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도 경제연구실장, 저출산 극복 위한 ‘지원’과 ‘구조정책’ 강조

정부는 지난 16년 동안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80조원의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지만 출산율은 여전히 저조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은은 청년들의 결혼·출산 등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취업 경쟁, 일자리 부족, 저임금, 높은 주거비용, 실질적으로 사용이 어려운 육아휴직 제도 등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은 경제연구원은 3일 '경제전망보고서' 심층분석에 실린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 극단적 인구구조의 원인, 영향, 대책'에서 저출산 극복을 위해서는 고용·주거·양육 측면의 불안 및 경쟁압력을 낮추기 위한 ‘지원’과 구조적 문제점을 개선하는 ‘구조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올해 3분기 역대 최저 수준인 0.7명, 4분기에는 0.6명대로 떨어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보고서는 근본적으로는 높은 경쟁압력과 고용·주거 불안의 근저에 있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완화하고 수도권 집중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 경제는 양질의 일자리 부족과 높은 경쟁 압력에 직면해 있다. 황인도 한은 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비정규직이 늘면서 고용의 불안이 과거보다 심화됐다"며 "대기업의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비정규직이 늘고 있기 때문에 양질의 일자리를 향한 경쟁이 과거보다 오히려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기업, 정규직 등 1차 노동시장과 중소기업, 비정규직 등 2차 노동시장간의 격차가 심화되면서 경쟁 압력이 심화되고 있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근본적으로 완화해야 경쟁 압력을 낮출 수 있다"고 했다.
연구진들은 우리나라 사회가 '단일 기회구조 모델'에 갇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청년기의 첫 노동시장 진입이 생애 소득과 고용 지위를 결정하기 때문에 경쟁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에 연구진들은 수도권 집중 현상을 완화하고 기회 다원주의 모델을 통해 경쟁 압력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기회 다원주의 모델은 다양한 삶의 경로를 추구할 수 있는 기회 구조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택 가격 상승도 결혼 의향과 출산율을 떨어트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들은 주택 가격과 가계부채 안정화를 위해 일관된 주택 정책과 함께 금융 안정성을 고려한 통화정책, 거시건전성정책을 통해 주택시장을 안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청년층과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주택 마련 기회를 확대하는 정책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대규모의 전세자금 및 대출 지원 방식은 주택 가격을 높이는 역효과가 있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또한 실질적인 일-가정 양립이 될 수 있도록 육아휴직 이용률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2020년 기준 출생아 100명당 여성 48.0명, 남성 14.1명으로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해당한다. 특히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여성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들은 육아휴직 사용률을 높여야 하며 특히 남성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사용률을 제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황 실장은 "킨더만 교수의 논문을 보면 남성이 가사하고 육아를 분담하지 않으면 그 나라에서 출산율도 낮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바게닝 이론에 따르면 출산을 하는 것도 결국 남녀 간의 협상이다. 여성이 보기에 아이를 낳는 것이 불공평하면 협상이 결렬되고 결국엔 아이를 낳지 않게 된다"며 "남성의 육아 분담이 더 높아져야 우리나라 출산율도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소기업일수록 육아휴직 사용률이 낮기 때문에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2021년 기준 출생연도 육아휴직 사용 비율은 300인 이상 대기업의 경우 여성 76.6%, 남성 6.0%로 나타났지만 5-49인 기업에서는 여성 54.1%, 남성은 2.3%에 그쳤다.
황 실장은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육아휴직 제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용률이 저조한 이유는 육아휴직 제도를 사용할 수 없는 직장 분위기나 문화 때문"이라며 "제도적 지원 뿐만 아니라 직장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구진들은 우리나라의 출산 여건이 OECD 34개국 평균 수준으로 개선될 경우 출산율은 지난해 말 0.78명에서 0.85명만큼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변화하는 가치관에 맞추어 현재 부모 및 법률혼 중심의 정상가정을 전제로 하는 지원체계에서 비혼출산 등 가정의 형태에 관계없이 차별없이 제도적 지원을 할 수 있는 ‘아이 중심의 지원체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진들은 유럽을 비롯한 다른 국가에서 혼인 외 출산 비중이 상승하면서 출산율도 함께 오른 것에 주목했다. 이에 따라 혼인 여부와 관계없이 신생아가 있는 경우 청약자격을 부여하는 신생아 특공 등 아이 중심 지원 체계로 전환하는 한편 다양한 가정 형태에 대한 제도적 수요성을 높여갈 필요성을 제기했다.
황 실장은 "사회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서 출산율을 0.2명 더 끌어올린다면 잠재 성장률도 2040년대에 0.1%포인트 높아질 수 있다"며 "청년의 경제적·사회적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과 노동시장 등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구조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성장잠재력 약화 문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훈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unjuroh@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