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교시 1학년 1반 국어 수업을 마치고 2층에서 내려오는 나의 손을 잡고 서너명의 여학생들이 자신의 의지를 피력한다.
“이미 참가학생 명단을 남원문인협회에 이메일로 보냈는디? 글구, 내부결재도 다 마쳤구, 가을에 흥부제 백일장에 참가하면 안될까?”
“대회 당일, 현장접수도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는디유, 쌤?”
“쌤이 3,4교시 수업이 있으니, 수업 마치고 교감 선생님과 다시 한 번 상의해볼게. 오후에 방송으로 부르면 쌤에게 오거라. 알았제.”
이런 저런 우여곡절 속에 우리 학교에서는 4명의 학생(1학년 장세인, 홍효영, 2학년 최시헌, 3학년 박수빈)이 운문과 산문 분야에 참가하게 되었다. 대회 당일, 교장실에서 참가 학생들은 최승호 교장 선생님의 격려 말씀을 듣고 남원테마파크 분수대 앞으로 출발하였다.
“쌤, 지는 정말로 떨려유, 초등학교 시절부터 많이 이 대회에 참여했는디, 올해는 유난히 더 떨리는디유, 으쩌쥬.”
“수빈아, 왜 그래, 그러면 1,2학년 후배들이 주눅들잖아, 너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해주고, 원고지 사용법이나 아이디어 등을 알려주거라. 등록하고 글쓰기가 시작되면, 쌤이 도와 줄 수 없으니 말야.”
“근디, 쌤, 상을 못 받으면 으쩌쥬, 지들은 1학년이라 이번이 대회 참가는 처음인디, 세인이, 효영이구먼유. 막, 시방 지금 긴장이되유?”
“그랴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으면 좋겠지만, 쌤도 남들이 하는 말처럼 참가하는데서 만족하려고 해. 일단 욕심도 있어야겠지, 그렇지만 욕심이 앞서면 글쓰기에 방해만 될뿐이란다. 이번 대회로 글쓰기 대회 참가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경험을 쌓는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써 보거라. 평상시 실력을 발휘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거야. 글구 결과가 좋지 못하더라도 다음 기회를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해보자구나.”
“아, 네, 쌤, 노력해 볼께요.”
“2학년 시헌이 3학년 수빈이는 작년에도 이 대회에 참여했었으니, 긴장은 덜 할거야. 힘내자. 울 친구들.”
2015년 5월 22일(금) 09시 30분. 우리는 한국문인협회 남원지부(회장 김두성)가 주최하고 남원시가 후원하는 제85회 춘향제 기념 학생 백일장 대회가 열리는 춘향테마파크 내 바닥 분수대 앞에 서 있었다. 대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초·중·고 참가 학생들이 등록을 위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남원문인협회 김길수 사무국장의 사회로 대회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글의 주제이다. 김두성 회장의 인사말씀과 심사위원장의 심사 기준 발표에 이어 공개된 제85회 춘향제 기념 학생 백일장 대회 주제는 초등부, ‘나의 꿈, 아빠, 선생님’, 중등부 ‘나의 기도, 엄마, 시험’이다.
초·중·고 참가학생들은 춘향테마파크 분수대 주변의 나무 그늘에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준비한 연습장에 열심히 글을 써 내려가기에 분주하다. 울학교 4명의 학생들도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선·후배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미소가 절로 나왔다.
제85회 춘향제 기념 학생 백일장 대회 결과는 당일 오후 남원시청 홈페이지에 공지사항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제85회 춘향제 학생백일장 수상자 명단
나의 기도
최시헌(용북중 2-2)
매일 밤 기도했다.
돌아와 달라고
매일 밤 기도했다.
나 여기 있다고 소리쳐 달라고
매일밤 기도했다.
시간을 되돌려 달라고
하지만 신은 허락하지 않았다.
내 기도는 물거품이 되었고
내 물거품은 아픈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내 눈물은 시린 기억을 흘려보냈지만
시린 기억은 다시 돌아와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모두들 의미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모두들 그 정도면 됐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도 기도한다
제발 돌아와 달라고,
제발 소리쳐 달라고,
제발 그 춥고 어두운 곳에서 나와 달라고......
피지 못한 꽃들이
바다에 잠겼고
주지 못한 마음은
눈물에 잠긴다
이 시대는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 말한다. 인쇄문화와 인터넷 문화의 발달로 넘치는 정보를 소화해 내지 못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적이란 생각이다.

어른들의 입장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면 책을 읽지 않고 글쓰기도 싫어하는 것으로 편견 아닌 편견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대회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한 사실은 부정적인 어른들의 걱정 어린 눈길에도 여전히 책을 많이 읽고 생각하고 글쓰기를 즐기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글을 작성하는 지금 나는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이것이 살아가는 재미가 아니겠는가? 아, 지금 나는 행복하다.
박여범 용북중 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