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악용시 지금의 금융감독 실력으로는 감당 못한다
[글로벌이코노믹=이성규기자]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던 최근 KT ENS 직원의 3000억원대 사기대출 사건은 SPC(특수목적법인)를 통해 가능했다. SPC의 기능을 악용한 많은 사기 범죄들이 있어 왔고 계속될 경우 산업계 전반에 큰 피해가 우려되지만 금융감독기관의 손길은 미치지 않고 있다.10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금융업 관계자들은 이번 KT ENS 사기 대출사건을 두고 SPC제도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더구나 ‘대기업은 안전하다’라는 맹신을 이용했기에 훨씬 수월하고 천문학적인 액수의 사기대출이 가능했다.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납품업체에 제품을 납품하고 그 대가로 현금 대신 매출채권을 받는다. 매출채권은 제품을 납품했다는 일종의 확인증서로 일반적으로 3개월 후 대금을 받게 된다. 중소기업 자금난의 원인이기도 하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소위 ‘깡’ 거래가 이뤄진다. 대금은 3개월 후에나 지급되니 매출채권을 고금리 사채업자에게 가져가 매출채권을 담보로 이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일부 대금을 지급받는다. 사채업자들이 고율의 이자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이를 오히려 악용한 경우다. KT ENS가 보증한다는 점을 담보로 직원은 여러 개의 SPC를 통해 반복적으로 대출을 일으킬 수 있었다. 해당 직원은 9개 SPC를 설립했으며 이렇게 설립된 SPC를 통해 대출 만기가 돌아오면 다른 SPC를 통해 대출을 받는 반복적인 행위를 지속했다. 만약 이번 사건에서 SPC의 수가 더 많았다면 그 피해 금액은 더 늘어났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 금융업 관계자는 “SPC는 그 기능상 관리감독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며 “금융당국의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특히 SPC를 악용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은 제도상 허점이 많이 노출돼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양, CJ, 효성 등 대기업 총수들의 비리가 대부분 SPC 제도에 연루돼 있으며 이전부터 업계는 SPC 제도의 관리상 허술함을 지적해왔다. 2012년에는 인천도시공사가 지분 참여한 SPC 대부분이 별도 채용절차 없이 대표이사를 채용했다. 수조원에 달하는 규모의 사업을 책임지는 곳에 채용계약 조차 맺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 6일 KT ENS 직원의 대출사기 사건과 관련, 금융감독원의 긴급 브리핑이 있었다. 당시 'SPC에 관련된 비리가 많은데 대책은 없나'라는 기자의 지적에 박세춘 금감원 부원장 보는 “검토 후 문제가 있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도 대책을 마련할 것이다”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SPC에 큰 문제점이 있음에도 이에 대한 구체적 제재나 관리방안은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금융당국이 사고를 선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보다는 사고 발생 후 수습에 바쁘다는 지적이다. 유진혁 금감원 구조화 상품팀장은 “제도를 이용하는 방식의 문제인 것 같다”며 “제도의 근본적 문제보다는 이를 악용하려는 행위가 이런 사태가 발생시킨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