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NPL? 새로운 리그 이름인가요?”

글로벌이코노믹

“NPL? 새로운 리그 이름인가요?”

DLS, DLB, RCPS 등 新금융상품에 투자자 소외감

-상품만 선진화, 투자자 및 담당 전문가들도 이해 어려워


[글로벌이코노믹=이성규기자] “NPL? 새로 생긴 리그 이름인가요?” “DLS? 이거 카메라 용어 아닌가요?” 금융상품에 대한 질문에 돌아온 대답들이다. 금융업 종사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더욱 충격적이다. 아마도 NFL(National Football League), DSLR 카메라 등과 헷갈린 듯하다.

31일 증권업계 등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거래가 부진한 자본시장과 고령화 시대를 대비해 이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새 금융상품의 개발과 제도 도입을 통해 투자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관련업계 종사자들조차도 현재 거래되고 있는 구조화 상품들에 대한 이해도는 떨어지는 상황이다.

현재 시장에는 ETF, ELW, ELS, DLS, DLB, RCPS, 커버드본드, 우리다시본드 등등 생소하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구조화상품들이 존재한다. ETF는 상장지수펀드, ELW는 주식워런트증권, ELS는 주가연계증권, DLS는 파생결합증권, DLB는 파생결합사채, RCPS는 전환상장우선주, NPL은 부실채권, 커버드본드는 이중상환청구권부 채권이다. 심지어 우리다시본드는 정례화된 용어 설명이 없어 일본 개인투자자 대상 소액 외화채권 정도로 번역되기도 한다.

금융업종별(은행, 증권, 보험 등등) 취급하는 상품들이 다르기에 타 금융업에서 다루는 상품에 대한 지식이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직원들 자신이 속한 금융사에서 다루는 상품들도 제대로 모르는 직원들이 허다하다.

한 증권사 직원은 “단순히 주식, 채권 등의 전통 금융자산만으로는 살아남기 힘들다”며 “사정이 그렇다보니 새로 나온 상품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고 실토했다.

■"나도 이해 못하면서 투자자에게 팔고 있다"


실적 압박에 쫓기다보니 상품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투자자들을 상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 사실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한 증권사의 상품개발 연구원은 “구조화 상품을 일반 투자자들은 물론 판매직원을도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며 “상품을 설계하는 사람만이 그 과정과 구조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고 전했다.

쉽게 생각해보면 이렇다. 우리가 어떤 수학공식을 접할 때, 그 공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는 우리는 잘 모른다. 그저 공식만 외울 뿐이다. 그 공식 안에는 수많은 검증과 일반인들이 손대기조차 어려운 수학과정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를 이용해 답을 도출할 뿐이다. 즉, 자신이 투자한 상품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 어떻게 손실이 나고 이익이 나는지에 대해 가장 중요한 ‘과정’은 전혀 모르는 상태라는 것이다.

만약 그 과정을 안다면 경제상황 등이 변할 때, 충분히 그에 대해서 대처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다. 결국 손실이 나면 상품투자권유를 한 직원들은 변명하기에 바쁘고 이익이 나면 투자자는 수익 챙기기에 바쁠 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돈’과 관련된 문제는 상당히 민감하다. 하지만 이런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 ‘금융상품선진화’만 추구할 뿐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금융교육선진화’ 등의 문제는 과거에도 있었으며 현재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아있다.

■ 구조화 상품이 위기의 주범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를 유발시킨 주범은 CDO(부채담보부증권, 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이다. 진짜 이유를 약간 추상적으로 표현하자면 ‘균형이 무너진 것’이라 하겠다.

시소를 탈 때 한쪽에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이 앉거나 많은 사람이 앉으면 균형은 한쪽으로 기운다. 하지만 이들이 동시에 시소에서 내리면 반대편으로 기울고 그곳에 앉은 사람은 엉덩방아를 찧는다.

CDO는 우리에게 친숙한 서브프라임등급(신용등급 중 하나)은 물론 이보다 신용등급이 높은 담보부채권을 하나의 상품으로 묶어 판매했고 이는 안정적 상품으로 둔갑되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이 상품이 인기가 있었던 데는 당시 미국 부동산 시장이 엄청난 활황을 보였던 것과도 관련이 있다.

금융시장에는 ‘돈에 장사 없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어떤 나라 혹은 기업이 아무 문제가 없더라도 막강한 자금력으로 매도하면 그 가치는 내려갈 수밖에 없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결국 금융시장은 돈이 지배한다.

구조화 상품의 가장 큰 문제점은 늘 ‘조건’이 따른다는 것이다. 물론 이 조건은 금융상품의 수익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만 반대로 취약점이 되기도 한다. CDO상품은 물론 이미 이전부터 미국 부동산 시장에 자금이 몰렸다. CDO의 조건 중 하나인 부동산 가격을 무너뜨리면 CDO는 자연스럽게 무너지고 매도 포지션을 취한 주체가 이익을 전부 가져가는 것이다. 결국 세계 경제는 ‘엉덩방아’를 찧었다.

올초 국내 화학주들을 기초자산으로 발행된 ELS가 중국의 성장 둔화 우려 때문에 관련주들의 가격이 하락해 결국 조건을 이탈했고 투자한 사람들은 손실을 봤다. 당시 화학주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 주체는 외국인 투자자들이었으며 이들은 화학주들에 대한 공매도 포지션으로 큰 이익을 거뒀다. 이 모두가 조건을 무너뜨리고 균형을 깨뜨린 결과다.

구조화 상품자체를 개발하고 이를 판매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한쪽으로 자금이 쏠릴 경우,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 없다. 인기 상품이라면 상품 판매자든 투자자든 이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자금은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쏠리게 되고 이들은 막강한 자금력을 보유한 주체들에게 먹잇감이 되기 쉽다.

■ 결국 돈이 지배하는 시장


하지만 이러한 조건을 무너뜨린 주체가 막대한 이익을 가져간다 해도 이에 대해 하소연할 수도 없다. 조지 소로스는 과거 영국은행의 외환보유고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투기적 공격을 시작했다. 결국 그는 영국은행을 굴복시켰고 이로 인해 막대한 차익을 거뒀다. 그는 훗날 이 사건으로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그는 법정에서 “내 판단으로 투자든 투기든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판단에서 영국경제는 좋지 못했고 외환이 유출될 경우를 대비한 외환보유고도 부족한 실정이었다. 이는 분명 그에게 약점으로 보였고 최고의 이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였다. 파운드화를 매도할 ‘명분’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명분과 함께 그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자금력’이다. 결국 ‘돈이 시장을 지배한다’라는 말이 틀린 것이 아니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 가랑이가 찢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자본시장 거래활성화를 위한 대책 혹은 대안투자활성화 등 ‘활성화’에 대한 금융당국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또 닥쳐올지 모르는 금융위기에 대비해 ‘금융상품의 선진화’보다는 ‘금융지식의 선진화’를 위한 방안과 이를 뒷받침할 경제교육환경의 뒷받침이 더 중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