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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다 오르는 인플레 시대, TV 가격만 안 오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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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다 오르는 인플레 시대, TV 가격만 안 오르는 이유

지난 2020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전자제품 박람회 CES에서 삼성전자가 선보인 292인치 마이크로 LED TV ‘더월’.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2020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전자제품 박람회 CES에서 삼성전자가 선보인 292인치 마이크로 LED TV ‘더월’. 사진=로이터
음식값부터 공산품 가격에 이르기까지 어지간한 물가는 거의 죄다 오르는 전 지구촌이 고물가 추세다.

역대급 인플레이션이 한풀 꺾였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으나 중앙은행이 금리 기조를 정할 때 반영하는 인플레 압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근원 인플레이션율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고물가 국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공산품 한 가지가 매우 예외적인 사례로 남아 있어 이목을 끌고 있다. 가전제품의 대표주자 격인 TV의 가격 얘기다.

고물가 시대 역행하는 TV 가격


17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지금은 폐업한 미국 유수의 전자제품 제조업체 RCA가 지난 1973년 판매한 15인치 컬러TV 가격은 380달러(약 49만원) 정도였다. 이를 현재의 물가로 환산하면 약 2694달러(약 350만원) 수준이다.

그러나 반세기가 흐른 2023년 현재 TV 가격은 32인치 LCD TV 기준으로 100달러(약 13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무려 50년이나 지났고 사이즈까지 커졌음에도 TV 가격은 오히려 크게 떨어지는 기현상이 벌어진 셈이다.

당시의 TV와 지금의 TV에 적용된 기술이 비교 불가할 정도로 다른 점까지 감안하면 더욱 이례적이지 않을 수 없다.

CNN은 “TV 제조업체들의 마음씨가 좋아져 벌어진 일은 절대 아니다”며 TV가 고물가 시대에 정면으로 역행하고 있는 이유를 짚었다.

원장(mother glass)과 TV 가격의 관계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요즘 TV의 기본사양인 ‘LCD 디스플레이’에 숨어있다는 지적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원장(mother glass)’으로 불리는 대형 유리 기판을 기반으로 생산하는 디스플레이 패널이 TV 가격을 낮게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이다.

한마디로 이 원장이 TV용 디스플레이 패널의 원재료인데 이 원장의 사이즈가 커질수록 디스플레이 패널 생산량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LG전자와 함께 전 세계 TV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삼성전자에 따르면 TV용 디스플레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그 기반이 되는 기판이 필수적인데 원장이라는 유리 기판이 바로 그 기반이다.

OLED나 LCD는 커다란 원장을 놓고 그 위에 여러 공정을 거치면서 패널을 제조하는 방식이 생산이 이뤄진다. 패널은 사이즈별로 각각 따로 제조되는 것이 아니라 한 장의 원장에서 제조된 패널을 여러 조각으로 나눈다.

이런 식으로 디스플레이 패널 생산의 기반이 되는 원장은 사이즈에 따라 세대를 표기하는데 디스플레이 원장의 크기가 커질수록 세대의 숫자도 올라간다.

디스플레이 원장의 크기가 커지는 이유는 패널 생산성의 효율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원장이 커지면 한 번에 더 많은 패널 또는 사이즈가 더 큰 패널의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는 얘기다.

디스플레이는 여러 단계의 제조 과정을 거쳐야 하는 제품인데 여러 개의 원장을 투입해 생산하는 것보다 커다란 원장을 넣어 한 번에 많은 양을 생산하는 것이 시간상 더 유리하고 생산 단가도 낮출 수 있다.

오늘날 LCD TV의 가격이 저렴한 이유는 바로 이런 생산 시스템이 적용되기 때문이라는 것이 TV 제조업체들의 설명이다.

중국산 TV 때문에 치열한 가격 경쟁도 큰 배경


제조업체 간 가격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것도 TV 가격을 떨어뜨리는 주요한 요인이다.

특히 세계 최대 가전 시장인 미국 시장에 쏟아지는 TV 신제품이 해가 다르게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미국에서 새로 출시되는 TV 제품 상당수가 중국산이라는 점에서 TV 가격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을 촉발하는 주역은 중국이다.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중국을 대표하는 가전브랜드 TCL과 하이센스의 역할이 지대한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2014년과 2015년 각각 미국 시장에 진출한 두 브랜드는 삼성과 LG의 아성을 위협할 정도로 무서운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전 세계 TV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