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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금융손실 우려] 홍콩 H지수 안 오르면 '제2 DLF 사태'… 역대 금융사고 판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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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금융손실 우려] 홍콩 H지수 안 오르면 '제2 DLF 사태'… 역대 금융사고 판박이

홍콩 주식시장을 대표하는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가 급격히 빠지면서 이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의 원금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27일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 영업점을 찾은 고령 고객이 상담을 받기 위해 이동하는 모습.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홍콩 주식시장을 대표하는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가 급격히 빠지면서 이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의 원금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27일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 영업점을 찾은 고령 고객이 상담을 받기 위해 이동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금융시장에 또다시 홍콩발 시한폭탄이 엄습하고 있다.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가 고점 대비 반토막 나면서 이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의 원금 손실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당장 H지수가 오르지 않는다면 우려되는 손실 규모가 최대 3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는 지난 2015년 홍콩 H지수 ELS 원금 손실 사태와 2019년 독일 등 해외금리와 연계된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판박이다.
ELS, DLF 등 파생결합상품은 '중위험·중수익' 성격으로 분류되지만 만기 때 기초자산 가격 변동이 클 경우 대규모 금융사고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향후 대규모 손실이 확정될 경우 은행, 증권 등 판매사와 투자자들 사이에 피해액을 놓고 불완전판매 등 분쟁이 이어질 전망이다.
27일 금융권과 홍콩증권거래소에 따르면 홍콩 H지수 급락 등 해외 기초자산의 불안한 흐름으로 ELS와 DLF 등 투자자들의 대규모 손실 우려가 반복되고 있다.

2015년에도 홍콩 H지수가 기초자산인 ELS에서 대규모 손실 우려가 커지면서 투자자들이 불안에 떨었다. 당시 홍콩 H지수는 반년 새 반토막으로 급락하면서 ELS 투자자들은 장기간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지난 2019년에는 만기를 앞두고 독일·영국 등 시장금리가 급락해 대규모 원금 손실을 일으킨 DLF 사태도 있었다.

문제는 DLF 사태를 계기로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시행됐지만 비슷한 사고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DLF 사태 당시에는 만기를 앞두고 영국·독일 국채 금리가 반등하면서 손실률이 축소됐지만 이번에는 중국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탓에 H지수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운이 좋아 H지수가 반등할 수도 있지만 홍콩발 ELS 쇼크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감안하면 보다 본질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 주식 중 50개의 기업을 추려서 산출한 H지수는 이날 장중 한때 6000포인트 선이 붕괴됐다. H지수는 2021년 초만 해도 1만~1만2000포인트에 이르렀지만 현재 40~50%에 불과한 6000포인트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ELS란 특정 주식의 가격이나 주가지수에 연동된 증권을 의미한다. 사전에 일정 조건을 정해두고, 만기까지 충족하면 정해진 수익률을 받을 수 있지만 반대로 미리 정한 수준 이하로 가격이 떨어지면 원금을 잃는 구조다. 그래서 주가지수가 변동 폭이 작고 횡보하면 은행 예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지만, 주가가 정해진 범위를 벗어나면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

지난 2021년 H지수가 1만포인트 위에서 움직일 때 국내 은행들이 판매한 8조4000억원 규모의 ELS가 곧 만기를 맞게 돼 문제가 커질 수 있다.

ELS 상품은 크게 녹인(Knock-in)형과 노녹인(No Knock-in)형으로 나뉘는데, 녹인형의 경우 한 번이라도 기초자산 지수가 가입 당시 대비 50% 아래로 떨어지면 수익률이 제로(0)가 되고 만기가 됐을 때 주가가 가입 당시의 70% 선까지 회복되지 않는다면 주가 하락 폭만큼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노녹인형은 기간 내 얼마나 떨어지든지 상관없지만, 만기 때는 65% 이상 수준이 돼야 원금 손실을 피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H지수가 반토막 나면서 녹인 대부분 상품이 녹인 조건을 터치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내년 상반기까지 H지수가 8000포인트까지는 올라줘야 대규모 원금 손실 사태를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에서 내년 상반기에 만기가 도래하는 H지수 ELF(펀드)·ELT(신탁) 상품 규모는 8조41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4조7000억원가량은 이미 손실 구간에 접어들었다.

한 전직 시중은행 PB는 "ELS는 수익에 비해 곳곳에 숨어있는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에 고객들에게 추천하기에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주가 변동성이 크지 않으면 대부분 은행 이자보다 조금 높은 수익률을 내지만 주가가 일정 폭 이상으로 움직이면 대규모 원금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금융 소비자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인 상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ELS가 대거 손실 우려에 빠진 상황은 과거에도 있었다. 지난 2015년 변동성이 높은 H지수를 기초로 한 ELS가 대거 발행됐다가 이듬해 반토막 나면서 금융권은 큰 충격에 빠졌다. 다행히 만기를 앞두고 지수가 반등하면서 대규모 손실 사태는 면할 수 있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사모펀드 사태를 계기로 초고위험 상품은 은행에서 판매를 못 하게 됐지만 고위험 상품인 ELS는 은행에서 판매하도록 허용한 금융당국의 책임도 있다고 보인다"면서 "대부분 이런 금융사고는 은행이 안전하다고 믿고 찾은 고령자들이 은퇴·노후 자금을 이런 고위험 상품에 가입해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파생결합상품 판매채널에서 은행을 배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성화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h122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