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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행부, 제주 4.3사건 역사성 부정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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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행부, 제주 4.3사건 역사성 부정 논란

"사건이 아니다, 기념일도 아니다?"
[글로벌이코노믹=곽호성기자] 안전행정부가 제주 4.3사건 추념일 지정과 관련해 작성한 내부 문건에 '기념일 명칭은 제주 4.3사건의 역사성을 기념하지 않는 명칭으로 제정'이라는 판단이 포함돼 있어 향후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23일 청와대와 안행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8일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제주4.3희생자추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내용의 대통령령(각종 기념일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의결했다. 대통령의 재가(裁可)와 관보 게재 절차만 남은 상황이다. 따라서 올해 제주4.3사건희생자 위령제는 처음으로 국가 주관 행사로 치러지게 됐다.

그런데 지난 19일 한 네티즌이 반공 성향 웹사이트 '지만원 박사의 시스템클럽'에 ‘안전행정부 4.3 추념일 보도 자료가 이상하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비바람'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이 네티즌은 지난 18일 배포된 안행부 보도 자료를 소재로 “안전행정부가 같은 사안의 보도 자료를 배포하면서 팩스와 인터넷(안행부 홈페이지)에 각기 다른 내용의 보도 자료를 냈다”고 지적했다.

▲안행부가배포한보도자료내용이다.이미지 확대보기
▲안행부가배포한보도자료내용이다.

인터넷에는 이 건으로 2장짜리 보도 자료가 게시돼 있는데 팩스로 배포된 보도 자료는 1장이 더 추가된 총 3장짜리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지 취재 결과 보도 자료는 안행부 홈페이지의 2장 그대로였고 정치 편향 소지가 있는 문제의 추가 문건 1장은 안행부가 별도 제작한 문건이었다.

이 네티즌의 설명에 따르면 문제의 문건은 18일 오전 모 보수단체 팩스를 통해 전송된 문건이다. 문건에는 제출의견에 보수 성향 의견이 게재돼 있다. 문건에는 "기념일 명칭은 제주 4.3사건의 역사성을 기념하지 않는 명칭으로 제정, 제주 4.3평화공원에 남로당 수괴급 등의 위패 철거,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좌편향성 수정, 제주 4.3평화 기념관 전시물 좌편향 수정” 등의 내용이 '제출 의견'으로 돼 있다.

▲'비바람'이란네티즌이인터넷에공개한안행부내부검토자료.이미지 확대보기
▲'비바람'이란네티즌이인터넷에공개한안행부내부검토자료.

또한 추진 상황으로 “진보 측에서 요구하는 '사건'과 '기념일' 용어를 삭제해 제주 4.3사건의 역사성이 부각되지 않도록 하였음, 위패 철거, 진상조사보고서 수정은 제주 4.3위원회 소관이므로 이를 4.3위원회(위원장 : 국무총리)에 통보, 재조사하도록 조치, 4.3평화 기념관 전시물 좌편향성 내용 수정은 제주 4.3실무위원회(위원장 : 제주자치도지사) 소관이므로 실무위원회에 통보”라고 적혀 있었다.

이 네티즌은 정치 편향 소지가 있는 추가 문건 1장 역시 보도 자료라고 생각하고 “(추가 문건 1장에 기재된) 이런 내용들은 언론에서 다뤄지지 않았다”며 “안행부가 보도 자료를 배포하면서 중요 내용을 국민들에게 전달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본지 취재 결과 문제의 문건은 안행부가 내부검토용으로 따로 만든 자료였고 이를 토대로 안행부는 4.3사건의 추념일 지정에 반대하는 보수단체들과 일종의 의견조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국가기관이 내부 검토문서를 특정 이념 성향을 가진 단체에 제공했다는 점이다.

문서 내용이 상당히 보수 편향이라는 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특히 '진보 측에서 주장하는 '사건'과 '기념일'이라는 용어를 삭제하여 제주 4.3의 역사성이 부각되지 않도록 하였음'이라는 표현은 안행부가 정치적 중립을 지킨 것인지에 대해 오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이에 대해 안행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입법 예고시 의견에 대한 조치방안'이라는 문건은 보도 자료가 아니고 안행부 내부 검토자료"라고 문서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보도자료를 팩스로 보내는 일은 없다"며 외부 유출 사실은 부인했다. 그는 이어 "해당 문건은 안행부 결재문서도 아니고 공식적 정책 방향도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취재진은 문건 생산자로 지목된 안행부 C서기관의 해명을 듣기 위해 계속 통화를 시도했지만 그는 아예 전화를 받지 않았다. C서기관 근무부서의 과장, 국장, 대변인실 관계자, 안행부 1차관실 관계자, 안행부 2차관실 관계자 등은 자기 소관사항이 아니라거나 “전화를 주겠다”며 기자의 연락처를 받았지만 어느 누구도 답변을 주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날 오후 3시경 문제의 문건을 생산한 부서의 K과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문제의 문건은 보도 자료가 아니고 보수단체에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 드린 자료인데 아마 보수단체들끼리 팩스를 주고받으며 오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K과장은 이어 “진보 측에서 요구하는 ‘사건’과 ‘기념일’ 용어를 삭제했다는 표현은 보수 편을 들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보수진영이 남로당 핵심 간부 위패 등의 문제로 반대가 심해 더 이상의 갈등과 분열을 막고 상생하려는 정부 측 입장을 고려해 만든 문구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기념식이란 표현을 쓸 경우 자칫 무장폭동을 왜 기념하느냐는 항의를 들을 수 있어 추념식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이라며 “지금은 명쾌하게 가해자와 피해자가 구분이 안 되는 경우도, 명백한 증거가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특정 이념에 편향된 자세를 보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시민 정용택씨(화성ㆍ53세)는 이에 대해 "국가추념일로 지정됐다는 사실 자체가 제주 4.3사건의 역사적 가치에 대한 방증"이라며 "보수냐 진보냐로 이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몰역사적이고 편향된 자세 아니냐"고 반문했다.

*제주 4.3사건이란.


1948년4월3일부터 1954년9월21일까지 미군정에 의한 친일세력의 재등장과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남조선노동당 중심 세력들이 봉기하고 이를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가 진압하는 과정에서 당시 도민의 3분의 1인 7만여명(비공식 추정)이 희생된, 민족사의 비극이다. 1947년3월1일 3·1절 기념집회 중 기마경찰의 말 발굽에 한 어린이가 치이자 사람들이 돌을 던지며 항의한다. 이를 경찰서 습격으로 오인한 경찰이 시위 군중에게 발포, 주민 6명이 사망한다. 이를 계기로 남로당 제주도당은 반경(反警) 활동을 전개했고 도내 직장의 95%가 '3·10 총파업'에 동참했다. 미군정은 경찰과 우익 서북청년단을 동원한다. 당시 미군 보고서는 '제주도는 ‘붉은섬(Red lsland)’으로 인구의 70%가 좌익 동조자’라고 기술했다. 서북청년단이 많은 인사들을 구금하고 고문하자 남로당 제주도당이 1948년4월3일 새벽 도내 12개 지서와 우익단체들을 공격한다. 주한미군사령관 하지 중장과 군정장관 딘 소장은 경비대에 진압을 명령했다. 이때 '오라리 방화사건'이 벌어진다. 현장 조사 결과 우익청년들 소행이었지만 미군정은 방화 현장을 촬영해 《제주도의 메이데이 May Day on Cheju-do》라는 기록영화를 만들고, 사건을 무장대 소행으로 조작한다. 1948년 5월10일 남한 단독선거에서 제주도는 투표 수 미달로 무효처리되고 재선거마저 무산되자 미군정은 강경 진압을 계속했다. 1948년8월15일 수립된 이승만 정부는 제주를 정권의 정통성에 도전하는 섬으로 간주했고 제주도경비사령부 설치, 병력 증파, 계엄령 선포를 단행한다. 9연대장 송요찬은 중산간마을에 대한 대대적 진압작전을 벌여 중산간마을 95% 이상을 불 태우고 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삶의 터전을 잃은 중산간마을 주민 2만 명이 산으로 들어가 비자발적 무장대가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1949년3월 제주도지구전투사령부가 설치되면서 진압과 선무작전이 병행돼 귀순하면 용서한다는 사면정책에 따라 많은 주민들이 하산했다. 1949년5월10일 재선거가 치러졌고 이어 6월 총책 이덕구가 사살되면서 무장대는 궤멸됐다. 그러나 이듬해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보도연맹 가입자와 요시찰자 그리고 입산자 가족 등이 대거 검속돼 처형됐고 전국 각지 형무소에 수감됐던 4·3사건 관련자들이 즉결처분됐다. 1954년9월21일 한라산 금족(禁足) 지역이 전면 개방돼 사건은 7년7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사건 이후 희생자 가족들은 당시 군경토벌대에 처형됐다는 이유만으로 이른바 '빨갱이' 딱지가 붙어 피해를 대물림했다. 2000년1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 공포됐고 2003년10월31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유족과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2014년3월18일 박근혜 정부가 국가기념일로 제정했지만 대통령의 행사 참여 등을 두고 벌써부터 일부 보수단체들이 대통련 탄핵까지 거론하는 등 반대가 극심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