의 마천루이자, 세계에서 층수가 가장 많고 마천루 역사상 최초로 200층을 돌파한 마천루가 된다. 건설 부지는 수비야라는 쿠웨이트 북부의 조그만 시골동네이다. 하지만 공사가 시작된 것은 아니며, 완공은 2030년이 넘어야 될 것이라고 한다. 중국 브로드그룹(BG)은 2013년 6월 후난성 창시에 높이 838m, 220층의 스카이시티를 건설하겠다고 해서 세계를 놀라게 했으나 아직 소식이 감감하다. 아시아 최고층 빌딩은 중국 상하이 푸동지구에 있는 상하이타워(632m), 중국 선전의 핑안 인터내셔널 파이낸스센터(599m) 등이 꼽힌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2017년 완공된 롯데월드타워로 높이 556m 123층이다. 초고층 빌딩이 많이 몰려있는 곳은 서울이나 수도권 지역일 것이란 생각이 들지만 의외로 ‘부산’이다.
초고층 건축물 상위 10곳 중 3곳이 서울에, 1곳이 인천에, 나머지 6곳은 모두 부산에 있다.

가장 높은 빌딩 순위 1위는 롯데월드타워, 2~4위는 2019년 부산 해운대에 지어진 ‘엘시티’ 3개동이다. 레지던스 호텔, 관광호텔, 전망대 등이 자리 잡은 랜드마크 타워동이 411.6m를 기록하며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아파트, 워터파크 등이 자리 잡은 엘시티 A동과 타워 B동이 각각 339.1m로 3위와 4위이다. 해운대 두산위브, 더제니스 A동은 80층 300m로 7위, 해운대 아이파크 T2가 72층 292.7m로 8위이다. 포스코타워 송도는 65층 305m로 6위이다. 부산에 고층빌딩이 몰려있는 이유는 높이 규제 완화가 가장 큰 이유이며, 바다를 끼고 있는 데다가 조망권이 자유로운 장점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고층 건물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람이다. 빌딩풍은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위협을 갖고 오기도 한다. 부산 엘시티의 경우 태풍이 불면 내륙보다 최대 4배 이상 강한 바람이 분다는 사실이 연구 보고되기도 했다. ‘버즈두바이’는 바람의 저항을 약화시키기 위해 지름 1.5m의 쇠말뚝 192개와 두께 3.7m의 철강재로 구성된 삼각 날개판을 설치했다. 인천 송도에 소재한 ‘포스코건설 빌딩’은 60층 꼭대기에 60톤 정도의 물탱크를 놓았다. 이 물탱크는 역ㄷ자형태의 모양인데 강한 바람을 약 30~40%정도 약화 시켜준다.
자사가 생산한 강철로 지은 사옥
국내 철강기업의 본사 사옥은 대부분 철강재를 적용한 빌딩들이다. 포스코, 동국제강, KG스틸, 세아제강 등은 철강 산업 본업의 이미지에 적합한 철강재로 도시의 얼굴 한 부문을 구성하고 있다. 더욱이 이들 사옥은 자사의 철강 생산품으로 직접 골격을 세우거나 내부 치에 적용시켜 기업PR을 겸하고 있다.
초고층 건물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지역에서 가장 높은 층수의 건축물일수록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되기 때문이다. 그와는 반대로 마천루의 저주도 있다. 1999년 도이체방크의 분석가 앤드루 로런스는 ‘초고층 건물을 짓는 국가는 이후로 경기 불황이 찾아온다’는 가설을 내 놓기도 했다.
이렇게 철강재는 묵묵하게 건축역사의 핵을 이루고, 도시의 얼굴을 바꾸는 튼튼한 뼈대를 구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래의 철강은 어떤 모습일까? 이제까지 인간에게 안락한 주거공간을 만들어 주었다면, 미래에는 탄소 배출 주범이라는 낙인을 거두고 등장할 것으로 예견된다.
“무탄소 강철로 만든 마천루” 이게 정답일 것 같다.
김종대 글로벌이코노믹 철강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