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2.7배인 빙하와 피오르드의 아름다운 섬 뉴질랜드, 오클랜드가 있는 북섬에 도착한 신혼여행 첫 날, 게스트하우스 더블 침대 아래층에서 자고 있는 아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결혼한 승무원 동료들의 고급 시계와 명품 가방, 화려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기본으로 웨딩촬영과 화려한 식장에서의 결혼식, 남편의 직장과 배경, 아름다운 휴양지와 리조트의 신혼 사진들을 통해 결혼에 대한 환상을 꿈꾸어 왔다. 그런데 항공사 객실 승무원인 아내는 대학생 신분의 남편, 매우 검소한 결혼식과 웨딩촬영과 반지도 없고, 명품 선물교환이나 예물도 없는 결혼과정을 거쳐, 항공사 지원 복지혜택인 무료항공권을 받아 도착한 신혼여행지인 뉴질랜드에서 렌터카를 빌려서 허름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이런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한 도미토리 룸에서의 첫날밤은 슬픈 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들에게 결혼에 대한 지원을 일절 받지 않기로 했고, 학생 신분의 남편과 직장 초년생의 20대 아내에게는 결혼식에 대한 최소한의 경비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결혼은 과정이지 목표가 아니었고, 결혼식은 남들을 위한 것이었다.
남을 의식하지 않은 배낭여행과 외국생활을 통해 만들어진 생각들로 나는 둘만의 행복과 만족이 더 중요했고, 형식적 과정을 위해 소비되는 모든 것이 아깝게 느껴졌다.
계획한 신혼여행은, 여행 초반엔 힘들지만 저렴하게 그리고 후반부에는 편하고 아늑한 일정을 준비하고 경험을 위한 비용은 아끼지 않기로 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결혼식이나 신혼여행이 아닌, 그동안 해왔던 수많은 여행을 통해 얻고 배운 나만의 경험과 노하우의 공유를 통해 수십 년의 기나긴 결혼여행에 대한 공감대와 여행을 통해 힘든 시간을 이겨낼 동반자로서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만약 이런 과정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같이 있는 모든 순간이 행복하다면 앞으로의 모든 인생의 험난한 과정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고, 같이 있는 순간이 불안과 다툼의 연속이라면 우리의 결혼생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첫날 도착한 오클랜드는 한적하고 조용한 뉴질랜드를 소개시켜주었고 수많은 요트와 영국식의 정갈한 도시 분위기로 가난한 신혼부부를 가슴으로 안아주었다. 인구는 400만명에 불과했지만, 양들은 4000만 마리로 사람보다 양과 소가 많은 목축의 나라는 앵글로색슨계 백인이 70%, 마오리 원주민들이 15%를 차지하는 오세아니아의 섬나라로 호주와 더불어 남반구의 대표적 관광지였다.
네덜란드 탐험가 아벌 타스만의 최초 뉴질랜드 탐험에 이어, 하와이 원주민에게 살해된 제임스 쿡(James Cook) 선장은 “지금까지의 누구보다 멀리, 뿐만 아니라 인간이 갈 수 있는 끝가지 가고 싶다” 며 호주, 뉴질랜드, 뉴기니 등의 남태평양과 오세아니아를 서방세계에 소개하며 영토를 개척했고 뉴질랜드의 원주민 마오리족은 와이탕이 조약을 통해 영국화와 식민 지배를 허용했고, 영국은 평화적인 공존관계를 통해 영국 자치국으로 눈부신 성장을 가져왔다.
끝도 없는 초원에는 양들과 소들이 한적한 국토의 대부분에 유유히 풀을 뜯고 있었고, 수십㎞를 운전해도 지나가는 차들이 없었다. 사람이 없이 수만 마리의 양들과 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진을 찍고 노래를 부르고 즐거워하며 여정을 이어갔다.
뉴질랜드 최대의 관광 중심지인 로토루아에서는 다행히 방이 있었고, 트윈 베드이긴 하지만 신혼여행의 달콤한 날들을 보내기엔 충분했다. 유황이 뿜어져 나오는 로토루아의 뜨거운 야외 온천과 혓바닥을 아래로 뽑아내며 눈알을 굴리며 위협하는 커다란 덩치와 화려한 문신의 마오리 족들의 거친 함성과 춤들을 보며 초기의 긴장을 풀며 뉴질랜드에 취해가고 있었다.
뉴질랜드에선 골프가 늘고 말수가 적어지며 고독과 외로움을 이겨내며 살아야 한다며 한국에 대해서는 뉴질랜드가 최대의 녹용수출지라고 했다.
방목된 수많은 사슴들의 뿔을 버리는 뉴질랜드인을 보면서, 한국계 교포는 매우 저렴한 사슴뿔을 공급받을 수 있었고 고가에 건강식품으로 유통되는 녹용으로 만들어 한국에 수출함으로써 거상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판매처를 이해하고 공급처를 이해한다면 버려지는 물건도 다른 어딘가에선 고가로 판매될 수도 있기에 나의 세계시장에 대한 이해의 기회는 설레고 신나는 사업 아이템 발굴과 거래처 확보의 기회가 되었다.
뉴질랜드는 영국식 교육시스템을 고집해 영국 유학을 위한 안전한 교육 거점이란 생각과 맑고 투명한 하늘과 푸른 자연환경으로 관광과 레저의 중심이란 생각이 들었다.
‘반지의 제왕’의 촬영지로 아름다운 자연풍광은 전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또한 영화 초반의 특수효과 작업이 뉴질랜드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 여행할 때 자주 듣던 ‘비바람이 치던 바다~’의 연가는 이 뉴질랜드의 민요라고 했고 뉴질랜드 수도인 웰링턴의 음식들은 풍부하고 달콤했다.
결혼 전날까지도 불확실했다.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나서 후회하자’는 생각의 결혼에 불안했지만, 장기간의 신혼여행을 통해 결혼을 가늠하기로 했다.
소소한 여행의 다툼과 갈등이 커져서 북부 섬에서 남부로의 이동은 불투명해졌고, 이해와 배려보다는 강한 주장과 생각의 차이와 사고의 다름으로 인해 둘은 헤어지기로 했다. 신혼여행 일정이 힘들고 거칠다보니 서로의 숨김없는 성격과 생각을 표출하게 되고 혼인신고가 되지 않은 우리에겐 서로 편하고 나은 각자의 길이 더 나을 거란 생각에 동의했다.
일시적인 감정이 아닌 분명한 생각인지를 묻기 위해 ‘진짜 돌아가고 싶냐?’는 3번의 질문을 반복했고 모두 대답하면 미련 없이 헤어지기로 했다.
두 번이나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대답을 마치고 마지막 대답을 하지 않는 아내를 이끌고 다시 여행에 나섰다. 결정적 순간에서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순간 힘들지만 결국 여행을 무사히 마칠 거라는 기대와 동반자로서의 다름과 차이를 이해하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생기며 둘은 남섬으로 이동했다.
남섬의 화려한 자연 풍광은 얼어버린 둘의 마음을 녹이기엔 충분했고, 나와 너라는 객체에서 우리라는 공동체가 되어, 투명한 호수와 신비로운 산의 풍경들은 영화 속의 순간이며 신비로운 영혼의 안식처에 스며들고 있었다. 평화로운 세계에서 탄식이 절로 나오는 창밖의 풍경은 사사로운 이기적 감정과 욕심을 내려놓고 여행을 통한 경험의 성장을 가져왔다. 우린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사진을 찍지 않고 눈과 몸으로 체험하는 여행을 시작하며 번지점프를 하고 춤을 추고 현지인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번지점프를 만든 회사의 가장 높은 번지점프대에서 망설이는 나에게 번지점프 가이드는 “결혼생활보다 훨씬 쉬우니 뛰어라!”라며 나를 퀸스타운의 호수 아래로 몸을 던졌다. 호텔과 식당 예약 없이 우리가 가는 곳이 숙소였고, 먹는 곳이 식당이었다.
가이드 책이 아닌 배고파서 멈춘 조그만 식당에서 멋진 식사를 발견하고 화장실이 급해 멈춘 길에서 귀여운 동물들을 발견하고 숙소 주인에게 추천받은 액티버티가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번지 점프였다. 그렇게 우리는 소소한 과정을 즐기기 시작했다.
결과만을 중시하고 과정을 중시하지 않는 남자와 과정을 중시하고 결과를 중요시 여기지 않는 여자가 만나 서로 과정을 즐기기 시작하고 목표도 즐기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인생관은 바뀌기 시작했고, 공통의 목표인 행복한 삶을 위해 사사로운 과정을 즐기기로 했다.
신혼이지만 중고가전제품을 쓰고 불필요한 신혼집기 없이 쓰던 숟가락으로 시작해, 하나씩 모아가는 살림과 점점 넓어지는 집과 많아지는 가족 구성원을 지켜보며 성장하는 과정을 즐기기로 했다. 부모님께 신세지지 않으니 명절 등의 부담에서 자유롭고, 결혼자금 대출이 없으니 빠르게 모아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뉴질랜드 횡단을 마치고 아내는 더 이상 화려한 승무원 남편들의 명품 선물을 부러워하지 않게 되었고, 가이드 없이 여행한 것처럼, 부모의 결혼에 대한 관심도 단절시켰다. 힘든 여행을 서로 만들어 가며 과정을 즐기며 목표를 이룬 것처럼, 결혼 생활의 힘든 과정을 이겨내며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목표에 대한 동반자로서 확신을 갖게 되었다. 퀸즈타운의 깔끔한 숙소를 마지막으로 호주 시드니에서 오페라하우스가 보이는 고급호텔에 머물며 처음은 초라하지만 마지막은 화려한 동반자로서 삶의 목표를 세웠다.
뉴질랜드의 신혼여행을 통해 얻은 아름다운 자연과 즐거운 추억, 그리고 다투고 힘든 경험 역시도 자산이 되어 힘들고 어려울 때 서로를 지켜주며 견디는 힘이 되었다.
몇 달 뒤 나는 경기도청 공무원이 되어 외국기업의 투자유치를 담당하며 도지사 해외수행원과 전문통역, 투자유치 공무원으로서 본격적인 공무출장을 시작하게 된다.
안도현 데카트롱 동남아 개발총괄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