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이스라엘의 연쇄 공습으로 인한 암살 가능성에 대비해 군 지휘 체계와 최고지도자직의 후계자까지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NYT)는 복수의 이란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하메네이가 이미 벙커에 은신하며 사실상 통신을 차단한 상태라고 22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하메네이는 현재 지하 벙커에 머물며 군 수뇌부와의 직접 접촉 대신 신뢰하는 측근을 통해 간접 지시를 내리고 있다. 이란 고위 관계자들은 “하메네이가 공습으로 사망할 경우를 대비해 최고지도자직의 잠재적 후임자 3명을 이미 지정해 이슬람권 최고종교지도자 선출 기구인 전문가회의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전문가회의는 평시에는 수개월에 걸쳐 최고지도자를 선출하지만 현재 이란이 전시 상황에 가까운 만큼 하메네이는 “신속하고 질서 있는 승계”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밸리 나스르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문제 교수는 “국가 체제 유지가 최우선 과제라는 점에서 하메네이의 판단은 계산된 현실주의”라고 평가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거론되던 하메네이의 아들 모즈타바는 후계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유력 후보였던 이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은 지난해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바 있다.
NYT는 하메네이가 지목한 후계 후보 3인의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혁명수비대와 거리를 둔 성직자 중심의 인사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이같은 움직임은 후계 체제가 보다 중도적이거나 정치적으로 유연해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란 의회 의장 자문역인 마흐디 모하마디는 “이스라엘이 드론과 미사일을 국내에 반입해 대규모 타격을 가했지만 우리 정보 당국은 이를 사전에 탐지하지 못했다”며 “정보·보안 체계에 심각한 구멍이 생겼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혁명수비대 고위 장성들이 단 한 시간 안에 제거된 점, 드론 공격이 군사기지와 에너지 기반시설을 정밀 타격했다는 점 등은 내부 공작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이에 따라 이란 정보부는 모든 정부 고위 인사와 군 간부에게 전자기기 사용 중단과 지하 대피 명령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NYT는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수도 테헤란이 거의 비워졌으며 고속도로와 주요 도로 곳곳에 검문소가 설치됐다고 전했다. 시민들은 “공포 속에서도 서로 연대하며 버티고 있다”고 증언했다. 각지에서는 결혼식장, 호텔 등이 피란민들에게 숙소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며, 심리상담사들도 온라인 무료 진료를 자청하고 있다.
개혁파 정치인인 모하마드 알리 압타히 전 부통령은 “이란인들은 체제 내부 갈등보다 외부 위협에 맞서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정부 비판세력마저도 이란의 영토를 지키는 데 있어서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란 통신부는 “인터넷이 적의 공격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며 국제 통신을 차단했고 국가안보최고회의는 23일까지 적군 협력자가 자진 신고하지 않을 경우 ‘사형’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