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많은 서울, 서민들이 주로 살던 산동네 노후 주택들은 재개발 사업으로 고층 아파트화했다. 이 영화의 무대는 산기슭에 위치한, 서울에서 유일하게 붕괴되지 않은 12층 아파트, ‘황궁 아파트’ 103동이다. 편복도형 평면에 방이 하나 둘 딸린 20평형 이하의 아파트다. 여전히 이곳은 서민들이 살고 있었다.
첫째, 이 영화는 서민들이 아파트를 매입 과정에서 벌어지는 애환을 담고 있다. 신혼부부인 김민성(박서준)과 명화(박보영)는 은행 대출을 많이 받아서 아파트를 구입했다. 주인공 모세범(이병헌)은 시가보다 싼 가격에 나온 매물을 샀는데, 부동산 중개인과 소유주의 공모 사기에 걸려들어 돈을 날리고, 홧김에 사기를 친 소유주 김영탁을 살해한 후 영탁 행세를 하게 된다. 빌라에서 몇 십 년 살면서 돈을 모아 아파트를 매입 사람도 있다. 폐허 속에서 외부 침입자들과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우다가 세범과 민성은 죽고 나머지는 밀려나 뿔뿔이 헤어지게 된다. 결국은 평생 꿈이었던 ‘자가 소유’ 아파트에서 쫓겨나서 홈리스가 된다. 이 서민들을 쫓아낸 침입자들은 누구였을까?
103동에는 빈집이 있었지만, 외부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민들은 드림팰리스 주민 등 외부인들을 경멸적으로 ‘바퀴벌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명화와 도균(김도윤)은 이웃들과 같이 살자고 외친다. 도균은 아파트 복도 난간에 올라가서 “사람이 해도 되는 짓이 있고 안되는 짓이 있다”라고 외치고 투신자살한다. 이 작은 외침은 또 희망을 가져보게 한다. 빈집에 어린이들만이라도 살게 해주었다면 어떠했을까?
셋째, 주인공 세범은 그래도 해피엔딩이다. 세범은 자기 집에서 죽었으니 하는 말이다. 그는 외부 침입자들과 싸움에서 치명상을 입고서도 비틀거리면서 902호 자기 집에 가서 배를 깔고 드러눕고 세상을 떠났다. 원래 ‘주택은 영원한 보호처’다. 자기 집에서 낳고 자기 집 안방에서 죽은 것이 인륜 대사였다. 과연, 지금도 그런가? 주택이 금융 상품화하고 자유 시장에 내 던져졌다.
황궁아파트의 주민들과 드림팰리스의 주민들이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일까? 영화에서는 이들 다 홈리스가 되거나 죽는 것으로 되어 있다. 사통팔달 교통 요지에 커다란 게이트를 세우고 삼중 보안 시설과 식당, 피트니스 등 최고급 시설을 갖추었을 것 같은 드림팰리스 주민들은 다 가졌다고 할 수 있을까?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과연 아파트가 유토피아인가? 묻는다. 한국인들은 여전히 아파트 한 채 장만에 목을 매고 있다. 아파트를 마련한 모두가 유토피아를 차지한 것 같지는 않다. 우리 세대는 유토피아를 잃은 실낙원 세대가 아닐까? 내 집(My Home & House)도 잃고 공동체도 위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앞둔 이병헌의 귀가, 명화와 도균의 인간애에서 다시 희망을 가져본다. 그리고 어느 건축가 말한대로, “집은 어머니의 자궁이다.”
이영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건축학), 지속가능과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