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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강릉서 상경한 이도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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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강릉서 상경한 이도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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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트렌드라이터)
강릉으로 사람이 몰린다. 평창 올림픽 때 개통한 KTX가 뚫려 교통이 빨라졌고 미세먼지의 영향이 거의 없다. 강릉시는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백두대간에 가로막힌 지형적 여건에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동풍의 영향으로 수도권 지역보다 최대 7배 이상 미세먼지 농도가 낮아 여행객과 이사 오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미세먼지를 피해 강릉으로 여행을 간다라는 신조어인 ‘피미강릉’을 직접 확인하세요”라는 광고를 게재했다. 꽤 오래전부터 강릉은 경포대나 오죽헌만의 도시가 아니다. 먹거리부터 넘쳐난다. 안목과 사천해변, 그리고 경관 좋은 숲속 곳곳에 숨어있는 커피 명가와 수제맥주 브루어리는 젊은이들의 인스타 성지다. 교동짬뽕은 이미 짬뽕의 대명사고 백선생의 방문으로 불붙은 장칼국수집들이 버스 터미널 주변에 즐비하다. 삼교리와 형제와 동해의 이름을 가진 강릉 3대 막국수집은 각각 담백하거나 고소하거나 시원한데 서울의 유명한 평양냉면집 못지않게 줄이 늘어선다. 깊은 산과 푸른 바다가 있고 먹거리가 다양한데 기찻길이 뚫리고 먼지 없는 맑은 공기라니! 강릉이 제철을 만난 것이다. 강릉은 고향 진부에서 가깝기도 하고 재작년 학생들을 가르친 기억이 있어 내게 각별하다. 그때 만난 이도현(24)에게 기별이 왔다. 서울에 있는 The SMC Group이라는 디지털 광고회사에 취직했다며 보고 싶다는 문자였다.

2017년 봄 나는 가톨릭관동대학교의 산학협력단 교수였고 그는 학생이었다. 성실하고 착했는데 광고 디자인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몇 푼 안 되는 장학금에도 밤을 새워 일했는데 프로들 못지 않았다. 그는 같은 꿈을 꾸는 기준, 성현, 연제, 혜은, 도환이와 함께 ‘늘솜’이라는 광고디자인 동아리를 만들어 나를 찾아왔다. 광고인이 되어 강릉을 떠나고 싶다고 했고 서울에서 온 내게 그 가능성을 엿보았다. 현실을 감안해야 했다. 행복은 성공이 아니라 성숙의 과정이니 성장을 위한 삶 그 자체가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어떤 일을 하든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라고 했다. 크리에이티브의 영역이 인공지능의 몫이 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본질은 영원할 테니 인문과 경험으로 실력을 기르면 오히려 기회가 늘 것이라고 했다. 그들에겐 손에 잡히지 않는 막연한 이야기였으리라. 떠들면서도 내내 미안했다. 그들과 ‘똥막’이라는 막걸리 집에서 노래를 듣고 경포대에 누워 별을 보았다. 작년에 들렀을 때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고 ‘똥막’은 불이 나서 문이 닫혀 있었다.
그 때 나는 방 한 칸을 얻어 서울을 오가며 살았다. 동서울터미널에서 강릉으로 가는 길은 3시간 남짓 걸렸다. 경기도 광주와 여주를 지나 원주와 둔내를 거쳐 평창 휴게소에서 한 번 쉬고 속사와 진부를 거쳐 대관령으로 접어드는 길이다. 자미로콰이(Jamiroquai)의 virtual Insanity나 오아시스(Oasis)의 Don’t look back in anger 같은 산뜻한 팝송이나 커피처럼 마음을 가라앉히는 쇼팽(Chopin)의 Nocturne, 사티(Erik Satie)의 Gymnopedies를 들으며 다녔다. 한잠 자고 나면 강릉이고 서울이었다. 김광석과 같은 해에 요절한 에바 캐시디(Eva Cassidy)가 마지막 순간 친구들에게 들려준 What a wonderful world도 자주 들은 노래다. 나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나의 강릉 유숙은 음악이 없었다면 한없이 처량한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강릉의 봄과 여름, 하숙집 옥상에서 바라본 붉은 노을과 대관령 꼭대기에서 돌아가던 풍차도 지금 내 감수성의 조각들이다. 그러니 서울로 입성한 이도현에게 전한다. 心不在焉 視而不見(심부재언 시이불견)이라고 했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말이다. 서울에서 부딪히는 모든 일들을 가슴에 담아 의미를 새겨라. 힘들고 외로운 시간이 인생의 영약으로 다려지리라. 일과 돈은 인생의 그림자일 뿐임을 알게 되리라. 힘내라 이도현!


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트렌드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