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환 능력 없다고 판단되면 아예 소각
탕감 대상자 신용이 더 깨끗해질 수도
업권 사정 고려 없이 출연 요구 역시 부담
탕감 대상자 신용이 더 깨끗해질 수도
업권 사정 고려 없이 출연 요구 역시 부담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출범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 시행 이후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잇따른다. 곧 출범하는 ‘한국형 배드뱅크’는 이름은 같지만 해외의 기존 사례와 성격이 다르다. 전통적인 배드뱅크는 은행이 떠안은 대규모 부실자산을 분리해 금융시스템 붕괴를 막고 대출 기능을 살리는 것이 목적이었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때 TARP를 통해 은행 부실을 떠안았고, 아일랜드와 스웨덴도 금융기관 건전성 확보 차원에서 배드뱅크를 운영했다. 한국 역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캠코가 은행·비은행 부실채권 100조 원 이상을 매입해 정리한 바 있다.
이번 한국형 배드뱅크는 은행 구제가 아니라 개인 장기연체자 구제가 목표다. 대상은 7년 이상 연체, 5000만 원 이하의 소액 채무자로, 상환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빚을 아예 소각한다. 재원은 세금과 금융권 출연금이 절반씩 부담한다.
형평성과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크다. 성실하게 빚을 갚은 사람은 채무조정·회생 이력이 일정 기간 신용기록에 남는 반면, 배드뱅크 소각 대상자는 연체·채무 이력이 삭제되거나 공유 기간이 더 짧게 적용될 수 있다. 정부가 동시에 ‘성실 상환자 신용사면’과 회생정보 공유 기간 단축을 추진하면서도 프로그램별 조건과 범위가 제각각이다 보니 결과적으로 ‘갚은 사람’과 ‘탕감받은 사람’의 기록 처리 기준이 엇갈리는 경우가 생긴다.
매입 가격을 정하는 방식도 전통형과는 다르다. 해외에서는 담보·현금흐름·비용 등을 세밀하게 반영해 공정가치를 평가하지만, 한국형은 채무자의 나이·잔액·연체기간으로만 등급을 나눠 매입가율을 정한다. 여기에 기준일을 2018년 6월 이전 연체로 못 박으면서 하루 차이로 대상 여부가 갈리고, 배드뱅크와 새출발기금(2020년 4월 이후 연체) 사이의 공백으로 제도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로 2018년 6월 19일에 연체가 시작된 채무자는 배드뱅크 지원 대상이 되지만, 바로 다음 날인 6월 20일부터 연체가 발생한 채무자는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2019년에 연체가 시작된 채무자는 배드뱅크(2018년 6월 이전)와 새출발기금(2020년 4월 이후)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아 어떤 제도에서도 지원을 받지 못한다.
일반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반응은 엇갈린다. 최근 생계형 대출을 상환한 한 30대 직장인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만기를 연장해가며 꾸역꾸역 갚았는데, 다 갚고 나니 나라에서 빚을 탕감해 준다고 하니 허탈하다”고 토로했다.
금융권에서는 분담금 부담에 대한 불만도 커지고 있다. 경기침체로 수익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업권별 사정 고려 없이 출연을 요구하는 것은 과도한 부담이라는 지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연체율이 치솟고 수익성도 악화돼 출연 여력이 크지 않은데, 모두 같은 기준으로 분담을 요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면서 “정부가 업권별 상황을 반영한 합리적인 분담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석경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ong@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