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의 글로벌 경제 투어(29)] 중국 칭다오 맥주와 해외 합작 회사 설립
칭다오서 사업하던 한국인들 70%가 야반도주직장을 알아보면서 불안감이 밀려왔다. 낮 시간에 사업을 하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전화 통화를 하는데 직장이 없는 것이 괜히 어색하고 멋쩍었다. 바쁘다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실업과 구직이 현실로 느껴졌다. 직장을 그만 두기 전에 몇 군데 면접을 봐두어서 최종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시간은 매우 느리게 지나고 초조함과 불안감은 계속되었다.
외국인 동료들과 함께 조선족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칭다오(청도) 맥주와 양꼬치를 먹다가 중국 칭다오라는 곳에 가고 싶었다. 중국의 인식은 한국보다 뒤처지는데 칭다오맥주는 한국 맥주보다 훨씬 맛이 좋고 뭔가 다른 마케팅과 역사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간도 겨우 1시간 반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중국어를 전공 했는데도 말 한 마디 못하는 나를 테스트해보고 싶고, 시간 여유도 있어 중국으로 향했다.
이미지 확대보기제복을 입은 안내원이 영어로 설명을 해준다고 했다. 중국어 악센트가 강한 영어로 일사천리로 암기한 듯이 설명을 하고 관심이 없는 분야에서도 기계처럼 안내를 해주었다. 덕분에 맥주의 생성 과정과 첨가물, 비율과 맥주공장의 역사를 알 수 있었다.
중국 칭다오 맥주의 역사를 보면 1897년 독일의 지배를 받아 독일인에 의해서 맥주 공장이 만들어졌고, 이후 일본에 의해 29년 동안 맥주 공장이 운영되었다고 한다. 중국에 있지만 독일 최고의 기술과 최고의 원료, 일본의 관리, 운영 기술이 합쳐지고 칭다오의 물, 캐나다와 호주의 맥아, 중국 신장과 체코의 홉이 배합돼 세계 최대의 내수 시장과 마켓을 통해 급속도로 성장하게 되었다. 서양과 일본의 침략과 지배에도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며 자국의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중국 상술이 대단해보였다.
이미지 확대보기맥주의 기운과 칭다오의 포근한 도시 이미지 때문인지 중국의 밤거리를 혼자서 걷고 있었으며 말도 안 되는 중국어를 하며 제법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2005년 가난해보이던 도시의 부랑민이나, 불안한 눈빛의 중국인들보다 2010년 칭다오인들의 모습은 상당히 다른 느낌이었다. 고급 승용차들이 즐비했고, 초고층의 화려한 빌딩이 서울 중심가보다 많아 보였다. 외국인에게서 돈을 갈취하던 택시운전사들은 도도하게 잔돈을 내주고 있었고 명품 옷과 가방을 든 중국인들이 한국보다 훨씬 비싼 쇼핑을 하고 있었다. 길에서 만난 조선족 중국인은 칭다오에서 한국 사람들이 사업을 많이 했으나 결국 70% 이상이 사업에 실패하고 야반도주를 했다고 한다. 중국이 모든 제조 기업을 흡수하고 있다고 했다.
공무원으로 바쁘게 생활했지만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뒤처진 느낌이 들었다.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해외 출장을 다니며 투자 상담을 하고 나면 자부심이 생겼지만 중국 공무원들의 치열하고 공격적인 기업 유치에 비하면 매우 느리고 뒤처진 자만감이었다. 외국기업 유치로 인한 중국 산업의 다변화와 기술이전으로 중국은 아시아의 리더로 도약하기 위해 기술과 노하우를 빠르게 흡수하고 있었다. 다국적 노하우의 칭다오 맥주가 단순한 맛의 한국 맥주시장을 빠르게 파고드는 것처럼 머지않아 중국 상품이 삼성과 LG의 틈새를 파고들 것이 분명했다.
캄보디아 친구와 합작설립한 여행사 결국 실패
이미지 확대보기외국인을 운송하는 택시들은 한국의 이스타나 중고차를 개조해서 만든 ‘벤츠승합차’였으며 하루에 30달러 정도를 받으며 공항에서부터 앙코르와트까지 분주하게 움직였다.
공무원 연금을 포기하며 받은 퇴직금으로 나는 그와 사업을 하기로 하고, 한국에 산업노동자로 와서 일한 캄보디아 친구에게 연락해 사업체를 만들기로 했다. 실패를 하거나 돈을 잃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최소 범위에서 해외 사업의 기회를 직접 경험하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내 자산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현지인의 지분이 필요하여 48%의 지분을 내가 갖고 49%를 캄보디아 운전기사에게 지분을 주고, 캄보디아 회계사인 친구에게 3%를 주어 경영권은 내가 소유하지만 현지인 지분이 많은 법인으로 합작회사(JV) 설립 계약서를 작성했다. 각자의 이름을 따서 ‘도비스(Dovis)’라는 여행사를 설립하고 회사 로고와 차량을 준비했다. 투자금액에 대해 프놈펜의 땅을 소유한 비스나의 토지를 합작회사에 자산으로 올리기로 했다.
최소비용을 투자하는 것으로 토지를 공동으로 소유하게 되는 모델로 위험을 줄이기로 했다. 회계사인 친구가 자금 관리를 하기로 하고 법인 등기와 운영을 맡았다.
이미지 확대보기한국에서 사장급들이 캄보디아 투자를 위해 연락을 해왔고, 현지 일정을 준비하려고 했지만 캄보디아와 연락이 되지 않아 불안한 마음으로 며칠을 지새웠다. 결국 연락이 닿았지만 택시 사업보다는 가족들을 위해 농사를 지어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해서 차를 세우고 집안일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돈은 중요하지 않으며, 가족들이 더 소중하고 농사는 때가 있으며 자신의 운명은 큰돈을 모을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차를 팔아 그 땅에 주거용 건물을 올리고 마을 사람에게 임대를 해주기로 했다. 거리가 멀다보니 현지에서 진행되는 상황을 잘 알 수가 없었다. 불안감이 가득했고 나는 그에게 나의 불만과 사정을 이야기 하고 투자한 금액을 회수할 것을 요청했다. 결국 일부 사업비를 돌려받고 나는 그 시골 운전사인 ‘비스나’와 더 이상의 사업 파트너의 관계를 접고 좋은 친구가 되기로 했다. 가난한 캄보디아 시골 운전사에게 사업 기회를 주어 운명을 변화시키고자 했던 나의 도전은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나에게는 실제로 회사 설립과 철수까지 하는 매우 소중한 경험을 주었다. 미래를 위한 자산이 될 경험을 위해 나는 돈과 시간을 투자하며 수출, 선적, 대금결제, 법인설립, 계약체결, 마케팅, 고객확보 등의 경험을 통해 해외 사업의 기회와 위험을 직접 체감하게 되었다.
안도현 데카트롱 동남아 개발총괄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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