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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

호주 여행가서도 팬케이크 프랜차이즈 사업권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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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여행가서도 팬케이크 프랜차이즈 사업권 협상

[안도현의 글로벌 경제 투어(30)] 호주·필리핀서 얻은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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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블루마운틴
한국행 비행기에서 삼성물산 경력직 합격 통보받아

신혼여행, 그리고 투자유치 출장, 아내의 호주 비행, 그리고 부모님을 모시고 가게 된 4번째 호주 방문이었다. 처음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호주 여행은 설렘이 가득했지만 부모님께서는 경제적인 부담을 줄까봐 노심초사하는 모습이었다. 사진작가이신 아버지는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현지의 풍경과 손자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에 바쁘셨다. 여행이 사업이 되는 경험으로 승무원들이 자주 가는 팬케이크 전문점에서 사장과 프렌차이즈 사업권을 협상했다. 역시 상당한 자본과 전문 경험이 필요했다.

유칼립투스 가스가 가득해 푸른색을 띠는 블루마운틴에서 사진을 찍기에 정신이 팔리셔서 버스가 떠나는데도 아버지는 오지 않으셨고, 나는 큰 소리로 아버지에게 소리를 지르며 빨리 오시라고 했다. 아버지는 나의 큰 소리에 놀라셨는지 주춤하시며 나에게 오셨다. 항상 가족들을 이끌며 재촉하고 독립적으로 행동하시던 아버지가 호주에서 아들의 지시를 듣고 움직이시는 모습을 보면서 가장의 권위가 이동하는 순간을 느낄 수 있었다. 해외 경험이 많은 나에게 의지하시기도 하지만 조용히 따라오시는 아버지가 노인이 되어간다는 생각에 가슴이 울컥했다.

집안의 가장으로 그리고 부모님이 의지하는 자녀가 되어 더 이상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행히도 돌아오는 비행기 편에 면접을 보았던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경력직 채용에 최종 합격했다는 통지를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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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드니오페라하우스
두바이 버즈 칼리프 타워와 개발 사업에서 알게 된 임원들의 음주 문화와 카리스마가 강한 그룹 회장의 의전 수준은 청와대와 도청에서 의전을 하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고 새벽까지 켜있는 강남 삼성타운을 보며 업무 강도가 매우 높고 경쟁이 치열한 조직문화에 적응할 수 있을지 두려움과 고민이 앞섰다.

하지만 해외를 다니면서 주재원이나 바이어를 만나는 ‘상사맨’이나 해외 정부를 대상으로 제안서를 내고 계약을 체결하는 ‘건설맨’들이 가득한 강남의 세련된 빌딩에 근무하며 한국 사회를 이끄는 대기업과 문화를 알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삼성과 관련된 지인들을 만나 보이지 않는 조직생활의 노하우, 유의사항, 시스템에 대해 들었고 삼성의 주요 핵심 인사들도 만났다. 평소와는 다르게 존칭을 쓰던 VIP, 사장, 임원들이 반말을 하기 시작했고 입사를 위한 서류에 최종 서명을 하자, 그들은 내가 더 이상 편하게 만나거나 상대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었다.

잦은 출장과 의전에 지친 나는 오너들과 밀접하게 될 총무 의전 업무를 거절하고, 인사팀 직원의 결정에 따라 치열한 현장인 개발사업 본부의 신사업전략팀으로 향했다.
삼성의 브랜드 이미지는 세계에서 9위를 차지하며 세계의 중심 기업이 되어 있었다.

중동·아프리카 지역 맡아 해외개발 사업 전략 수립

경력직 교육을 받게 되면서 발표시간에 무대에 나가 인도식과 프랑스식 프레젠테이션을 하면서 좌중에 폭소가 가득하게 되었고 마지막 수료식에서도 대표로 인도식 영어로 인사하면서 팀의 우승을 도우며 가슴 깊이 푸른색을 품은 삼성맨이 되어 기업 문화에 적응하기로 했다. 침묵하며 생각을 숨기며 직급에 따라 행동하는 엘리트 인재들이 가득한 새로운 조직에 적응해야 했고 대기업 문화와 시스템, 그리고 워드프로그램 ‘훈민정음’을 익혀야 했다.

포화된 국내 건설과 개발 사업과 기존 사업이 아닌 신사업전략을 수립해야 했다. 한국의 저출산율과 가계부채 등으로 인한 국내 개발 대신 다양한 해외여행과 해외 사업을 경험하며 변화하는 세계 지도에 따라 출산율이 높고 도시가 성장하는 국가로 시야를 돌려 해외의 새로운 국가와 사업을 시작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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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블루마운틴
나는 과거 해외 투자가의 경험을 살려 전문가들과의 미팅과 자료조사를 통해 해외 개발 사업에 대한 전략을 수립했는데,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이후의 보수적인 경영으로 해외 개발 사업이 전무한 입장에서 내가 제출한 전략은 회사 내부의 벽에 부딪히고 있었다.

하지만 강하게 추진하는 제안서를 방어할 논리가 부족하게 되면 결국 사업이 진행되는 것을 경험한 나로서의 도전은 결국 새로 취임한 최고경영자(CEO)의 해외 사업추진 의사와 맞물려 해외 개발사업의 본격적인 사업 체제가 생기게 되었다. 내가 기획한 기획서가 CEO의 지원을 받으며 사업본부가 사업부로 승격되며 100여명의 인원이 충원되었고 해외 개발의 중심 사업부가 되어 나는 중동, 아프리카 개발사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새로운 국가를 경험하고 방문 영토가 넓어지는 생각에 MENA(Meddle East and North Africa) 전문가가 되기로 하고 사우디 전 대사, 워싱턴 DC의 컨설턴트를 통해 리비아, 알제리 등의 개발 사업과 사람들을 접촉하기 시작했다.

필리핀 치과의사의 외국인에 대한 배려에 큰 감동

갑자기 충치가 심해져 치과에 갔는데 치과 치료비가 수백만 원이 넘게 들었다. 캄보디아에서 5달러에 스케일링을 하고 인도에서 의료 진료를 받아본 나에겐 치아 치료비 수백만원은 해외를 가고 사업을 알아볼 비용이 넘었다.

필리핀 치과 치료비를 알아보고 주말 필리핀 마닐라로 향했고 택시 기사가 추천하는 조그만 현지 치과를 방문하여 치과 진료를 시작했다. 5년 만에 방문한 필리핀 마닐라는 초고층 빌딩과 깨끗해진 거리로 놀랄 정도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일부 중심가 위주로 성장하고 나머지 도시는 여전히 개발에서 소외된 것 같았다.

1층에 위치한 좁은 치과에는 현지 주민들이 가득했고 나는 한국 군대보다 못한 치과 시설에서 치과 진료를 받고 있었다. 미용실과 식당을 옆에 둔 16.5㎡(5평) 정도의 치과에선 여자 치과의사가 간호사 없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 입을 벌리고 있으니 소독이 제대로 되지도 않아 오히려 질병을 옮길까봐 조마조마했다. 항상 모험과 도전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는 의료 진료를 단순히 저렴한 치료비용을 위해 의료 여행을 가는 것은 상당한 모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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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치과치료를 마치고
치과 장비는 어릴 적 보던 것이었고 충치들을 제거하고 빈 공간에 보충물을 채웠다. 긴장을 하지 않아 보이고 혹시나 모를 바가지를 쓰지 않기 위해 치과 의사에게 개인적인 질문들을 하며 친해졌다. 그 치과의사는 의대를 졸업하고 다시 치과 과정을 마쳤다고 했다.

자녀를 미국에서 낳았는데 부모님 요양 차 필리핀 마닐라에서 치과를 운영하는데 수입은 별로 없다고 했다. 필리핀 의사들의 급여가 낮아 미국 등의 북미에 많은 필리핀 의사와 간호사들이 근무하고 있으며 이들이 송금하는 금액이 필리핀 국내총생산(GDP)의 상당부문을 차지한다고 했다. 뛰어난 영어 실력과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자세는 항상 불안한 마음의 환자들에게 큰 위안을 준다고 했다.

치과의 벽에는 예수의 그림과 기독교 문구, 필리핀의 복싱 영웅 매니 파퀴아오의 사진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해외 의사 채용에 관한 내용들이 있었다. 만약 한국 역시 필리핀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한국에서 근무하게 된다면 분명 한국 거주 외국인에 대한 의료 부담과 의사소통 문제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의료사고 등을 보면 쉬운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필리핀 수빅 리조트 풍경이미지 확대보기
필리핀 수빅 리조트 풍경
치과 진료 시간이 한참 걸려 눈을 떠보니 치과의사는 구석에서 치아 틀을 뜨기 위해 정성스레 반죽을 하고 있었다. 세련된 한국 의사의 기계화된 자상한 미소와 깔끔하고 위생적인 한국 치과에 비해, 손으로 만든 반죽가루로 정성스레 틀을 만들고 꼼꼼하게 치료하는 필리핀 치과의사는 한국에서보다 몇 시간이 더 걸려 치료했다. 세심한 배려와 환자에 대한 오랜 시간은 조악한 시설을 뛰어 넘어 감동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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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도심 빈민가
몇 주 뒤 나는 간단한 선물을 들고 다시 마닐라 치과로 향했고, 수백만 원이 드는 여러 가지 충치 치료를 20만 원대에 마칠 수 있었다. 빈부격차가 심한 필리핀의 부자들은 싱가포르, 미국 등에서 치과 치료를 받고 한국인은 필리핀에서 치료를 받으니 향후 의료관광을 통한 의료 국경이 사라질 시대에 대비해 화려한 시설, 조명과 자격증 간판보다 외국인에 대한 배려와 정성이 뛰어난 한국 의사들의 실력과 합쳐지면 세계적 의료 관광 방문국으로 성장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안도현 데카트롱 동남아 개발총괄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