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한국 금융개혁 기획 5편] 금융지주 CEO에 부여된 시대적 소명

글로벌이코노믹

[한국 금융개혁 기획 5편] 금융지주 CEO에 부여된 시대적 소명

2036년 세계 5위권 선진강국 도약
첨단 산업국가 만들 선진금융 역할
더 이상 미루거나 회피하면 안돼
하나금융그룹은 지난 12월22일 명동사옥에서 2025년 연말을 맞아 취약계층 아동을 위한 '크리스마스 행복상자 만들기' 봉사활동을 실시했다.이날 봉사활동에 참여한 하나금융그룹 임직원들이 아이들에게 전달할 '크리스마스 행복상자'를 정성껏 만들고 있다. 사진=하나금융그룹이미지 확대보기
하나금융그룹은 지난 12월22일 명동사옥에서 2025년 연말을 맞아 취약계층 아동을 위한 '크리스마스 행복상자 만들기' 봉사활동을 실시했다.이날 봉사활동에 참여한 하나금융그룹 임직원들이 아이들에게 전달할 '크리스마스 행복상자'를 정성껏 만들고 있다. 사진=하나금융그룹
한국 금융의 저평가는 더 이상 주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이 금융이 다음 단계의 국가 역할을 수행할 준비가 돼 있는가에 대한 시장의 집단 판단이다. 이 판단의 대상은 제도도, 구조도, 규제도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네 명의 최고경영자(CEO)다. 그들이 어떤 결정을 미뤄왔고, 무엇을 회피해 왔으며, 어떤 역할을 아직 떠안지 않았는지가 이 평가의 전부다.

저평가, 주가 문제 아니라 역할 부재 결과


한국 금융지주의 저평가는 배당 성향이나 자사주 소각, 주주 환원 정책의 부족으로 설명돼 왔다. 그러나 이 설명은 이미 설득력을 잃었다. 4대 금융지주는 충분한 이익을 내고 있고, 자본 적정성에서도 글로벌 기준을 충족한다. 그럼에도 할인 상태가 장기화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시장은 더 이상 '안정적으로 관리되는 금융'에 프리미엄을 주지 않는다. 지금의 저평가는 '이 금융이 다음 단계의 국가 과제를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부정의 답변이다. 이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역할의 문제다.

선진금융, 관리의 완성 아닌 위험 감수


한국에서 선진금융은 오랫동안 위기를 피하는 금융, 사고를 줄이는 금융, 규제를 충실히 따르는 금융으로 '오해' 돼 왔다. 그러나 그런 금융은 선진금융이 아니라 관리 금융일 뿐이다. 지금 한국이 필요로 하는 선진금융은 성격이 다르다. 실패 가능성이 큰 첨단 산업에 자본을 투입하고, 반도체·AI·바이오·우주·에너지 전환 같은 장기 프로젝트의 시간을 감당하며, 개별 기업을 넘어 국가 산업 구조의 진화를 뒷받침하는 금융이 필요하다. 이 금융은 안전하지 않다. 대신 책임을 진다. 이 지점에서 CEO의 역할은 관리자에서 국가 전략 수행자로 바뀐다.

2036년 시간표와 금융의 위치


2036년 세계 5위권 선진강국 도약이라는 대전략에 따른 목표는 수사가 아니다. 인구 구조, 기술 경쟁, 안보 환경을 고려하면 한국에 주어진 전환의 시간은 제한돼 있다. 이 시간표에서 금융은 선택지가 아니라 조건이다. 첨단 산업은 실패를 감당하는 자본 없이는 성장하지 못하고, 기술 패권 경쟁은 단기 수익 중심의 금융으로는 대응할 수 없다. 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주체는 사실상 4대 금융지주뿐이다. 그래서 네 CEO에게 시대의 책임이 귀속된다.

KB금융, 안정 이후 무엇을 걸 것인가


KB금융은 가장 높은 자본 여력을 갖고 있다. 양종희 CEO는 관리자의 임무를 거의 완벽에 가깝게 수행했다. 그러나 시장은 더 이상 관리의 완성을 평가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 다음 단계다. 이 자본을 어디에 걸 것인가, 어떤 영역에 실패 가능성을 허용할 것 인가에 대한 답이 없다고 본다. 은행 중심 구조를 유지하는 선택은 명백한 의도였고, 비은행은 끝내 성장 엔진이 아닌 완충 장치로 남았다. 시장은 이를 안정성의 미덕이 아니라 선택 회피의 결과로 읽는다.

지금 KB에 대한 평가는 명확하다. 더 나빠질 이유는 없지만, 더 좋아질 이유도 보이지 않는 금융. 이는 구조가 아니라 양종희의 선택에 대한 평가다.

신한금융, 가능성 늘린 대신 결단 유예


신한금융은 선택지가 가장 많은 금융지주다. 디지털, 글로벌, 비은행, 플랫폼 어느 하나 뒤처졌다고 보기 어렵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추진되면서도, 어느 하나도 최종 선택으로 격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본 배분의 우선순위는 끝내 고정되지 않았고, 무엇을 포기할 것 인지에 대한 메시지는 반복해서 유예됐다. 시장은 이 상태를 전략적 유연성으로 보지 않고 진옥동 CEO의 책임을 유예하는 결정 방식으로 평가한다. '전략을 설명했지만, 자신의 임기를 걸 정도로 전략을 좁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신한의 저평가는 역량 부족이 아니라 집중 부재에 대한 가격이다.

하나금융, 방향 설정했으나 운명으로 만들지 못해


하나금융은 4대 지주 가운데 가장 분명한 방향을 제시했다. 해외 사업이라는 축은 실제 성과로도 이어졌다. 문제는 그 방향이 그룹 전체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격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본 배분은 여전히 분산돼 있고, 해외는 핵심 엔진이 아니라 잘 작동하는 옵션으로 남아 있다. 시장은 이를 구조의 한계로 보지 않는다. 함영주 CEO가 끝까지 리스크를 끌어안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방향은 맞았지만, 결단은 절반이었다는 시장의 평가가 반복되는 것이다.

우리금융, 방어 이후 장면 제시 못해


우리금융은 자본을 지켜냈다. 위기 관리 능력은 인정받는다. 그러나 그 이후의 장면은 비어 있다. 자본을 어디에 걸었는지, 무엇을 포기했는 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 공격적 확장도, 전략적 포기도, 임기를 건 단일 방향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는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선택하지 않은 기록의 누적이다. 시장은 이를 냉정하게 평가한다. 관리에는 합격했지만 성장 리더십은 미검증 상태라는 판단이다. 임종룡 CEO에 대한 평가는 구조가 아니라 선택의 공백에 대한 평가다. 시장에서 임종룡이 아직도 증명 단계에 머물러 있는 CEO라는 표현이 반복되는 이유다.

저평가 넘어 어떤 역할 감당할 건가


구조는 제약이다. 그러나 구조는 결정을 대신하지 않는다. 같은 구조에서도 더 과감한 선택을 한 사례는 존재한다. 시장은 더 이상 구조를 핑계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본을 쌓아두는 것은 의무였지만, 자본을 걸지 않은 것은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책임은 결국 CEO에게 귀속된다.

한국 금융 개혁의 목표는 4대 금융지주의 저평가를 해소하는 데 있지 않다. 목표는 한국이 첨단 산업 국가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금융이 감당해야 할 역할을 실제로 수행하는 데 있다. 이 역할은 선언으로 대신할 수 없고, 구조 개편으로 자동 이행되지도 않는다. 실패 가능성을 포함한 자본 배분, 장기 전략에 대한 책임 있는 고정, 그리고 그 선택에 자신의 임기를 묶는 결단만이 이 역할을 실체로 만든다.

시장은 이미 판단을 내렸다. 자본 적정성과 안정성은 더 이상 평가의 근거가 아니다. 그것은 자격 요건에 불과하다. 지금의 저평가는 이익이 부족하다는 신호가 아니라, 이 금융이 다음 단계의 국가 역할을 맡기에는 아직 결단이 부족하다는 경고다. 이 경고를 오해하는 순간, 저평가는 주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비용으로 전환된다.

이제 질문은 완전히 분명해졌다. 4대 금융지주의 CEO들은 관리자로서 충분히 유능했는가가 아니라, 한국이 2036년 세계 5위권 선진강국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금융이 맡아야 할 역할을 스스로 떠안겠는 가를 묻고 있다. 이 질문은 주가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시대적 소명에 대한 질문이다.

이번 연재는 개혁을 촉구하기 위해 쓰이지 않았다. 이미 개혁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문제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CEO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시대가 요구한 역할을 맡지 않겠다고 결정한 사람으로 기록될 뿐이다. 시장은 그런 선택을 존중하지도, 기다려주지도 않는다. 그리고 역사는 그 침묵을 판단으로 간주한다. 지금 4대 금융지주의 CEO에게 남아 있는 자유는 하나뿐이다. 이 질문에 응답할 것인가, 아니면 그 응답을 거부한 인물로 남을 것인가다.<끝>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