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가계빚 폭탄... 무서운 놈이 다가온다

공유
0

가계빚 폭탄... 무서운 놈이 다가온다


지난 2007년 20년간 다니던 건설회사를 그만두고 지하철역 근처에 식당을 낸 김창석(56)씨는 최근 매출이 줄어 고민에 빠졌다. 당시 퇴직금을 다 털고, 부족한 자금 1억원을 5년 거치, 10년 상환으로 대출을 받았는데 올해부터 원리금 상환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요즘 주변에 비슷한 가계들이 늘면서 매출이 줄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2만~3만원짜리 정식 메뉴보다는 1만원 이하 점심메뉴를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매출이 신통찮습니다. 벌써부터 직원들 월급에 임대료, 재료비를 부담하는 것도 벅찹니다. 앞으로 대출금을 어떻게 갚아나갈 지 막막합니다."

좀처럼 유로존 먹구름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중국과 미국, 유럽에 대한 수출은 감소세로 돌아섰고, 중소기업들은 부도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기업들의 3분기 체감경기도 다시 악화된 모양새다.

최근에는 국내 경제가 '상반기에는 저조하지만 하반기로 갈수록 회복된다'는 상저하고(上低下高) 전망이 힘을 잃었다. 유로존의 실물 경기 침체와 재정위기 불안이 지속되면서 세계 경기 둔화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실물경기 악화는 한국 경제의 '만성질환'인 가계부채에 독약이다. 900조원을 넘는 가계부채를 적절하게 관리하지 못할 경우 역으로 금융시스템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은 물론 가계 스스로 '부채 관리'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실물 경기 침체 심화... 가계빚 덮친다


최근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도 한국의 가계부채에 대한 심각성을 경고했다. 무디스 홍콩 지부 메리 램 신용등급 담당 연구원은 "한국의 가계부채는 유럽의 재정위기 또는 중국의 경기 하강 등 금융 쇼크에 취약하다"며 "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진단했다.

무디스는 위험요소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대출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특히 고령층과 서민층에서 대출이 급증하고 있는 점을 꼽았다. 대출 규모가 큰 자영업자들의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6%)보다 높은 23%에 달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한국 경제의 가계빚이 유로존 국가와 비슷하다는 경고도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이 81%로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스페인(85%)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73%보다 높은 수치다.

박종갑 대한상의 조사2본부장은 "OECD가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을 3.3%로 낮게 예상한 이유로 높은 가계부채를 지적할 만큼 국내 가계부채는 규모나 증가속도 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특히 세계경제 침체가 지속되고 국내경제가 회복이 지연될 경우 가계부채가 경제위기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은행 가계신용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공식 가계빚은 올해 3월 말 911조4000억원이다. 이는 지난해 12월 말보다 5000억원이 줄었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에 대한 총량 관리에 나선 데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 주택대출 수요가 줄어든 탓이다.

◇저소득층-자영업자 '가계빚 뇌관'으로

질적인 측면에서 가계대출은 안심할 수 없다. 더욱이 경기 악화와 화학적 결합을 하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실물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면 상환능력이 낮은 저소득층과 다중 채무자들을 중심으로 2금융권의 가계부채 부실은 물론 생계형 대출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한계 고령층 가구들이 보유 자산을 매각하면서 자산 가격이 급락하는 악순환도 불가피하다.

최문박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유럽 재정위기는 반복되면서 장기화될 수밖에 없고, 올해 하반기는 물론 내년에도 글로벌 경제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국내 경기 역시 빠른 회복세를 보이긴 어렵고, 예상보다 안 좋거나 회복세가 느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그는 "저소득층을 위주로 가계대출 연체율이 늘고, 부채가 증가한 것은 소비를 위한 차원이 크다"며 "소득 여건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가 추가적으로 악화되고, 부동산 경기마저 나빠질 경우 담보 가치가 떨어지면서 부실 채권비율이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동안 가계부채가 카드와 캐피탈, 저축은행 등 소액대출시장을 중심으로 급증했다는 점도 '부메랑'이다. 연체율 추이도 심상찮다.

나이스신용평가정보에 따르면 올해 1분기 30일 이상 연체자의 비율을 살펴본 결과, 저축은행의 경우 13.98%로 1년 전보다 1.60% 포인트 증가했다. 카드사와 캐피털사의 연체자 비율도 각각 5.47%와 7.67%로 1년 전에 비해 1% 포인트 이상 증가했다.

특히 올해 1분기를 기준으로 향후 12개월간 신용불량자로 등재되는 비율은 지난해 4분기보다 0.11%포인트 증가한 4.78%로 나타났다. 상위 1~3등급의 불량률은 변동이 거의 없는 반면 4~6등급과 7등급 이하의 불량률이 늘었다. 저소득층의 채무 상환능력이 악화되고 있다는 증거다.

김영일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원은 "그동안 은행의 가계부채 증가율은 완만했지만 비은행권은 가파르게 증가했다"며 "비은행권에서 늘린 200조원의 대출 가운데 상환 능력이 양호한 사람들보다는 자영업자를 비롯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갔을 확률이 높다"고 우려했다.

김 연구원은 "하반기에 자영업자를 비롯해 내수 쪽의 실물경기 약화 문제는 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다만 대규모 가계 부실로 가거나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흔들만한 크게 문제가 되는 상황은 아닐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부채 조정-신용 관리가 중요해졌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최근 간부회의에서 "가계부채는 일거에 해결하기는 어렵고, 지름길도 없다"고 일갈했다.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안정화됐지만 여러 가지 불안 요인이 남아 있기 때문에 가계부채 관리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결국 금융당국은 한국은행과 공조를 강조하면서 총유동성의 안정적 관리와 일자리 창출을 통한 상환능력 제고, 서민금융 강화 등을 꾸준히 추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연착륙 대책과 함께 개인 입장에서는 '채무 관리'가 중요한 숙제로 나선다. 실물 경기 침체에 대비해 가계에서는 부채를 조정하고, 신용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재우 나이스신용평가정보 신용컨설턴트는 "서민금융 지원제도의 활발한 이용을 통해 가계 부채를 완화할 수도 있지만 가계 부채를 줄이기 위해선 근본적으로 더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아 지출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신용이 좋은 만큼 낮은 금리의 대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신용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일 연구원은 "앞으로는 당분간은 주택가격이 예전처럼 몇 년 안에 1.5배~ 2배가 되는 상황이 되기 힘든 만큼 성급하게 재산을 증식하기보다는 가급적이면 안정적으로 가계 재무를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뉴시스>

▲ 가계부채 증가율.(표=대한상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