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이코노믹=김영조문화전문기자] 조선시대 선비들은 청렴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특히 비가 새는 방안에서 일산을 받은 채 “일산(日傘)이 없는 집에서는 장마철을 어떻게 견디어 내나?”라고 했다는 유관(柳寬) 선생은 조선조 청백리로 소문났지요. 또 조선 최초의 백과사전 ≪지봉유설(芝峯類說)≫을 쓴 이수광(李睟光)의 ≪조선의 방외지사(方外志士)≫에 보면 청백리 벼슬아치 김수팽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조선 영조 때 호조 아전을 지낸 김수팽은 청렴하고 강직해 ‘전설의 아전(衙前)’이라 불리는데 다음과 같은 일화도 있습니다.
호조 창고에 나라 보물로 저장한 ‘금바둑알 은바둑알’ 수백만 개가 있었는데 이를 판서가 옷소매 속에 한 개 집어넣는 것을 보았습니다. 김수팽이 “무엇에 쓰시려고 하십니까?”라고 묻자 판서는 “어린 손자에게 주려고 한다.”라고 대답했지요. 이에 김수팽은 금바둑알 한 움큼을 소매에 넣으며 “소인은 내외 증손자가 많아서 각기 한 개씩만 준다고 해도 요정도로는 부족할 것입니다.”라는 말을 해 판서가 금바둑알을 가져갈 수가 없도록 했습니다. 또 김수팽은 아전인 아우가 부업으로 염색을 하는 것을 보고 나라의 녹을 받는 사람이 부업을 하면 가난한 사람이 먹고 살 수 없다며 물감통을 뒤엎기도 했지요.
그렇게 조선 선비들은 ‘사불삼거(四不三拒)’를 좌우명으로 삼고 철저히 지켰습니다. ‘사불삼거(四不三拒)’란 “네 가지를 하지 않고 세 가지를 거절한다.”는 뜻이지요. ‘사불(四不)’은 곧 부업을 하지 않고, 땅을 사지 않으며, 집을 늘리지 않고, 재임 중인 고을의 특산물을 먹지 않는 것을 일컫는 것입니다. 또 ‘삼거(三拒)’는 윗사람이나 세도가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고, 청을 들어준 다음 답례를 거절해야 하고, 재임 중 경조사에 부조를 일체 받지 않는 것을 이릅니다. 이 사불삼거만 잘 지켜도 화를 면하고 올바른 공인으로 살아 갈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