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는 '어질고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으며 청렴과 결백, 지조라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목숨을 걸고 고단한 삶을 살기도 했다. 이러한 선비들의 아름다운 행적과 향기로운 이야기가 담긴 '선비의 보물상자'라는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은 '다산학 전도사'이자 '반부패 청렴 전도사'로 알려진 단국대 전 부총장을 지낸 김상홍 교수가 반부패 청렴 강의 때에 예화로 든 111편의 이야기를 모은 것이다. 시와 더불어 고단한 시대를 살았던 선비들의 정서를 느낄 수 있고, 우리에게 감동과 미래를 헤쳐가는 힘과 삶의 길을 알려준다.
여러 편 중에서 '이도령은 불량 공무원'이라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다음으로 인상적인 것은 청렴하고 올곧은 선비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삶을 실천하며 살았던 선비들의 이야기였다.
고려의 이공수는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 길에 마부가 말에게 조를 먹이자, 그 값을 베로 쳐서 곡식 낟가리 속에 넣어두었다고 한다. 또한 조선 명종 때 38년간 중요한 자리에서 벼슬을 했던 박수량은 비문을 새기지 않은 묘비로 그의 청빈했던 삶을 전하고 있다. 더불어 성종 때 이약동은 제주목사를 그만두고 돌아갈 때 가죽 채찍 하나를 가지고 있었는데, 작은 것이지만 이것도 제주도 물건이라며 관청의 문루에 걸어두고 빈손으로 떠났다고 한다.
조선 11대 임금 중종은 청문은 맑고 깨끗한 사람이 통과하는 문이고, 예문은 보통 사람이 통과하는 문이고, 탁문은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 통과하는 문으로 궁궐 안뜰에 청문·예문·탁문이라는 3개의 문을 만들어 통과하도록 했다. 고관대작들도 보통문으로 나가는데 조사수는 당당하게 청문으로 들어갔으며 이런 조사수를 아무도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청백리 다산의 아내 홍혜완은 젖먹이 아들 학연을 키울 때 식량이 떨어져 굶주리자 어린 여종이 호박을 훔쳐다가 죽을 끓여 드렸으나 먹지 않았다. 부인은 오히려 어린 여종을 엄하게 꾸짖으며 회초리로 종아리를 쳤다고 한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돌아와 결혼 60주년을 앞두고 지나 온 날을 회고하는 유작시 '회근시'를 남겼다.
선비의 길을 가지 않고 불의한 권력에 빌붙어 영화를 탐하는 썩은 선비를 '부유(腐儒)'라고 한단다. '선비는 얼어 죽어도 곁불을 쬐지 않는다.'는 지조와 기개를 지닌 꼬장꼬장한 딸깍발이 선비들이 많아야 미래에 희망이 있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 때이다. 선비의 마음속 보물 상자에는 청렴과 지조와 기개 등이 들어 있다. 고단하고 힘든 시대를 꾿꾿하게 살아갔던 마음을 한 편의 글에 담아 전하고 있다.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의 나침반으로 우리에게 감동과 때로 삶의 길을 알려 주고 우리들의 삶과 영혼을 아름답고 향기롭게 만드는 선비정신을 마음의 보석으로 품으며 책장을 덮는다.
김희지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진로독서센터 연구원(성남 동광중학교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