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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

정형화된 도쿄거리와 사람 속에서 '克日'을 그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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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화된 도쿄거리와 사람 속에서 '克日'을 그려보다

[안도현의 글로벌 경제 투어(22)] 경기도 투자유치 대표단으로 간 일본
일본 기업 '알박' CEO, 세계여행 이야기 주제로 친밀해져

경기도내의 외국인투자유치(FDI)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첨단기술을 국내로 유치하여 싱가포르와 같은 세계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한 경제투자실의 투자진흥과에 배치되었다. 부서간 이동이 잦은 공무원들은 컴퓨터 내에 업무에 관한 자료를 보관하고 문서기록을 통해 그간의 업무진행상황을 파악할 수 있지만 실제로 담당을 하게 된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에 대한 나의 짧은 지식으로 외국기업과 정확한 상담을 하기는 무리였다.

다행히 투자유치매뉴얼이 있어 밤낮으로 외우게 되었고, 전공인 외국인투자유치에 관한 외국인투자유치법 등의 법령 및 제도를 빠른 시간 내에 암기해야 했다.

투자진흥과에서는 재투자와 신규투자를 결정한 외국기업에 대한 투자협약식을 준비하는데 도지사님과 기업인을 모시고 서명식을 위한 발표자료, 협약안 작성을 준비했다.
카메라와 방송장비가 양해각서(MOU) 협약식의 사진을 찍고 난 뒤 외국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식사 및 의전을 준비하는 일을 담당했는데,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일본 기업 알박(Ulback)의 CEO를 모시고 한국 문화와 수원의 문화유산에 대해 설명을 드렸다.

일본의 전통 가옥이미지 확대보기
일본의 전통 가옥
중국의 만리장성의 규모가 더 웅장하다면서 나에게 중국에 가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짧지만 30개국을 방문한 여행과 미국, 인도 유학의 경험에 대해 자신이 젊어서 꿈꾸던 것이 세계여행이었으나, 부모님의 가업을 일찍이 물려받아 평생 사업을 하다 보니 어느덧 노인이 되어 쉽게 여행을 다닐 수가 없었다고 했다. 젊어서 세계를 여행한 내가 너무 부럽다며 사회적 성공과 부는 나이 들어서 이룰 수 있지만, 세계여행은 나이 들어서는 제한이 있다며 자신이 젊었을 때 더 많은 세계를 여행했다면 기업의 세계화, 일본의 세계화를 이루어 지금의 삼성과 LG가 이룬 세계적 성장을 추월했을 거라며 아쉬워했다. 나중에 일본에 오게 되면 연락하라며 명함을 직접 주었다.

투자유치 분야의 전문가로서 산업의 이해가 필요하지만 금융 및 컴퓨터 경험뿐인 나는 첨단산업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부족해서 초기 상담과 미팅은 계속 연기되었다.

바이오산업과 IT산업으로 한국에 투자하는 기업의 상당부분이 일본계 기업이었는데, 디스플레이 산업에 대한 일본의 기술력은 한국보다 앞서 있었다. 패널부분 외의 부품소재 기업들이 한국의 삼성과 LG의 액정표시장치(LCD),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TV의 성장과 함께 일부 한국에 투자하게 되었는데 경기도 산업단지내의 시너지를 위해 한국투자유치를 위한 타깃 기업을 선정해야 했고, 그를 위한 일본기업에 대한 경기도의 투자환경소개를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디스플레이뱅크라는 컨설팅기업이 포럼에 참가하여 한국의 LCD 산업 전망에 대한 발표를 진행하게 되어, 현장에서 경기도투자환경에 대한 소개와 산업에 대한 이해를 위해 일본에 방문하는 첫 번째 공무출장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처음 공무출장…세금 쓴다는 생각에 철저히 사전준비

개인 비용으로 여행을 다니다가 대한민국 공무원의 신분으로서 경기도의 투자환경과 제도를 설명하기 위해 국민들의 세금을 쓴다는 생각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자료들을 준비하고 일본어를 공부했다. 나로서는 첫 번째 일본 방문이었다. 일본의 디스플레이 박람회는 도쿄의 빅쇼(Big Show)에서 개최되었는데 나는 200장의 명함을 일본어로 제작하여 기업들의 명함을 모으기로 했다.

‘와타시노 강코구노 고무인 안상데스, 하지메마시데..’

일본식 90도 인사와 공손한 소개 인사와 그리고 짧은 일본어와 부족한 전문지식을 넓히기 위해 전시회장을 다니며 디스플레이 소재부터 패널, 최종 판매 회사까지 인사를 드리고 업체의 설명을 듣고 제작공정과 산업동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미팅 말미에 한국 투자에 관심 있는 기업들에 대한 소개를 일본 기업들로부터 추천을 받았다. 알박CEO에게서 캐논(Canon) 부사장님을 소개받아 추가미팅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디스플레이뱅크 대표님이 소개하는 발표 자료를 보며 영어로 일본인들에게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을 설명하는 모습이 멋져보였고 언젠가 나의 모습을 꿈꿔보았다. 바쁜 하루의 일정이 끝나고 도쿄 시내를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상상했던 도쿄는 생각보다 화려하고 분주했으며 비슷한 검정 양복과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중년 남성들이 부지런히 이동하고 있었으며 다양한 개성의 젊은이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신기할 정도로 깨끗한 일본의 거리와 일본인들의 모습은 드라마세트장에서 사는 영화배우와 엑스트라처럼 정형화되고 일정한 패턴이 있어보였다.

일본 오사카성 야경이미지 확대보기
일본 오사카성 야경
파친코, 게임, 만화, 야동산업, 스포츠, 음주, 가라오케 등 다양한 유흥문화가 발달되어 있어 억압된 사회구조에 대한 돌파구로서 대중과 서민들에게 왕과 귀족들을 포함한 서열과 엘리트 중심의 학벌사회에 대해 정신적 휴식이 필요해보였으며 오락실, 노래방 등 한국의 유흥문화에 끼치는 영향이 큰 것을 알 수 있었다.

36년의 식민 지배를 통한 반일감정과 일본의 과거사, 소니와 닌텐도와 일본 만화와 게임 등 다양한 일본과의 연관과 1시간 정도의 가까운 비행거리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대해 무지했던 나는 2박3일의 짧은 공무출장을 통해 일본이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면에서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느꼈다.

심리적으로 멀었던 일본이 가까워졌으며 수학여행을 오는 일본 학생들처럼 한국의 중·고등학생이 일본으로 수학여행이나 배낭여행을 가서 일본을 충분히 배우고 이해하여 일본의 장점과 단점을 젊어서 익혀 미래 일본과의 비즈니스에서 경쟁우위를 차지하는 인력을 양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일본의 인구구조와 산업구조의 변화는 한국의 바로미터가 되어 향후 한국의 정책수립에도 많은 시사점과 예측시나리오를 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일본을 더 알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짧은 출장이었다.

유럽 출장 땐 여행경험 살려 도지사 통역 등 최선 다해

신규 전략이 검토되었고, 나는 자동화 등을 통해 투자금액 대비 고용창출 효과가 작은 제조업 중심에서 투자유치를 다변화 차원에서 고용창출 효과가 높은 서비스산업에 대한 투자유치 조직의 변화와 한국의 IT,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문화콘텐츠를 위한 서비스산업 조직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이후 조직개편을 통해 신규 팀인 서비스산업과에 배치되었고 게임, 콘텐츠 산업과 유니버설 스튜디오, 프리미엄 아웃렛, 프로로직스 등의 테마파크, 유통, 물류를 담당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세계여행과 거주경험을 통해 흥미가 많고 이해도가 높은 산업에 대한 신규업무는 분명 가슴이 뛰는 업무의 연속이었다. 공무원 조직에 적응하기 위해 철저히 동료의 복장과 행동, 언어에 익숙해지며 차츰 공무원이 되어갔고, 영어번역과 통역 등의 영어와 투자법령, 제도의 전문가로서 인식되며 모르는 분야를 배우기 위해 업무 외에 동료들을 자원하여 지원하기 시작하며 공무원 태도, 공문서 작성, 결재시스템, 상위기관과의 협조, 언론 및 의회, 민원 협조 등의 기본 소양을 교육과정이 아닌 동료를 통해 배우기 시작했다. 수개월간 투자유치 활동을 통해 기업과의 의사결정과 협상이 마무리되면 도지사 등의 지자체 수장과의 협상 및 서명을 통해 부정적인 신규 외국 기업에 대한 평판과 홍보에 도움이 되는 MOU나 투자의향서(LOI)를 체결하게 된다. 투자진흥과에서는 이런 서명들을 효율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줄이기 위해 해당 국가별로 권역을 정해 해외투자유치 활동을 도지사를 모시고 가게 된다. 경비와 동선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일정협의가 시작되는데 우연히 유럽의 복잡한 동선을 이해하고 유럽여행을 통해 해당 방문도시들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내가 발탁되어 참가하게 되었다. 보통 수년간 해외체류와 해외파견 등 전문가들이 기획하고 참가하는 대규모 도 대표단의 해외 순방단에 참가하는 것은 나로서는 커다란 행운이었다.

일본의 사찰 풍경이미지 확대보기
일본의 사찰 풍경
경기도에 도지사로 선발된 김문수 지사님의 첫 출장에 나는 수행원으로 참가하게 되었고, 검소한 의정활동과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으로 가난하고 힘든 젊은 시절을 보낸 신임 도지사의 첫 번째 해외출장이자 첫 번째 유럽출장을 준비하는 공무원들은 밤을 새우며 준비 소홀로 인한 실수를 근절하기 위해 계획을 준비했다.

유럽을 다니며 수없이 기차에서 잠들었던 나에게는 유럽 도시의 동선과 호텔 위치는 머릿속에 그려졌고 나는 불필요한 비행기 이동 대신 기차와 버스 이동을 제안했다.

하지만 독일, 프랑스, 벨기에를 20명이 넘는 대규모 투자대표단을 이끌고 국경과 운전사를 바꿔가며 이동하는 것은 분명 까다로운 과정이어서, 결국 나는 육로이동에 대한 동선을 담당하기로 했다. 도지사의 옆자리에 앉게 된 나는 독일인 운전사와 짧은 독일어로 다음 행선지에 대해 설명해야 했고, 프랑스 운전사에게 프랑스어로 설명해야 했다. 고등학교 시절과 유럽여행에서 알게 된 짧은 언어들이 유창하게 들렸는지 도지사님은 내게 끊임없는 질문을 하셨고, 나는 서툰 독일어와 영어로 답변을 하기 시작하면서 어렵게만 느껴지는 최고 수장과의 대화를 시작했다. 도시의 특성과 위치를 설명하면서 결국 무사히 출장을 마칠 무렵 김문수 지사님은 내게 “안도현씨는 여기 전에 와봤나요?”라고 물었고 나는 “네. 유럽 28개국을 작년에 동생과 여행했습니다”라고 말했고, “그럼 미국도 가봤나요?”라는 질문에 “네. 미국 48개주를 가봤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후 나는 5년간 경기도대표단의 해외수행원으로 통역과 사회, 행사 진행을 하며 수많은 나라에 공무출장을 다니게 되었다. 치밀한 준비 과정에서는 ‘위궤양’ ‘역류성 식도염’ ‘장염’ 등으로 고생했고 공무 출장 중에 할머니와 큰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장례식에도 참가하지 못했다. 신혼이었던 나는 한 달에 아내를 5일도 보지 못한 적도 많은 날이 계속되었다.
안도현 데카트롱 동남아 개발총괄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