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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한인식당 즐비…황당했던 왕족과의 투자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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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한인식당 즐비…황당했던 왕족과의 투자 상담

[안도현의 글로벌 경제 투어(24)] 중동 비즈니스 출장과 대만 학습 여행
대형 테마파크 자본금 유치 결국엔 실패로 돌아가

개발사업과 테마파크, 유통업체에 대한 프로젝트를 담당하면서 수많은 제안서와 투자자들을 면담했다. 수많은 사기업체를 피해 옥석을 가리는 절차가 중요했고 실사와 재무타당성에 대한 검토가 필요했다. 또한 투자자의 투자유치를 지원하는 것 역시 중요한 업무였다. 대규모 테마파크의 유치 진행에 따라 사업 컨소시엄의 주관사에서 중동의 투자자 면담을 진행한다고 하여 정부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중동 두바이로 출장을 떠났다. 처음 중동 출장이라서 중동의 코트라 담당과 세계적인 사업경험이 있는 멘토인 한미경영원의 장우주 회장을 만나 중동 사업과 투자자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과거 현대건설 대표이사로서 중동 해외사업을 개척한 회장님의 이야기는 살아있는 경영신화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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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신기루
아랍어로 ‘메뚜기’를 의미하는 두바이는 아랍에미리트연합의 한 나라로 국제무역의 중계지역으로, 중동의 뉴욕으로 불리는 중동의 금융 중심지로 많은 기업과 기관에서 벤치마킹을 떠나 투자유치와 개발프로젝트 담당자로서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막의 신화 중심지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었다.

한국 삼성물산에서 시공사로 참가한 세계 최고층(828m) 빌딩인 부르즈 칼리파가 공사 중이었고, 도시에는 고층빌딩 공사와 고급 승용차들이 넘쳐나고 있었으며, 호텔은 수많은 방문객으로 빈 객실이 없었다. 비용절감을 위해 한국 민박집에서 머물렀는데 한국인들 역시 두바이 붐을 따라 급속도로 증가했고 한인 식당과 민박집이 성행하고 있었다. 미팅은 고급 호텔에서 진행되었는데 미팅 대상자는 팜 주메라 개발과 세계 최대의 인공 섬을 개발한 부동산 개발업체인 나킬(Nakheel)사의 사장과 국영기업 대표인 ‘알 스와이디’ 회장과의 면담이었다. 미팅 장소에 도착해서 대표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30분이 지나도록 대표와 일행과의 연락이 되지 않았고, 한 시간이 지나서야 중동의 거물들이 미팅 장소에 들어왔다. 머리에 터번을 두른 두바이인들이 백발의 영국계 재무담당과 변호사를 이끌고 요란하게 입장했다. 팔에는 화려한 금시계를 차고 있었으며 고압적인 외모에 두바이 경찰서장의 타이틀이 적힌 명함을 던지듯이 주었다.

두바이 최고의 개발업체 나킬사에서이미지 확대보기
두바이 최고의 개발업체 나킬사에서
처음 만난 자리에서 보통 자기소개와 회사소개를 하는 게 비즈니스 관행인데, 두바이의 왕족이라고 소개된 투자회사의 회장은 처음부터 말 경주에서 자신의 말이 이겼다며 경주마 이야기와 낙타 이야기로 시작하고, 결국 가장 큰 수익률을 낸 투자인 경주마에 대한 투자를 권하고, 자신의 말을 싸게 팔겠다는 말로 결론을 내렸다. 며칠을 준비해 대형 테마파크 개발의 자본금을 유치받기 위해 준비한 시행사 입장에서는 최대한 기회를 얻기 위해 사업제안과 사업성분석 자료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온 재무담당의 투자제안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중간에 말을 끊고, 전체 사업비가 얼마냐며 자신이 모든 사업권을 갖고 싶으니 자신에게 팔라고 제안했다. 사업을 위한 투자금을 유치하려던 시행사 입장에서는 맥이 끊기는 발언이었고 사업에 필요한 2억달러를 이야기하자 두바이 회장은 자신이 20억달러를 투자할 테니 사업권을 넘기라고 했다. 다들 지치는 이야기가 계속되고 두바이 회장의 꿈 같은 사업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자신이 두바이쇼핑몰을 건설했고, 두바이월드, 더월드, 팜주메라, 선박회사와 해운사, 무역회사를 소유하면서 벌인 사업이야기가 계속되었다.

그가 이루려고 하는 꿈 같은 두바이의 사업에 대한 실현이 불확실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업 파트너에 대한 기본 매너와 배려 없이 일방적인 자신감을 갖는 두바이의 막강한 부와 강력한 힘에 주눅이 들기도 했다. 개발사업과 테마파크 사업의 위험과 기회는 두바이의 성장처럼 꿈의 실현이 되기도 신기루 같은 이상이 되기도 했다. 결국 두바이는 2008년 경제위기를 맞고, 미팅을 했던 기업은 상당한 위기를 맞게 된다. 이후에도 상담을 했던 회장은 계속 말을 구입하라며 e메일을 보내왔다.

대만, 도시환경·문화 우리와 비슷…해안경관 좋아

이후 경기도청에서 경기개발연구원으로 회사를 옮기게 되고, 나는 연구원의 박사들과 함께 경기도의 미래 성장 동력 사업을 발굴하기 위한 태스크 포스 업무에 연구원으로 투입이 되었다.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내부와 외부의 박사들이 모여 미래 성장산업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었는데 대부분이 도심재건사업, 친환경에너지, 한중해저터널, GTX사업 등의 대규모 개발사업과 에너지 사업 등의 의견들이 대부분이었다.

타이베이 시내이미지 확대보기
타이베이 시내
이에 반해 교육 콘텐츠 생산 재단의 꿈의 실현을 위해 미국, 인도에서 경험하고 공부한 나는 교육콘텐츠재단을 지원했는데, 박사학위가 없는 연구원 입장의 제안이 쉽게 무시되는 것을 보고 학위의 필요성과 전문성의 확보를 위해 박사과정에 지원하게 되었다.

평생교육학 박사과정에 입학한 교육학과 사회학, 평생교육에 대한 수업을 듣고 논의하는 과정을 계속하며 이해를 높여 갔다. 몇 학기를 마치고 지도교수님과 함께 대만으로 학습여행을 가게 되었다. 박사과정의 동문들이 대만의 평생교육재단과 대만의 주요 대학을 방문하여 온라인교육과 평생교육의 현장을 방문하는 1주일의 여정을 기획했는데 나는 일부 통역을 담당하기로 하고 대만 여행에 합류했다.

대만 대학의 학장과 교수진들이 평생교육학을 전공하는 우리에게 대만의 해산물과 전통주를 대접하며 환영했고, 학문의 동지로서 많은 자료와 정보를 공유했다.

대만의 기암괴석이미지 확대보기
대만의 기암괴석
대만과 한국은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중국과 일본의 지배를 받았고 공산당과 대적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미국과의 경제, 문화, 외교, 안보 협력 등의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과의 관계에서는 한국이 반일정서가 강한 반면, 대만은 일본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지닌 것 같이 많은 대만인들이 일본식 옷과 문화를 즐기고 있었고 지도자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등의 친일감정이 강해보였다.
한국은 식민지배 엘리트 양성 목적으로 설립된 경성제국대학을 서울대학교의 전신으로 인정하지 않는 반면, 대만은 국립 대만 대학이 일본인에 의해 설립된 타이베이 제국대학을 전신으로 인정하는 등 일본지배와 일본의 영향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일부 대만인들은 과거 외부에서 온 세력인 국민당의 장개석 정부 때 현지인인 내성인과 외성인들 간의 갈등이 심해졌고 세계 최장기 게엄령을 선포하는 등의 갈등으로 일본의 지배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었다.

세계 4대 박물관에 포함되는 대만 국립고궁박물관에는 국민당이 중국 본토에서 가져온 중국의 송, 원, 명, 청나라 시대의 세계적 보물들을 소장하고 있었다. 중국대륙이 넓어도 중국의 진귀한 유물과 고서, 보물들이 대만에 보관되고 있어 진정한 중국의 문화유산을 이해하려면 대만에 방문해야만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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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기암괴석
대만의 음식은 한국 음식과 비슷해 거부반응이 적고 도시 환경이나 문화도 유사점이 많아 혼자서 이동하기에도 어려움이 없었다. 일본 영향을 받아서인지 대륙과 달리 의외로 깨끗하고 사람들의 목소리 톤과 행동도 중국인과는 달랐다. 외모 역시도 약간 왜소한 느낌이 들어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중국인들은 대만인 같다는 편견을 갖게 되었다. 대만은 도교와 불교의 영향이 강해서인지 사원이 많았고 매장풍습이 있는 돌무덤이 많이 보였다. 중국에서 쓰는 변형한 간체자가 아닌 한자(번체자)를 쓰니 과거 한문을 배운 나로서는 훨씬 이해가 빠르고 중국어 역시 보통화를 쓰니 중국어를 배우기에 좋은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교육학 분야의 통역을 하는데 교육학 용어와 전문용어, 한자와 중국어를 잘 모르는 나의 통역은 결국 수많은 박사과정 동료 앞에서 막히기 일쑤였고, 진땀을 흘리며 생에 최악의 통역을 중도에 마치게 되었다.
대만의 자연 경관은 세계적이었고, 고산과 신비로운 해안의 경관을 남기고 돌아왔다.

경기개발연구원에서 수개월간의 도정 연구 과제를 마치고 나는 승진을 하며 경기도청에 복귀하게 되었고, 본격적인 투자유치활동과 해외출장과 투자자 상담에 대한 도지사 보좌를 시작하게 되었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의 순환보직으로 인해 떠나고,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지자 업무 경험과 언어전문성을 가진 나는 더욱 전문가로 입지를 다지며 공격적이며 적극적인 업무추진을 할 수 있었다.
안도현 데카트롱 동남아 개발총괄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