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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생존자' 파나소닉의 역설… 소니·LG 떠난 블루레이 시장서 '품귀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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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생존자' 파나소닉의 역설… 소니·LG 떠난 블루레이 시장서 '품귀 사태’

일본 가전업계, 소니 철수 직후 파나소닉에 주문 폭주하며 '이례적 현상'
340만 원대 초고가 모델도 품절… 파나소닉 "생산 라인 풀가동" 공식 사과
사양 산업 속 '독점적 지위' 확보... 마니아층 결집에 실적 호전 기대감
파나소닉은 일본 가전 시장에서 벌어지는 블루레이 녹화기 품귀 현상으로 생산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미지 확대보기
파나소닉은 일본 가전 시장에서 벌어지는 블루레이 녹화기 품귀 현상으로 생산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의 파고 속에서 종말을 고할 것으로 보였던 블루레이 녹화기 시장이 역설적인 ‘호황’을 맞이했다.

소니와 LG전자 등 굴지의 정보기술(IT) 거인들이 잇따라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마지막 남은 파나소닉으로 수요가 쏠리는 '독점적 병목 현상'이 발생했다.

IT 전문 매체 탐스하드웨어(Tom's Hardware)는 지난 11일(현지시각) 보도를 통해 파나소닉이 쏟아지는 주문량을 감당하지 못해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며 생산 체계 강화에 나섰다고 밝혔다.

소니 철수 직후 '낙수효과'… 340만 원 모델도 "없어서 못 판다“


현재 일본 가전 시장에서 벌어지는 블루레이 녹화기 품귀 현상은 주요 공급자들이 시장을 포기한 데 따른 직접적인 결과다. 소니는 지난달 10일, 23년간 이어온 블루레이 녹화기 사업을 순차적으로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LG전자 역시 이미 시장에서 발을 뺀 상태다. 경쟁자들이 무대를 떠나자 일본 내 점유율 1위 사업자인 파나소닉이 시장 전체의 수요를 고스란히 흡수했다.

가장 심각한 공급 부족을 겪는 제품은 2022년 출시된 플래그십 모델 ‘DMR-ZR1’이다. 이 제품은 출고가가 36만3730엔(약 340만 원)에 달하는 초고가 장비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주문이 폭주하고 있다.

파나소닉은 지난 6일 공식 공지문을 통해 "예상을 뛰어넘는 주문으로 제품 인도가 지연되고 있다"라며 "기존 설비를 활용해 생산 교대 시간을 늘리는 등 가동률을 끌어올려 대응하겠다"라고 발표했다.

'수직 계열화'가 만든 생존… 마니아층의 '소장 욕구'가 시장 지탱


파나소닉이 사양 산업의 파고 속에서도 최후의 승자로 남은 배경에는 강력한 '수직 계열화'가 자리 잡고 있다.
업계 분석에 따르면 그간 시장을 떠난 소니와 LG전자 등도 사실상 파나소닉의 광학 드라이브 매커니즘과 시스템온칩(SoC)을 공급받아 제품을 생산했다. 핵심 부품 기술력을 독점한 상태에서 완제품 사업까지 유지하자 자연스럽게 대체 불가능한 지위에 올랐다.

일본 특유의 '팬 활동(오시카츠)' 문화도 시장을 지탱하는 핵심 동력이다.

일본 가전 업계 관계자는 "좋아하는 연예인의 방송을 고화질로 영구 소장하려는 마니아층에게 블루레이 녹화기는 여전히 필수 가전"이라며 "OTT가 채워주지 못하는 '소유의 욕구'가 340만 원이라는 고가에도 지갑을 열게 만드는 근거"라고 진단했다.

'데드 캣 바운스'인가 부활인가… 지속 가능성엔 의문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현상을 두고 '데드 캣 바운스(하방 국면에서의 일시적 반등)'라는 냉정한 평가도 나온다.

물리적 매체 시장의 축소라는 거대한 흐름을 거스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파나소닉은 수요 폭증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생산 설비에 대한 대규모 자본 투자는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이는 현재의 호황이 신규 수요 창출보다는 경쟁사 이탈에 따른 일시적 쏠림 현상임을 인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번 사태는 국내 가전 및 부품 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범용 제품 시장이 레드오션으로 변할 때, 핵심 원천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최후의 틈새시장을 어떻게 장악하고 수익성을 극대화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파나소닉의 이번 '비명 섞인 사과'는 기술의 종말이 아닌, 독점적 지위를 가진 생존자의 화려한 퇴장 혹은 새로운 생존 전략의 시작으로 평가받는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