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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목마'의 도시 터키에 삼성 지역전문가로 파견돼 사업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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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목마'의 도시 터키에 삼성 지역전문가로 파견돼 사업개척

[안도현의 글로벌 경제 투어(32)] 지역 전문가(GML) 터키 파견
최첨단 기업이미지와 스포츠 마케팅으로 삼성 브랜드 이미지 급상승

“터키 가봤습니다. 유럽이 3% 정도, 아시아가 97% 정도가 되고 언어는 터키어를 씁니다. 이스탄불에 개발 사업 가능성이 많습니다.”

과거 인지도가 미약하던 삼성이 세계적인 글로벌 경영으로 도약하게 된 계기 중의 하나가 1990년에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도입된 지역전문가제도이다. 글로벌 경영자 양성을 위해 만들어진 이 제도는 현지에서 생활하면서 관습이나 문화를 익히며 1~2년 정도 현지 국가에서 체류하고 현지의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시켜 시장 진출의 기회로 삼는다. 전 세계 80여개 국가에 체류하면서 연봉 외의 체재비를 지원 받으며 마음껏 나라를 조사하여 해외 MBA와 함께 지역 전문가는 직원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삼성물산에서는 지역전문가제도를 추가로 자체적으로 3~6개월을 파견하는 단기 지역전문가(GML)를 운영하는데 사내에서 나름대로의 어학과 해외경험 그리고 근무 경력과 인사평가 점수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지역 전문가를 선발한다.
석양이 질 무렵의 이스탄불이미지 확대보기
석양이 질 무렵의 이스탄불
나는 터키에 가봤던 경험과 어학실력, 그리고 개발 분야 경험으로 터키 지역전문가에 선정되었다. 터키와 관련되어 발간된 책들과 자료를 모조리 구입하고, 터키어를 공부하며 터키 영화를 보며 터키 행을 준비했다. 특히 터키의 역사책을 집중적으로 읽었다. 그 나라의 의식을 지배하는 구조와 시스템을 파악하기 위해 역사는 중요했다.

토목 파트와 플랜트, 주택과 개발사업부에서 파견된 4명이 터키로 향했다. 개발사업의 시장조사와 개발 기회를 발굴하기 위한 전략과 일정을 수립하고 개인통장에 수천만원이 입금되었다. 계획과 목표에 따라 터키 시장을 조사하고 생활하는 비용이었다. 난 매일 다른 호텔에서 체류하며 가장 많은 도시를 방문하며 최대한의 현지 업체들을 만나 프로젝트를 발굴하는 것을 목표로 이스탄불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미리 연락한 현지 에이전트를 통해 민박집에 머물며 장기 숙소와 차량 렌트를 신청하고 현지 컨설팅 업체들과의 미팅을 시작했다. 택시를 타면서 택시기사와 대화를 시작하는데 신기하게도 몇 개 단어들을 연결시키니 대화가 가능했다.

장시간을 두고 사업을 이야기하기보다 관계를 설정하며 파트너의 역량을 파악하는 방법에 따라 터키 사람들과는 터키 차와 커피, 와인을 마시며 그리스와 터키의 신화, 그리고 터키 근대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친분을 키웠다.

‘삼성은 10년 전의 소니(SONY) 같습니다. 여기서 못할 것이 없으니 해 보십시오.’
2002년 월드컵 이후 좋아진 한국과 터키의 우호관계는 한국인을 아르카다시(형제)라고 칭하며 터키의 조상인 돌궐족과 뿌리를 같이 하는 민족이라며 호의적으로 대했다.
삼성의 브랜드 이미지 역시 최첨단 기업의 이미지와 스포츠 마케팅을 통한 인식으로 미팅을 요청하는 업체들 대부분이 미팅을 수락하며 삼성과의 사업에 관심을 보였다.

치열했던 차낙칼레전투 격전지이미지 확대보기
치열했던 차낙칼레전투 격전지
난 통역과 일정관리를 담당하는 개인비서를 채용하고, 차량을 장기 렌트하며 체류하고 있던 호텔에서 투자설명회를 계획하고 현지 건설업체와 개발업체를 초청했다. 투자설명회에 현지 개발업체들이 참가했고 그들에게 삼성의 터키 진출 계획과 사업영역, 회사 소개를 하고 업체들이 가져온 전국의 다양한 개발 사업들에 대한 정보와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현지의 기업체 대표들을 만나 사업 제안과 개발 사업에 대한 설명을 받고 사업 기회를 발굴하기 위한 부지 방문과 상담을 시작했다. 이스탄불에서 진행되는 주요 사업들은 대부분 특정 기업들이 독점하고 있었고 규모가 큰 사업들은 현지 실세인 에르도안 총리와 관계가 있었다. 터키에도 엘리트 카르텔과 군부, 그리고 이슬람 중심의 정당을 중심으로 권력이 집중되고 있었고 에르도안 총리로 균형이 응집되고 있었다.

그림 같은 트로이와 차나칼레


매우 짧게 방문했던 2006년의 이스탄불의 느낌과는 달리 2011년의 터키는 영화같이 화려하며 신비로운 자태를 보여주었다. 숙소를 55층의 레지던스로 정했는데 태양이 뜨고 지며 별과 달이 보스포루스 해협과 마르마라 해, 흑해를 붉게 적시는 풍광을 보면서 매일 들려오는 기도시간을 알리는 음성과 모스크 사원의 첨탑을 보면 뜨거운 감동과 전율이 밀려들었다.

이스탄불은 터키의 수도도 아니고, 단순히 하루 이틀 머물며 케밥과 로쿰을 먹고 탁심광장을 누비다가 소피아 성당과 블루모스크를 방문하고 떠나는 관광지가 아니었다.

이스탄불은 극동 아시아인 한국 부산에서 서쪽으로 끝없이 달려서 도착해서 만나는 아시아 대륙의 끝이었다. 유럽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고 유럽 문명의 기원인 그리스에서 비잔티움(Byzantium)이라고 불리던 문명의 중심지였다.

삼성 터키지역전문가들과 함께이미지 확대보기
삼성 터키지역전문가들과 함께
이탈리아 로마에 비해 저평가되어 있는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기독교의 중심 도시였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군주 정복자 술탄 메흐메드(Mehmed) 2세가 헝가리 대포 전문가를 포섭하여 만든 600㎏의 거대한 대포알이 성벽을 부수며 로마제국을 멸망시킨 곳이기도 하다. 서양 중심의 세계사에 익숙했던 나에게 오스만투르크의 숨겨지고 저평가된 이슬람 문명과 역사는 매력적이었다. 한때 세계 문명의 중심지이며 목욕, 커피, 튤립, 각종 천문, 의학, 과학 기술과 르네상스 부흥을 가져온 문명이 바로 로마와 서양 기독교를 무너뜨리고 수백년 동안 아프리카, 유럽, 시나이반도와 아라비아를 통치한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곳이 바로 오스만투르크였던 것이다.

터키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 방문 기회가 많을 것으로 여겨지는 이스탄불의 중심 관광지를 뒤로 하고 첫 번째로 트로이 목마로 유명한 트로이로 향했다.

먼지를 뒤집어쓰며 중간중간 조그만 마을을 구경하고 도착한 트로이 유적지는 생각보다 찾기가 어려웠다. BC 4000년의 유적이 있고 독일 고고학자가 1870년에 발굴한 이곳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뜨거운 땡볕 아래 트로이의 유적지를 돌다보니 트로이란 영화에서 보던 아킬레스의 멋진 구릿빛 피부처럼 온몸이 익는 것 같았다.

호메로스와 ‘일리아스’, 그리고 ‘오디세이아’ 등의 서양 인문사의 기본이 되는 그 책들에 나오는 ‘일리아스’라는 도시가 바로 트로이였고, 헬레네를 뒤로 치열한 전쟁이 일어나며, 트로이 목마의 배경이 바로 이 트로이란 도시에 있으니 터키의 오랜 역사와 문명의 중심으로서의 터키가 다시 보였다.

엄청난 트로이의 유물들이 슐리만이란 고고학자에 의해 발굴되기도 했지만 많은 유물들이 독일로 유출되었다. 또 러시아로 그리고 행방이 불명해졌고, 발굴 시에 그리스 이후의 많은 유적들이 파괴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평범한 황무지에서 숨겨진 도시를 발굴하고 재조명함으로써 역사의 순간으로 현대 인류를 초대한 것은 분명 높게 평가해야 한다.

토키 최대 개발사 대표와의 미팅이미지 확대보기
토키 최대 개발사 대표와의 미팅
트로이를 거쳐 터키 서부 다르다넬스(Dardanelles) 해협의 항구도시인 차나칼레에 들렀는데 영화 브래드 피트 주연의 ‘트로이’에 실제 사용된 트로이목마 모형이 이 도시에 기증되어 전시되고 있었다. 터키에서 가장 많이 얼굴을 볼 수 있는 터키 공화국을 창시한, 터키 국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갈리폴리 전투에서 윈스턴 처칠이 총괄하는 영 연방군과 프랑스 군을 제압하며 터키의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던 장소가 멀지 않았다.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를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은 1차 대전에서 독일과 함께 패전하며 몰락하기 시작해 유럽 열강에 분할되고 결국 아타튀르크에 의해 현재 영토를 회복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직도 터키인에겐 과거의 영광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보였고, 다양한 민족을 융합시키는 터키어, 그리고 아타튀르크에 대한 향수는 종교적이었다.

조그만 도시인 차나칼레에서 현지 청년들을 만나 같이 어울리게 되었는데 그들은 영어 의사소통이 하나도 안 되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호기심을 갖고 터키어로 말을 시작했다. 결국 그들과 같이 어울리며 그들의 집에 초청받았다. 터키 중산층 가계 형태와 구조, 문화와 의식을 알 수 있는 기회였다.
안도현 데카트롱 동남아 개발총괄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