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바·딥시크 등 무료 모델로 세계 시장 공략…美, 독점적 지위 흔들리자 오픈소스로 맞불
성능·현지화 내세워 아시아 시장서 각광…'다윈식 생존경쟁' 거쳐 거대 기업 탄생 예고
성능·현지화 내세워 아시아 시장서 각광…'다윈식 생존경쟁' 거쳐 거대 기업 탄생 예고

올해 들어 중국의 AI 기술 발전은 봇물 터지듯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월, 추론 기능으로 크게 호평받은 딥시크(DeepSeek)의 'R1' 모델이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R1 모델은 자연어 생성, 수학 문제 해결, 논리적 사고, 프로그래밍 지원 등 다양한 영역에서 높은 정확도를 보이며 미국산 AI와 맞설 기술을 입증했다. 곧이어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Alibaba)가 지난 7월 '큐웬(Qwen)'을 선보였고, 이후 문샷(Moonshot), Z.ai, 미니맥스(MiniMax) 등 수많은 모델이 연이어 발표되며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었다.
이들 모델의 공통점은 누구나 무료로 내려받아 자유롭게 수정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오픈소스, 혹은 오픈웨이트(open weight) 방식이라는 점이다. 이 같은 개방성은 중국 AI 기술이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핵심 동력이다.
미국 기업들은 거센 압박에 직면했다. 챗GPT 개발사로 폐쇄형 모델의 상징과도 같았던 오픈AI마저 8월 초, 'gpt-oss'라는 첫 오픈소스 모델을 공개하며 맞불을 놓았다.
◇ '기술 표준' 넘어 '지정학' 경쟁으로
기술의 역사는 산업 초창기의 수많은 경쟁자가 소수의 승자로 좁혀지는 독과점의 역사임을 증명한다.
중요한 것은 이 '업계 표준' 경쟁이 반드시 기술 우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사용자가 얼마나 쉽게 접근하고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지가 승패를 가르는 핵심 변수다. 이러한 개방성을 무기로 한 중국의 공세에 워싱턴과 실리콘밸리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7월 'AI 실행 계획' 보고서를 내고 오픈소스 모델이 일부 사업과 학술 연구 분야에서 국제 표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며 '미국의 가치에 기반한 선도적 개방형 모델'을 구축할 것을 국가 과제로 제시했다고 밝혔다.
옴디아(Omdia)의 리안졔 쑤 애널리스트는 "미국 기술로부터 고립을 두려워하는 중국은 오픈소스를 국가 차원의 전략적 대안이자 비상 자원으로 육성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중국은 AI뿐만 아니라 운영체제(OS), 반도체 아키텍처 등 다른 핵심 기술 분야에서도 오픈소스 연구를 장려하며 기술 독립을 꾀하고 있어, 양국 간 기술 경쟁의 새로운 국면을 예고한다.
◇ 언어·문화 이해도 앞세워 아시아 시장 공략
정치 논란을 떠나 산업 현장에서는 이미 오픈소스 AI 채택 경쟁이 치열하다. 많은 기업은 민감한 정보를 외부에 노출하지 않고 내부 시스템에 직접 설치해 자유롭게 수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픈소스 모델을 선호한다.
동남아시아 최대 은행 가운데 하나인 싱가포르 화교은행(OCBC)은 구글의 '젬마(Gemma)'로 문서를 요약하고, 알리바바의 '큐웬'으로 코드를 작성하는 등 약 30개의 내부 도구를 오픈소스 모델 기반으로 개발했다. OCBC의 도널드 맥도널드 임원은 "어느 시점에서든 우리는 약 10개의 오픈소스 모델을 안정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특정 모델에 종속되는 것을 피하고 기술 유연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능 면에서도 중국 모델의 약진은 두드러진다. 아티피셜 애널리시스(Artificial Analysis)는 알리바바의 큐웬3 모델이 수학·코딩·추론 능력 면에서 미국의 오픈소스 대항마인 오픈AI의 gpt-oss보다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물론 큐웬3가 gpt-oss보다 모델 크기가 약 두 배 커 단순 작업에서는 에너지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아마존 웹 서비스(AWS) 역시 자사 기반시설에서는 오픈AI 모델의 비용 효과가 더 크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시아권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실용성 측면에서 중국 모델의 손을 들어주는 목소리가 높다. 일본 요코하마에서 활동하는 우사미 신이치 엔지니어는 최근 고객 서비스 챗봇 개발에 알리바바의 큐웬을 채택했다. 그는 "미국 선두 모델은 사용자의 숨은 뜻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응답이 충분히 정중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며 "큐웬은 이러한 문화적, 언어적 미묘한 차이를 훨씬 잘 처리했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AI 산업은 현재 경쟁이 극심하다. 초기에는 폐쇄형 모델의 가격 인하 경쟁에 집중했지만, 최근에는 더 많은 사용자와 대중 인지도를 확보하기 위한 오픈소스 경쟁으로 전선이 넓어졌다.
86리서치의 찰리 차이 기술 애널리스트는 "중국 기업들은 당장의 수익보다 사용자 고착도를 우선한다"고 설명했다. 우선 무료 모델로 막대한 사용자 기반을 확보한 뒤, 클라우드 서비스, 앱·특화 기능 등 부가 서비스를 팔아 수익을 창출하는 장기 전략을 편다는 것이다.
딥러닝.AI(DeepLearning.AI)의 앤드류 응 대표는 최근 블로그에서 현재 시장을 '다윈식 생존 경쟁'에 비유했다. 그는 치열한 경쟁에서 일부는 도태되지만, 기술과 생태계를 기반으로 살아남은 소수가 거대 기업으로 거듭난다며, 이러한 과정이 강력한 기업의 출현을 이끌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