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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의 포춘500 기업열전] 도요타, 자동차로 일으킨 부흥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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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의 포춘500 기업열전] 도요타, 자동차로 일으킨 부흥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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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 모터 쇼.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 김대호 소장] 도요타자동차는 2014년 ‘포천500’의 글로벌 랭킹 9위에 올라있다. 전 업종을 통틀어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규모가 큰 기업이다.

일본 1위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아시아 민간기업 중에서도 단연 최대이다.

세계 자동차업계에서도 2008년을 기점으로 GM을 넘어 황제로 군림하고 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새로 팔리는 자동차 100대 중 15대는 도요타가 만든 것이다.

도요타자동차의 모태는 일본방적이다. 일본방적은 도요타 사카치가 창업한 섬유회사다.

사카치의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다. 독학으로 수많은 기계를 개발해낸 유명한 발명가다. ‘미국에 에디슨이 있다면 일본에는 사카치가 있다’라는 말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올라있다.

사카치의 대표적인 발명품은 물레에서 실이 끊어지는 것을 자동으로 탐지해내는 기계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방적기는 도중에 실이 끊겨도 인지하지 못한 채 계속 돌아갔다. 사람이 일일이 지키지 않으면 실이 꼬여 엉망이 됐다.

사카치의 발명으로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섬유산업의 본거지인 영국도 놀란 일대 혁신이었다. 사카치의 일본방적은 자동방적기를 앞세워 큰돈을 벌었다.

그 돈이 바로 도요타자동차를 일으킨 시드머니가 됐다. 사카치의 아들인 가이치로가 1933년 자동차사업을 시작할 때 투입한 기초자금이 바로 방적회사의 돈이었다.

일본인 손으로 만든 일본 최초의 자동차인 ‘도요타AA’가 1936년 마침내 선보였다.

태평양전쟁 때에는 트럭을 생산하여 큰 재미를 봤다. 일본의 아시아 침공에 트럭으로 ‘움직이는 발’의 역할을 하면서 도요타는 세계의 기업으로 뻗어났다. 그야말로 일취월장, 욱일승천의 기세로 성장해나갔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큰 위기를 맞는다.

갑자기 수요가 줄어들면서 어려움에 처했다. 급기야 1950년 6월 파산신청을 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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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 아키오 회장의 연설 모습.


그 때 이변이 생겼다. 이웃 한국에서 전쟁이 터진 것.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이 군수용으로 도요타 트럭을 대량으로 주문했다. 미국에서 가져오기에는 어려움이 많다고 보고 미제대신 대안으로 도요타를 찾은 것이다.

도요타로서는 한국전쟁이 희소식이었다. 도요타는 ‘6.25 전쟁’ 덕에 파산을 신청한 지 불과 2주 만에 그야말로 기적같이 도산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한국동란 이후 도요타는 미국으로 시선을 돌렸다. 1957년 ‘미국도요타판매’라는 회사를 설립하면서 미국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새로 개발한 ‘크라운’이 미국시장에서 대박을 냈다.

1964년부터는 태국을 시작으로 다시 아시아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군국주의 일본이 시도했다가 실패한 아시아의 제패의 꿈을 도요타가 대신 해냈다.

1972년 유가파동이 밀어닥치면서 도요타는 또 한 번 날개를 달았다.

유가폭등으로 가스소비가 적은 소형차에 인기가 몰리면서 도요타의 인기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석유파동을 미리 내다보고 소형차생산에 집중 투자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대형차 위주의 미국 자동차회사와의 경쟁을 피해 블루오션을 찾는 과정에서 소형차에 집중했고 그 전략이 고유가시대에 우연하게도 맞아떨어졌다.

1998년에는 렉서스로 고급차시장에도 뛰어들었다. 렉서스는 지금도 미국시장에서 만족도가 가장 높은 자동차다.

도요타는 하이브리드 차 생산에도 가장 앞섰다. 1997년 전기를 이용하여 가스소비를 확 줄이는 프리우스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상용화한 것이다.

도요타 성공의 비결은 뭐니뭐니해도 기술이다.

사카치, 가이치로 등으로 이어지는 역대 최고경영진들은 대부분 발명가이거나 엔지니어 출신이다. 직접 엔진모터를 해부하여 설계도를 작성하면서 기술개발을 진두지휘했다. 기술개발투자 비중도 역대 일본기업 중 단연 최고이다.

한번 출고하고 나면 거의 고장이 나지 않는 완벽에 가까운 기술은 도요타가 세계를 평정하는 데에 큰 디딤돌이 됐다.

도요타는 지금도 기술 지상주의를 신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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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의 경영지표


이른바 TPC라고 불리는 ‘도요타 생산방식’은 가장 이상적인 제조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도 포드 시스템과 함께 양대 생산방식으로 경영학 교과서에까지 올라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한 치의 재고도 없이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만 부품을 들여온다는 JIT시스템은 도요타의 가격경쟁력을 올리는데 기폭제가 됐다.

도요타는 2008년 마침내 세계 1위의 자리에 올랐다.

당시 글로벌금융위기로 휘청거리던 GM을 따돌리고 자동차 황제로 등극한 것이다. GM은 도요타가 기술을 전수한 사실상의 스승이었다. 스승을 넘어선 것이다.

대규모 리콜사태로 잠시 흔들렸으나 아키오 회장취임 이후 다시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2014년에도 1023만1000대를 팔아 세계1위를 차지했다.

도요타의 역사는 곧 일본의 성공드라마이다.

도요타의 신화는 또 후진국에서도 얼마든지 세계최고의 기업을 일으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 살아있는 교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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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500 거대기업 해부 기사. 글로벌이코노믹 3월25일자 5면에 게재된 글로벌이코노믹 경제연구소 소장 김대호 박사의 글이다.




김대호 연구소 소장/ 경제학 박사 tiger8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