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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라는 존재의 의미와 역할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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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라는 존재의 의미와 역할은 뭘까?

[이 영화가 필요한 사람들] 일본 영화 시리즈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글로벌이코노믹=홍이 자유기고가] '이 영화가 필요한 사람들' 코너는 수익성을 기준으로 영화를 바라보는 상업적 잣대와 일반 대중이 공감하기엔 다소 무겁고 거리감이 있는 평론적 잣대, 그 사이를 지향합니다. 영화 속에 숨겨져 있는 키워드를 발견하고, 그 영화가 진정으로 필요한 보통 사람들을 재조명하는 글을 남기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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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そして父になる , Like Father, Like Son , 2013)

개 봉: 2013. 12. 19

감 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주 연: 후쿠야마 마사하루, 오노 마치코, 마키 요코, 릴리 프랭키

상영시간: 121분

※ 이 글은 영화의 상세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6년간 키웠던 아들이 내 친자식이 아니다’라는 줄거리는 마주하는 순간, 예상치 못한 비극에 온 가족이 오열하고, 문제의 원흉을 찾아내 뺨 세례를 연발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비단 나 뿐 만이 아니리라.

영화가 끝날 때까지 등장 인물 어느 한 명도 과잉된 감정을 보여주지 않는, 놀랍도록 차분한 이 일본 영화는 자극적인 줄거리의 전개 대신, ‘아버지’라는 존재의 의미와 역할을 되새기는 ‘성장 영화’로서 관객들을 마주한다.

1) 이 영화가 필요한 첫 번째 보통 사람들
- 피아노를 배우던 유년 시절을 보낸 사람들

피아노는 이 영화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한다. 일본 사회의 성공한 비즈니스 맨으로 짐작되는 주인공 ‘료타’는 아들 ’케이타’에게 하루도 빠짐없이 피아노 교습을 시킨다. 그에게 피아노 교습은 ‘케이타’에게서 자신을 닮은 승부욕과 뛰어난 능력을 발견하길 바라는 하나의 욕망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좀처럼 늘지 않는 ‘케이타’의 피아노 실력과, 경연 대회에 나가서도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난 친구의 피아노 실력에 감탄만을 늘어놓는 모습을 보며 ‘료타’는 못 마땅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급기야 ‘케이타’가 자신의 친자가 아니라 병원에서 바뀐 다른 집안의 자식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처음 뱉은 그의 말은, 친자가 아님을 눈치 채지 못하고 6년 간 남의 자식을 키웠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아내 ‘미도리’에게 잊혀질 수 없는 한 마디가 되고 만다.

“역시, 그랬었군
- 료타


갑작스레 찾아온 현실에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료타’는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다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부모님을 찾아 뵌다. 부모님과 살가운 관계가 아닌 탓인지 뾰로퉁한 표정으로 일관하고 있는 ‘료타’를 향해, 아버지는 결국 피는 속일 수 없고, 다른 집에서 살고 있는 너의 친자식 ‘류세이’는 점점 더 널 닮아갈 것이라고 조언한다. 그 때, 어김없이 화면으로 흘러 들어오는 엉성한 박자감의 음악은 바로 옆 집의 피아노 소리. 아버지는 창문너머 옆집을 노려보며 호통을 친다.

“3년 간 한 곡을 치면서도 그렇게 밖에 못 치는군! ”
- 료타의 아버지


‘케이타’가 그랬듯, 우리에게도 방과 후 유행처럼 미술과 피아노 배우기에 여념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료타’의 아버지는 마치 재능이 없음을 알면서도 자식에게 배움을 강요하는 누군가의 아버지를 꾸짖듯, 이내 들려오는 울퉁불퉁한 피아노 소리를 향해 ‘이제 그만 할 때도 됐다’며 소리를 친다.

2) 이 영화가 필요한 두 번째 보통 사람들
- 인생의 고난에 봉착했으나 자체적인 문제 해결 능력 부족으로 자괴감에 빠진 사람들

처음 ‘료타’가 이 상황을 마주한 이후, 그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적극 수용해보기로 한다. ‘케이타’와 ‘류세이’ 둘 다 키워보는 건 어떠냐는 직장 상사의 제안과, 원래의 자리로 돌아 갈 수 있도록 자녀를 교환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제안을 모두 실행에 옮겨보지만 문제는 말끔히 해결되지 못한 채 ‘료타’를 더욱 괴롭게 만들고 만다.

“굳이 다른 사람의 흉내를 내지 않아도 되잖아
- ‘류세이’를 키운 아버지, 유다이 -


우연히 디지털 카메라에 담겨진 사진을 돌려보던 중, ‘세이타’가 찍어둔 사진 속에 무심한 듯 자고만 있는 자신의 모습들을 발견한 ‘료타’. 결국 그는 ‘이제 너는 진짜 아버지와 사는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며 돌려보낸 ‘케이타’를 찾아가, 미션은 종료되었음을 외친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 상황을 풀어나갈 것을 선언하며 6년간 함께 살아왔던 ‘케이타’의 손을 붙잡는다. 인생을 살아가며 수도 없이 마주하게 될 예상치 못한 고난을 이겨내기 위해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결국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을 선언한 ‘료타’는 이제서야 비로소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이 진정한 아버지로 거듭났음을 인정받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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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 영화가 필요한 세 번째 보통 사람들
-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믿는 사람들

영화는 이 난감한 상황에 대한 말끔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이야기에 대한 명확한 종결을 그리지도 않는다. 두 가족의 부모와 아이들이 한 데 섞여 이제는 누가 누구의 자식인지 잘 구별이 되지 않는 그 순간 영화는 끝을 맺는다. 영화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말하는 ‘료타’의 아버지도, 결국 자신이 ‘료타’라면 ‘세이타’와 ‘류세이’ 둘 중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선뜻 답을 내리지 못하는 수 많은 관객들도 뒤로한 채, 비극에서 탄생한 이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알리며 또다시 담담한 피아노 선율을 스크린에 새겨 넣는다.

‘자신의 핏줄을 운운하는 것은, 자기 자식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나 하는 말이에요.’
- ‘류세이’를 키운 어머니, 유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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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 대한민국 보통 사람을 자처하는 자유기고가 ‘홍이’ (블로그 주소: http://blog.naver.com/elliot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