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지금까지 미술관의 모습은 달라지고 있다. 더 이상 미술관은 화려하고 문턱 높은 곳이 아니다. 사람들은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미술관, 작품들이 주인공이며 건축물은 그저 심플한 미술관, 보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미술관을 원한다. 이러한 미술관을 세계 곳곳에 짓고 있는 남자들이 있다. 요시오 타니구치(谷口吉生), 쿠마 켄고(隈研吾), 안도 타다오(安藤忠雄)가 바로 그들이다.
2004년 재개관한 뉴욕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MoMA)은 요시오 타니구치가 리노베이션한 건축물로 뉴욕 시민과 관광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미국 드라마 시리즈 ‘섹스 앤더 시티’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리, 바넷 뉴먼(Barnett Newman)의 브로큰 오벨리스크(Broken Obelisk) 앞에서 만날까?” 당시 뉴요커들이 재개관한 모마(MoMA)에 보내는 관심과 찬사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요시오 타니구치가 설계한 모마는 'Modern'이라는 뉴욕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건축물로 모든 외관과 실내 인테리어가 모더니즘 자체를 대변한다. 자연광이 그대로 들어오는 유리로 된 심플한 건축물과 탁 트인 정원, 유기적으로 설계된 공간은 모마를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는 다른 매력의 모던하고 친숙한 미술관, 일상 속의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쿠마 켄고 역시 미술관 건축가로서 인기가 많다. 도쿄의 산토리 미술관은 2007년 쿠마 켄고의 설계로 재개관해 많은 관심을 받았다. 산토리 미술관은 'Art of Life'라는 콘셉트로 지어졌다. 도쿄의 롯폰기 미드타운에 자리한 산토리 미술관은 모리미술관, 21_21 디자인 사이트, 도쿄 국립 신미술관과 함께 아트 트라이앵글이라 불리는 미술관 구역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도쿄의 화려한 중심가에 위치했지만 매우 절제된 디자인의 전통적인 느낌으로 지어진 산토리 미술관은 나무와 자연을 사랑하는 쿠마 켄고의 건축철학을 여실히 보여주는 건축물로 손꼽히고 있다. 나가사키 현립미술관 역시 쿠마 켄고의 작품으로 환경과 공존하는 건축물을 설계하려는 쿠마 켄고의 노력이 돋보이는 곳이다. 모던하면서도 전통적인 쿠마 켄고 특유의 직선적인 리듬이 구성하는 공간과 나가사키의 훌륭한 자연 경관을 모두 끌어안는 투명한 유리 건물은 그 곳의 작품들을 더욱 돋보이게 해줄 뿐 아니라 모든 바깥 풍경을 작품처럼 보이게 해준다. 쿠마 켄고는 단순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깊이를 가지는 외관과 실내를 가진 미술관을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나오시마의 지중미술관은 땅 속에 지어져 외관이 숨겨져 있으면서도 그 내부는 작품과 완벽하게 조화되는 유기적인 전시 공간을 갖추고 있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나오시마의 베네세 하우스와 이우환 미술관, 우리나라의 뮤지엄산, 미국의 포트워스 현대 미술관 등 많은 미술관을 설계했다. 그의 건축물은 회색의 노출 콘크리트로 된 무미건조한 육면체 속에 끊임없이 기하학적인 공간들을 품고 있다. 미술관에 들어선 사람들의 동선에 따라 자연광과 어둠이 적절히 섞여 만들어내는 빛과 공간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다.
이 세 명의 건축가들이 지은 미술관들의 특징은 화려하지 않지만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지어졌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의 일상적인 공간이면서도 무엇보다 작품들이 가장 돋보이도록 지어졌다는 것이다. 요시오 타니구치는 모마의 재개관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아직 내 눈엔 이 곳이 허점투성이의 미완성에 불과하지만 스스로에게 위로하는 것은, 미술관은 원래 그림을 통해 완성되는 건축물이며, 그림 없이 완벽한 미술관은 실패한 건축물이라는 사실입니다.” 미술관은 이렇게 힘을 빼고 편안한 건축물의 모습으로 우리들 곁에 보다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강금주 이듬갤러리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