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영화제가 드문 시절, 필자는 한국인 최초로 이탈리아 생 빙생의 국제영화비평가연맹 총회에 참석, 프레미오 그롤레 드 오로(황금금배상) 심사에 참여했다. 서남아시아 대표의 다카영화제는 아침 섭씨 13도로 출발해 오후에 24도를 기록했다. 점심과 저녁 식사는 다카 클럽에서 이루어졌다. 미지의 방글라데시에 대한 호기심, 그들의 영화 열정은 대한민국의 근대화 모습, 우리 부모들의 노고와 연결됐다. 이 영화제는 각국의 언어, 사람들, 음식, 관광 등 많은 문화 콘텐츠를 제공했다. 출품작들은 각국의 특정 미학과 현실 반영의 작품들이었다. 영화 속에서는 여전히 민족 간의 분쟁, 세대 간의 갈등, 경제적 궁핍이 부른 비극 등이 두드러진 주제 의식으로 다가왔다.
민족 간의 분쟁·세대 갈등 영화속 두드러진 주제 의식
국제영화제작자연맹(FIAPF: 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s Associations de Producteurs de Films, 1933년 설립)은 파리에 본부를 두고 전 세계 영화제를 경쟁영화제, 비경쟁영화제, 부분경쟁영화제, 다큐멘터리·단편영화제로 분류하고 공인한다. 이들이 아시아에서 경쟁영화제로 인정하는 영화제는 도쿄국제영화제(1985년 창립, 격년제로 시작, 2024년 제37회 영화제)와 상하이국제영화제(1993년 창립, 격년제로 시작, 2021년 24회 이후 영화제 재개 불투명)이다. 부산국제영화제(집행위원장 박광수 영화감독, 1996년 발족)와 전주국제영화제(집행위원장 정준호 영화배우, 1997년 발족)는 아시아 장편영화 부문만 경쟁을 인정하는 부분경쟁영화제다.



제22회 다카국제영화제(DIFF, 조직위원장: 키쉬왈 카말(Kishwal Kamal), 집행위원장: 아흐메드 무즈타바 자말, Ahmed Muztaba Zamal)의 공식 일정은 2024년 1월 20일(토)부터 28일(일)까지다. 거의 모든 해외 참가자가 10시간 넘는 비행 시간을 감수하고 온 터라 금세 친밀감을 보이고 동지가 된다. 아시아에서 부산국제영화제보다 4년 앞서 1992년에 출범한 다카영화제는 격년제에 이어 2017년부터 해마다 열린다. 영화제의 주제는 ‘보다 나은 영화, 보다 나은 관객, 보다 나은 사회’다. DIFF는 방글라데시의 활기찬 영화 문화를 육성하기 위해 꾸준히 헌신해왔다. 1월 20일 오후 4시에 국립박물관 대강당에서 개막식이 열렸고, 개막작은 모르테자 아타시잠잠(Morteza Atashzamzam) 감독의 '페레쉬취'(Fereshtch, 이란·방글라 합작, 70분)이었다.
레인보영화협회(Rainbow Film Society)는 1977년 창립 이래, 이 영화제를 영화 발전의 사회적 중요 매개체로 인식하고 영화적 우수성이 세계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방글라데시의 맥락 안에서, DIFF가 현지 영화계에 미친 영향은 건전하고 긍정적인 영화 문화를 육성하며 사회 변혁의 주체가 된 것이다. DIFF는 기성·신예 영화감독 모두에게 그들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국가의 영화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영화제 자체는 다양한 영화 경험의 태피스트리(tapestry)이며, 여러 부문이 취향과 관심을 충족시킨다. 이는 영화제에 고유한 맛을 추가해 모든 사람을 위한 영화제가 된다.
자국 영화 정체성 형성…사회변혁의 중추적 역할
레인보영화협회가 주관하고 알리앙스 프랑세즈 드 다카, 방글라데시 실파카라 아카데미, 외교 봉사 아카데미, 국립박물관에서 진행된 제22회 다카국제영화제의 9일간 여정은 끝이 났다. 74개국 252편의 영화가 상영됐고, 수상자가 결정됐다. 시상자들이나 수상자들은 레이를 목에 걸고 시상과 수상의 기쁨을 같이 나누었다. 단 한 편의 출품작도 내지 않은 한국의 감독들은 개척정신으로 이 영화제에 가볼 필요가 있다. 저명한 세계의 심사위원들과 세계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감독들이 분주하게 외교전을 펼치고 있는 희망의 영화제다.



영화제는 ‘아시아 영화 경쟁’, ‘회고전’, ‘방글라데시 파노라마(장편)’, ‘방글라데시 파노라마(단편)’, ‘와이드 앵글’, ‘세계의 영화’, ‘여성 영화제작자’, ‘영적 영화’, ‘어린이 영화’, ‘독립단편 영화’ 9개 부문으로 분류됐다. 필자는 국제영화비평가연맹(본부 독일) 회원 자격으로 방글라데시 파노라마 부문의 장편영화(12편)와 단편영화(20편)를 심사했다. 심사 이후 네팔, 인도, 방글라데시 영화감독의 대본을 멘토했다. 이 가운데 한 명(Afsana Mimi 감독)의 ‘붉은 빛, 푸른 천사(Red Lights Blue Angels)’가 대상(25만 다카)을 탔다. 1등은 인도(15만 다카), 2등은 스리랑카(11만 다카) 감독의 만화영화가 차지했다.
필자는 다양한 영화제작 경험이 있는 감독의 작품, 국내외에서 다수의 수상을 한 감독의 작품, 대규모 예산 지원을 받은 작품보다는 영화감독의 창작정신을 지닌 떠오르는 감독의 작품을 선호했고, 용기를 주고자 했다. 진지하게 주제에 몰입한 미래 가능성이 농후한 감독들의 작품들은 주제 의식과 영화적 수사력을 구사하고 있었다. 자국 영화 관객의 수준에 맞춘 텔레비전 연속극류의 오락물들에는 점수를 주지 않았다. 필자는 영화의 우수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우수한 연출력, 뛰어난 미장센과 영화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연속성, 뛰어난 테크닉을 꼽는다. 영화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영화철학자로서 감독의 미래 가능성을 말한다.



방글라데시 파노라마 장편 부문에 출품된 영화들은 영화 제작자들이 작품을 국내외에 홍보할 수 있도록 DIFF는 엄선된 영화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이었다. 2022~2023년 제작된 12편의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영화로 구성됐다. 최소 길이는 61분에서 178편의 영화로 구성돼 있었다. 최소 출품 자격은 55분 이상이었다. 이 가운데 '사비트리(Sabittri)'는 치욕의 역사를 통해 강인한 국가로 태어나고자 하는 젊은 감독의 시각이 두드러졌다. 과잉 없이 주제 의식에 밀착하는 구성의 묘와 각 부분의 세련된 노력이 돋보였다.
출품작 안 낸 한국 감독들, 개척정신으로 참가해 볼만
방글라데시 파노라마 단편 부문에 출품된 영화 가운데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상이 수여됐다. 2022년부터 2023년까지 제작된 최고의 영화는 바이샤키 소마더(Baishaki Somadder) 감독의 '라일라(Laila)'로 결정됐고, 트로피와 상장이 수여됐다. 이 작품은 가정주부의 내외적인 여성 심리를 다른 작품으로서 대한민국의 장석용 심사위원이 시상했다. 또 다른 단편인 '이나피(Inafi)'는 전통을 살리면서도 뛰어난 감각으로 영화를 전개하는 방식이 뛰어난 작품이었다. '안토닌 파스테(Antonin Paste)'는 실험적이며 상상력이 풍부한 작품이었다.



다카국제영화제는 다양한 영화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영화 공급과 국제회의를 개최해 왔다. 2024년 제10회 ‘영화 속 여성’ 다카 국제회의(10th Dhaka International Conference on Women in Cinema)는 예년처럼 다양한 주제로 폭발적 관심을 끌었다. 제3회 젊은 영화 감독 스크린플레이 랩도 해마다 인기를 끌고 있다. 2018년 제1회 아시아영화비평가협회(AFCA) 총회가 있던 해엔 한국 유일 출품작인 유영의 감독의 '산상수훈(Sermon on the Mount)'이 집중 관심을 받았다. 영화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종의 외교의 장(場)이 된다. 세계 유수의 영화학자들과 영화제 집행위원, 해외의 명문대학 출신의 방글라데시 지성인들이 영화 외교를 벌인다.
다카국제영화제는 저명한 영화감독, 영화배우, 제작자, 영화인들을 다카로 초청해 왔다. 교통 체증이 일상이고, 음식문화가 낯설고, 곳곳에 무장 경비원이 보초를 서는 나라를 동정이 아닌 평등의 나라로 인정하게끔 하는 영화제는 훌륭한 외교 사절 역할을 한다. 앞으로 많은 한국 영화감독들이 이 영화제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하고, 외국 영화인들과 교류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