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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원' 보다 '온리 원'이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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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으로 보는 미술사(13회)-이육록과 마리오 보타

꼭 위대한 예술 아니어도 누군가에겐 감동 줄 수 있어


고 신용호 교보생명 회장,


토속적이고 정서적인 이육록 그림에서 가슴 위로 받고


세계 최고의 건축가 마리오 보타에게서 정신적인 보상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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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한오 서양화가] 이육록과 마리오 보타. 이 두 사람을 한꺼번에 거론한다는 것이 무척 어색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한 지면에 놓기 어색한 두 사람을 필자에게 소개시켜준 사람이 있다. 신창재 교보생명회장의 선친이자 교보생명을 창업한 고 신용호 회장이 그 분이다.기실 신용호 회장을 처음 필자에게로 모시고 온 사람은 신창재 회장이었다. 당시 그는 서울대 의대 교수의 신분이었고 선친의 뜻이었던지 본인의 뜻이었던지 모르지만 의대교수의 신분으로 시장 모퉁이에 있는 조그만 필자의 사무실까지 찾아와 부친의 건강 상담을 의뢰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놀라웠다.
그러나 상담 중 간간히 살펴본 그의 얼굴은 전형적인 선비의 모습이었고 그것도 까탈스러운 것이 아니라 푸근하고 온화한 사람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눈이 동그란 모습이었고 전형적으로 욕심 없는 따듯한 사람의 인상이어서 그가 태생적으로 비권위적이고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 솔직한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찾아오신 성의에 대한 답방 겸, 교보생명 2층 프랑스 식당 라브리에 새로운 프랑스인 쉐프가 왔다는 이유로 우리 부부와 그들 부자의 초대로 오찬이 있었다. 그 오찬에서 재미있는 해프닝이 일어나 더욱 기억에 남기는 하지만 그 후 신창재 회장과는 만날 일이 없었고 창업자 회장과는 지속적인 만남이 계속됐다.

신 회장과 만날 당시 필자가 그림을 그리는 화가인 것을 감춤으로써(그가 대단히 손이 큰 컬렉터로 소문나 있어 성격상 감추게 된다) 가끔 그가 소장하게 된 작품의 자랑을 듣는 괴로움(?)을 당하였다.

▲ 이육록의 무제
어느 날 성북동 자택에서 차 한잔 하자고 하셔서 방문하였더니 소개할 사람이 있다고 하여 얼핏 보니 한사람의 노인이 보이므로 내심 이육록 작가려니 생각하였다. 이육록 작가에 대한 신 회장의 사랑은 교보빌딩 1층의 거대한 회화 작품과 더불어 재벌에게 후원받는 부러운 화가로 화가들 사이에 회자된 지 오래되었다.

검은 빵 모자를 쓴 얼굴이 불콰하고 덩치가 커다란 화가는 인사를 나눈 후에 내내 말없이 앉아 있고 회장님은 자신의 고향 사리원과 작가의 고향 전라도 등과의 유사함을 이야기하며 작가의 정서가 자신에게 어떤 그림으로 다가왔는지를 열심히 설명하는 가운데 필자는 자세를 모로 꼬고 앉아 이야기하는 분이 기분상하지 않을 정도로만 흘려듣고 있었다.

1년의 절반은 파리에서 생활하고 나머지 절반은 한국에서 활동한다는 작가의 이야기에 묘한 질투심을 느끼며 자리를 파하였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한 사람의 화가가 꼭 대단히 위대하고 뛰어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는 행복함을 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지막 잎새와 같은 정서들을 경험하고 필자가 조금 성숙된 이후에야 깨달은 사실이다.

▲ 이육록 작 추경
어느 날 신 회장님과 오후에 만나기로 약속하였는데 회장님이 처음으로 약속장소에 필자보다 늦게 도착하셨다. 그런데 늦어서 미안한 표정이 아니고 들어서면서 내내 싱글 벙글하시면서 물으신다. “한 선생! 오늘 내가 누구를 만났는지 아느냐”고. 고개를 가로젓는 필자에게 방금 전 자신이 마리오 보타를 만나고 왔다고 아이처럼 흥분하며 말씀하셨다. 거대 기업의 회장이 한사람의 예술가를 만났다는 사실에 대하여 그렇게 기쁠 수 있다는 사실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짐짓 이해하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신용호 회장은 토속적이고 정서적인 측면이 강한 이육록의 그림에서 가슴을 위로 받았고 세계 최고의 건축가에게서 정신적인 보상을 받으려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예술은 정서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두 가지 가치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현대 미술의 흐름 속에는 태국의 아피차퐁과 같이 원시 밀림속에서 출생하여 성장해 로컬의 정서를 현대적으로 승화시켜 작업하는 사람도 있고 영화감독 김기덕과 같이 같은 로컬인 우리조차 이해 못하지만 세계적인 평론가나 유럽의 지식인들은 이해할 수 있는 기독교의 원죄 또는 윤리관, 성서의 차용 등을 통하여 작업하는 사람도 있다.

원시적 환경에서 태어난 아피차퐁의 작품이 세계인들을 또 다른 정신세계로 안내하는 측면이 있다면 김기덕은 우리에게는 그저 잔인한 화면과 이해 못할 내용이지만 유럽인들의 정서에 커다란 울림을 주는 것 같다.

어찌하든 중세 사회의 장인들이 주문자의 요구에 상응하는 작품을 만들고 그 댓가로 생활하는데 만족하였다면 오늘날의 작가의 개념이 좀더 폭 넓은 대상을 아우르고자 하는 의지를 갖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육록은 그의 작품 속에 현대 사회의 중심부를 관통시킬 위대한 사상이나 의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소박한 풍경과 고향의 정서 같은 것들을 방금 딴 과일을 조신하게 바구니에 담는 농부의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가 만약 히말라야의 광활한 대자연을 화폭에 담았다 하더라도 그의 그림에서 종래 이러한 소박한 고전적 의미의 장인의 정서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대단한 후원자로 인하여 작업환경이 좋아지고 좀더 앞선 예술을 체험하기 위해 오랜 기간 파리에 머물러 있었다 하여도 그의 그림은 본인을 위하고 자신과 정서적으로 교감할 소수의 대상만 찾았다는 장인의 관점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 마리오 보타의 건축마리오 보타의 작품은 세계인 중에서도 지배계층의 의식을 관통할 새로운 패션을 추구한다. 혹자는 그가 붉은색의 중세의 정서가 묻어나는 벽돌을 건축의 소재로 사용한다고 해서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작품을 지향하는 작가라는 등의 이야기도 있지만 그가 추구한 것은 가진자들과 권력자들의 취향과 정서를 파악한 영민함과 더불어 예술보다는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재능을 보여주고 있는 안도 다다오 등의 부류의 건축가로 보인다. 그의 대부분의 건축 작품은 거대한 프로 젝트가 아니라 예술을 소유하고 향유하려하는 부자들의 취향에 적합한 적당한 규모의 작품에 한정되었고 스틸, 유리, 벽돌 등 비록 건축의 소재가 바뀐다 하여도 또는 어느 장소에 지어지던 간에 그의 건물이 기념비가 되고 싶어하고 랜드 마크가 되려하는 관점은 동일하다.

보타의 작품이 국내외에 어디에, 얼마만큼 있는지 필자는 잘 모른다. 대부분 그의 이름은 스스로 지식인이라고 자부하는 자들의 교만을 과시하기 위한 문장의 장식어처럼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필자가 본 작품 중 교보빌딩은 강남대로와 사평로가 교차하는 풍수적으로 음기가 대단히 강한 자리에 지어졌다. 그 자리는 사방의 음기를 빨아들이는 형국으로서 건물을 두 개의 덩어리로 갈라놓을 자리가 아니고 한 개의 덩어리로, 그것 도 모퉁이를 둥글게 만들어야 하는 자리다. 풍수를 공부한 사람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풍수적 이해가 없이 마구지은 건물은 건물주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건물은 음과 양이 모이고 흩어지는 정류장과도 같기 때문이다. 건축할 당시에 충언하지 못한 게 어른의 사후에 못내 아쉬워 하던 참에 어느 날 근처를 지나다 교보빌딩의 대각선 방향에 창문조차 둥그런 건물이 올라가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음터의 대각선 방향의 양터에 그것도 양기가 잘 흘러 나갈 수 있는 둥근 형태의 건물을 지었다는 현명함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건물로 인하여 맞은 편 교보빌딩까지 편안해 보였다.

우리옛 어른들의 말씀 중에 집짓고 돌아가신다는 말이 있다. 집짓는 것이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라고 보는 것이다.

같은 관점에서 보타의 작품 중 제주도에 있는 유리 조형물과 같은 작품을 이야기한다면 초원위에 세워진 둥근 건물이 일견 자연과 잘 어우러져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 작품에서도 작가의 브랜드 가치를 뺀다면 사용자가 그 유리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황토로 지어진 펜션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가 인정하는 기념비적 조형물은 그 상징성으로 인하여 좀더 부각되게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개인이 소유해야 하는 건축물들은 덜 위압적이고 덜 상징적이고 덜 1등이었으면 한다. 두바이와 같이 1등 건물들의 집합체인 도시보다는 몇 백년 동안 건물 하나하나에 퍼스낼리티가 살아있는 파리가 가보고 싶은 이유일 것이다.

글을 쓰다보니 김수근의 빨간 벽돌로 지은 공간사옥에서 마시던 따뜻한 커피 한잔이 그립다.

/한오 서양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