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성의 세금이야기] 세종대왕이 더욱 칭송받는 이유? 조세법률주의 실현한 성군

“정한 법 이외에는 털끝만큼도 더 거두지 못한다”… 토지 1결(6마지기)에 10두(2가마니)의 세금 받아

기사입력 : 2017-11-1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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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은 법에 따라 세금을 거두는 공법으로 부국강병을 시현했다.

[글로벌이코노믹 김대성 기자]
한 나라가 흥망성쇄를 겪는 데에는 세금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군주가 가혹한 세금을 거두면 백성들의 민심이 이탈하고 결국 국가가 멸망의 나락에 빠지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역사로 입증됐다.

서양의 봉건제나 동양의 왕조 시대에서 전제군주나 왕은 마음대로 세금을 부과했고 백성들은 온갖 고통을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백성들에 대한 수탈이 도를 지나치게 되면 폭동과 반란이 일어났고 백성들로부터 제대로 세금을 받지 못하는 국가는 재정난 속에 소멸되게 되는 수순을 밟았다.

우리나라 헌법 제59조는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조세법률주의에 의한 과세원칙을 표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세법률주의를 공식 표명한 세종대왕의 치적이 돋보인다.

“백성에게 거두는 세금이 제한이 없으면 임금의 쓰는 것이 한정이 없으니, 그 수량은 시기에 따라 알맞게 가감하며 정한 법 이외에는 털끝만큼이라도 더 거두지 못한다.”

조선의 제4대 왕인 세종의 역사를 기록한 세종실록은 즉위 1418년 8월부터 세종 32년까지의 1450년 2월까지 국정을 담고 있다. 세종 28년, 세종대왕이 의정부에 명한 말이다.

세종은 법에 따라 세금을 거두게 하는 조세제도인 ‘공법’을 확립했다. 공법 토지 1결당 일정하게 10두의 세금을 정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1결은 농지 6마지기의 크기이며 1마지기가 200평 규모이므로 통상 1200평 규모라 할 수 있다. 쌀 1두는 1말과 같은 16kg이며 쌀 한가마니가 80kg으로 5두인 셈이다. 10두는 쌀 2가마니 분량이다.

요즘 논 1마지기에서 농사가 잘 될 때 얻는 생산량은 쌀 4가마니 정도다. 6마지기 논에서 얻는 수확량은 24가마니가 된다. 조선시대에는 쌀 생산량이 훨씬 적었을 것으로 보인다.

세종대왕 당시 1결에서 얻는 쌀이 20가마니로 추정했을 때 쌀 2가마니를 세금으로 거둬 들인 셈이다. 세종대왕 시대에는 쌀 생산량의 약 10분의 1을 세금으로 정한 것으로 보인다. 쌀 생산량이 20가마니보다 적으면 세금은 약간 높아지게 된다.

세종대왕이 이 제도를 마련되기 전까지는 매년 개별토지의 수확량을 조사하여 납부액을 결정하는 과전법이 시행됐다.

이는 관리가 직접 논밭을 돌아보면서 농사의 수확량을 확인하고 그에 따라 세금을 정하는 방식으로 조사과정에서 관원들의 자의적인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많았다.

관원들은 눈치를 봐야하는 지체 높은 양반들에게는 세금을 거두지 않고 힘없는 농민들에게만 세금을 거두는 일이 빈번했다.

세종대왕이 공법을 마련하면서 과세요건이 법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관리들의 재량권이 대폭 축소됐고 지방수령과 고관대작들 간의 뇌물 연계고리를 약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세종대왕은 공법을 시행하기 전 백성들에게 의견을 물어봤는데 역사 기록에는 1430년 3월 5일부터 8월 10일까지 약 5개월 간 전국에 걸쳐 조사가 이뤄졌다.

당시 17만여명이 찬반을 표명했는데 찬성의견이 9만8000여명으로 약 57.6%의 찬성률을 보였다고 한다.

세종 26년 공법은 연분 9등법과 전분 6등법으로 최종 확정됐는데 그 해 풍흥과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 토지등급이 정해지면 세금이 자동적으로 결정되도록 했다.

세종대왕의 공법은 부국강병의 초석이 됐고 조선이 500년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재정적 기반이 되었다.


김대성 기자 kimds@ 김대성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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