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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

일제 지배전략처럼 동남아 파고드는 '원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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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지배전략처럼 동남아 파고드는 '원조 프로젝트'

안도현의 글로벌 경제투어(12)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문화재 복원, 환경보호, 예술 지원…


앙코르와트에서도 문구 눈에 띄어


한국도 좋은 이미지 심는 데 노력을


▲캄보디아프놈펜왕궁이미지 확대보기
▲캄보디아프놈펜왕궁
[글로벌이코노믹 안도현 데카트롱 동남아 개발담당 총괄이사] 중국에서 가방털이, 외국인 사기, 소매치기를 당하고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던 나는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베트남으로 향하는 국경도시에서 나는 중국경찰, 공안을 찾아갔다.

경찰서에는 새벽부터 있었던 것 같이 손에 굵은 철사를 감고 있는 용의자가 무릎을 꿇고 복도에 있었다. 구치소로 보이는 곳은 더러운 밥그릇이 광저우 식당에서 보던 동물들이 갇힌 철장 안의 것과 비슷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구치소였다.

공안에서 서툰 중국어와 영어로 도난 상황을 신고하고, 현금과 신용카드가 없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한 경찰이 능숙한 영어로 도와주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안정환과 성이 같다며 나에게 아침식사를 사겠다며 호의를 베풀었다. 나름 엘리트 경찰 느낌이 났으며 한국인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이 대장금을 비롯한 한류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중국에서 한국 콘텐츠의 힘은 굉장했고, 처음 보는 사람들도 한국인을 좋아하는 것 같았지만 일본인에겐 그렇지 않아 보였다. TV에선 일본군과 싸우는 공산당 영웅들이 계속 방영되고 있었다. 식사를 하고 경찰서에 돌아오니 한 경찰이 기차 안에서 발견했다며 현금을 뺀 지갑을 돌려주었다.

정지시킨 신용카드 일부를 제외하곤 다행히 직불카드가 있어 ATM에서 현금을 찾을 수 있었고 공안에서 발급받은 서류들을 보여주며 다행히 베트남 국경도시까지 갈 수 있었다. 택시 기사와의 흥정 끝에 베트남 국경까지 가기로 하고 가는데 갑자기 산중턱에서 택시 기사가 돌변했다. 길이 험하니 돈을 더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다시 사기를 당하는 기분이 들어 매우 화가 났지만 산속에서 혼자 남는 것이 두려워서 재흥정을 시도했으나 결국 터무니없는 가격인상으로 협상은 실패했다. 남방계 중국인들이 동남아의 상권을 제패하는 것은 바로 이런 집요한 돈을 위한 집념일 것이다. 끊임없이 돈을 찾는 하이에나처럼 지치지 않고 노력하고 있었다. 재물을 숭상하고 매일 돈을 위해 기도하는 이들은 언젠가 결국 전 세계에서 가장 집요한 부자들이 될 것이다.

나는 중국 국경 도시의 산속을 혼자서 걸었다.

한참 뒤에 한 무리의 여행객을 실은 툭툭이 지나가자 나는 힘껏 손을 흔들어 히치하이킹을 했다. 뭔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툭툭기사는 미소를 보이며 합승을 시켜주었고 동유럽 배낭여행객들과 중국에서 일어난 온갖 험난했던 이야기들을 공유하며 국경까지 올 수 있었다. 그들도 역시 찢어진 가방들과 공안의 서류들을 보여주며 중국 여행의 공감대를 느끼며 급격히 친해졌다.

ㅇ 철저한 준비성의 독일 여행객, 치열한 삶의 중국계 미국 여행객


베트남 국경 통과는 오히려 중국보다 거칠었다. 여권이 가짜 같다며 한참을 사무실에 감금시켜놓고 서비스비를 요구했다. 베트남 입국부터 험난한 과정이 시작되었다. 입국심사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결국 도시로 가는 버스시간이 끝났다며 국경 숙소에서 머물러야 한다고 했다. 웃돈을 주자 택시 한 대를 소개시켜주었다.

결국 유럽 여행객과 택시비를 분납하기로 하고 바로 하노이로 직행했다. 하노이에 도착하면서 간단한 현지 식사를 했는데 이때부터 급성배탈이 시작되며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고열과 설사를 동반하며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구토를 시작하는데 여러 약을 먹어도 낫지를 않았다.

결국 독일인 여행객이 건네준 약을 먹고 감쪽같이 나았는데, 그는 자신이 가져온 비상상비약을 보여주며 매우 자세하게 현지의 질병들을 알려주었다. 여행에 대비한 철저한 준비와 과학적인 분석, 그리고 뛰어난 효과의 독일 의약품. 나는 이후 독일인과 독일의 과학과 의학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갖게 되었다.

베트남에서 외국인은 걸어다니는 지갑이며, 틈새를 보이면 돈을 흘리는 어린아이 같은 존재로 보이는 것 같았다. 난 배낭여행객으로서 신중한 계산과 집요한 협상을 하는데도 결국 바가지를 쓰거나 뭔가 손해를 보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중국에서부터 베트남까지 초긴장 상태와 스트레스가 계속되어 빨리 다른 나라로 이동하고 싶었다.

베트남에서 체류하고 다시 라오스로 향했다. 태국의 글자와 배우, 불교 사원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신기한 산들이 계속되었다. 분명 옆에서 보면 좁고 얇은 연필처럼 생긴 산들이 고개를 돌리자 넓고 포근한 능선을 품은 산이 되었다.

아름다운 자연풍경과 순박하게 보이는 사람들, 라오스의 느낌은 매우 아늑한 산골 마을의 느낌이었다. 험란한 중국과 거친 베트남을 거쳐 도착해서인지 낮은 물가의 라오스에서는 가격 흥정 없이 돈을 지불했다.

비엔티엔에서 하루를 머문 뒤 다시 태국으로 떠났다. 동남아의 가장 중요한 목적지인 앙코르와트에 가기에 일정을 서둘러야 했다.

지친 몸을 태국의 마사지로 풀고, 태국 국경도시에서 앙코르와트가 있는 시엠립으로 향했다. 동행한 일행은 중국계 미국인 여자 2명과 독일인 남자 1명이었는데 나름 짝이 맞아서 같이 이동하게 되었다.

중국계 미국인 여자 한 명은 변호사이고 또 다른 한 명은 큐레이터라고 했다. 이들은 얼굴에 선블록 크림을 하얗게 바른 한국인 남자 2명을 조롱하며 한국 남자들이 일본 게이샤 같고 왜 얼굴에 새하얀 선블록을 바르는지 모르겠다며 자신들의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며 웃고 있었다.

또 한국 여인들의 성형열풍과 자외선 차단에 대한 집착은 백인 제국주의의 영향이라며 자신들은 자연스럽게 작은 눈과 갈색 피부를 유지하겠다고 했다.
미래의 백인들은 성형 안한 작은 눈의 중국인을 선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계 미국 여성의 자신감은 상상외로 강하고 견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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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변호사라면 연봉이 얼마나 많을까? 이 여자 변호사는 가난한 캄보디아인과 1달러도 안 되는 돈을 주지 않으려고 몇 십분을 싸우고 있었다.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한 단 1센트도 줄 수 없다며 승강이를 벌이는 그녀에게 나는 왜 그렇게 현지인을 무시하느냐며 그들에게 겨우 1달러를 주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이 이해가 안 간다고 따졌다. 결국 팁을 요구하는 운전기사와 몇 십분을 싸우고 1달러를 아꼈다며 좋아했다.

저녁에 이 지독한 중국계 미국인 가족의 인생사를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밀입국했고, 길거리 음식을 주워먹으며 돈을 모아 미국으로 향하는 밀항 컨테이너를 타고 캘리포니아에 갔다. 그리고 온갖 험한 일을 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고 지금은 샌프란시스코에서 꽤나 유명한 부자가 되었다.

하지만 부모는 자녀에게 단 한 푼도 지원해주지 않았고 교육을 제외한 나머지는 경제적으로 풍요한 지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릴 적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자신에게 부모들은 위로 대신 약해지지 말라며 눈물을 보이지 말라고 다그쳤고 병원비를 갚으라며 대출증을 써줬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장학금을 위해 치열하게 공부해왔고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았다며, 자신과 부모의 관계는 철저하게 현실적이며 부모의 사망에도 눈물은 사치이며 금전적 계산에 따른 이해관계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철도 노동자로 이민 와 미국 내 거대 경제권의 차이나타운을 이룬 중국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배울 수 있었다.

ㅇ 역사는 승자의 기록


과거의 영광스러운 크메르 제국과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의 사원들 속에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며 민족과 도시는 살아남는 자들이 만들어 간다는 생각에 앞으로 미국은 언젠가는 유태인과 중국인에 의해 새로운 역사가 씌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나무 뿌리들이 감싼 석상과 건물들 사이로 일본의 원조 프로젝트 문구들이 눈에 띄었다. 일본은 동남아시아에 일본 자금을 투입하여 문화재 복원과 각종 인프라 지원 등을 통해 좋은 국가 이미지를 세계인에게 심고 있었다.

문화재를 공동 복원하거나 환경을 보호하고 아이들과 예술을 지원함으로써 수많은 동남아인들에게 친일 감정을 심는 과정이 과거 일제시대의 지배전략처럼 치밀하게 국민들에게 일본은 국민을 계몽하고 도와줄 것이란 생각이 분명히 깊이 스며들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과거 일본의 침략행위에 대한 반성 요구도 좋지만 한국 역시 일본 이상의 외교와 대외교류를 통해 친한파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깊이 새겨졌다.

캄보디아 시엠립에서 프놈펜으로 향했고, 나는 여기서 7년 뒤에 나의 캄보디아 사업파트너 툭툭 운전사인 비스나(Vesna)를 만났다.

/글로벌이코노믹 안도현 데카트롱 동남아 개발담당 총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