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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적·법적 '문제 투성이'…콘진원 '게임 질병 코드 반대'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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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적·법적 '문제 투성이'…콘진원 '게임 질병 코드 반대' 세미나

한국정책학회, DIGRA, 법무법인 화우 등 참여
게임 이용 장애, '디지털 미디어 과소비' 일부일 뿐
섣부른 규제 강화, 국제 통상 분쟁 낳을 수도
WHO조차 '오락가락'…장기적 실증 연구 필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6월 13일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대응 특별 세미나'를 열었다. 왼쪽부터 원소연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 김종일 법무법인 화우 게임센터장, 윤태진 국제디지털게임연구학회(DIGRA)한국학회장, 박순애 서울대학교 교수, 사진=이원용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한국콘텐츠진흥원이 6월 13일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대응 특별 세미나'를 열었다. 왼쪽부터 원소연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 김종일 법무법인 화우 게임센터장, 윤태진 국제디지털게임연구학회(DIGRA)한국학회장, 박순애 서울대학교 교수, 사진=이원용 기자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이 계속되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대응 도입 논란을 학술적, 법적으로 분석, 발표하는 특별 세미나를 열었다.

이번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대응 특별 세미나는 서울 청계천 인근 CKL기업지원센터에서 13일 오후 2시 막을 열었다. 문화체육관광부과 후원하고 콘진원이 한국정책학회와 공동 주최했으며 국제디지털게임연구학회 한국지회, 법무법인 화우 게임센터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함께 했다.

한국정책학회 게임정책연구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정호 상명대학교 교수는 세미나 연사로 나서 게임 이용 장애가 '질병'으로서 정의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병리의 원인과 결과가 명확하지 않은 만큼 신세대의 '디지털 미디어' 소비 의존성 증가의 한 분류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4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 보고서에는 과의존위험군 이용자들이 특정 콘텐츠에 대해 "자기 조절이 어렵다"고 응답한 비율을 나타낸 차트가 있다. '게임'에 대해 청소년층의 73.1%, 20대의 67.5%가 조절이 어렵다고 답했는데, 영화·TV·동영상 시청(청소년 76.9%, 20대 80.5%) 결과나 SNS(청소년 65.6%, 20대 78.1%)와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박정호 위원장은 "게임에 빠져든 아이들에게 물어봐도 '도파민이 분비돼서 한다'고 하지 '게임이니까 한다'고 답하는 아이들은 찾기 힘들다"며 "인터넷 게임 장애 상태·특성 기준을 마련한 미국정신의학회조차 '게임 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단정하기에 충분하고 일관된 연구 결과가 제시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명시한 것이 현실"이라고 언급했다.

박정호 상명대학교 교수가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대응 특별 세미나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이원용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박정호 상명대학교 교수가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대응 특별 세미나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이원용 기자

콘진원은 이번 세미나에 앞서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에 걸쳐 국내 게이머들을 종단 연구한 '게임이용자 패널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924명과 성인 701명 5년 동안 꾸준히 '과몰입' 위험군으로 분류된 응답자는 없었고, 게임 이용 시간의 수량과 게임 과몰입 사이 유의미한 상관관계 또한 발견되지 않았다.

해당 연구의 PM을 맡은 조문석 한성대학교 교수는 패널 연구 대상으로 과몰입위험군으로 분류됐던 한 초등학생 응답자의 사례를 소개했다. 해당 아동은 연구 초기에는 게임을 많이 즐기는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위험군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성장 과정에서 친구들이 축구 등 야외 활동에 관심을 보이자 자연스럽게 축구 마니아가 됐고 게임 과몰입위험군에서도 벗어났다.

조문석 교수는 "게임 이용 장애, 과몰입의 양상을 면밀히 파악하기 위해 심리학, 문화 콘텐츠학은 물론 사회학, 경제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 연구진과 함께했다"며 "연구 시작 전에는 '게임이 중독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며 들어오신 분들마저 연구가 마무리될 때 게임이 원인이 아니라는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덧붙였다.

게임 질병 코드 논란은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 질병 분류 기준에 게임 이용 장애를 등록하며 시작됐다. 한국에선 이러한 국제 분류를 토대로 통계청이 5년에 1번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를 제정하는 가운데 2025년 제정 시점에 등록이 이뤄질 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조문석 교수가 게임이용자 패널 연구 과정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사진=이원용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조문석 교수가 게임이용자 패널 연구 과정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사진=이원용 기자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선거 중 게임특별위원회에서 "게임 질병 코드 도입을 유보해야 한다"는 정책 제안을 공식 발표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집권 후 이에 관해 명확한 조치를 내놓진 않았으나, 선거 중 관련 산업 간담회에서 과거 박근혜 정부 시절 게임 중독 관련 입법 시도를 '규제'였다고 비판했다.

세미나의 연사로 나선 김종일 법무법인 화우 게임센터장은 2019년에는 게임을 질병으로 분류했던 WHO가 이듬해에는 오히려 게임을 장려해 '정책적 일관성'이 부족한 행보를 보였다는 점을 지적했다. WHO는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세계적으로 확대되자 고립감 감소에 도움이 되는 콘텐츠란 의미에서 게임 장려 캠페인 'PlayApartTogether(함께 떨어져서 플레이하자)'를 전개했다.

이 가운데 게임 이용 장애 질병 코드를 그대로 국내 질병 분류 체계에도 도입할 경우 게임법(게임 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을 위시한 '진흥법안'과 공중 보건 관련 규제법 체계가 상호 충돌하는 '이중 구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질병 코드 도입이 대한민국 헌법 상 국가 보호 의무가 '국민 권익 증진을 목표로 한다'는 내용과도 모순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게임 이용 장애 질병 코드가 도입되고 이에 따르는 후속 규제가 입안될 경우, 국내 게이머 다수가 이용하는 외산 게임에 대한 규제가 이뤄져 국제 통상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제기했다.

김종일 센터장은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질병 코드를 즉각 도입하는 것이 아닌 다각도의 실증 연구를 통해 충분한 근거를 축적할 것, 질병코드 분류 없이도 전문상담 지원, 가족치료 프로그램 등 비입법적 대안을 활성화할 것, 게임업계와 협업을 통한 자율 규제와 사회 공헌을 강화할 것 등의 정책 제언을 내놓았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