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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압전류에 두 팔 잃고도 세계 최초 '서예크로키' 창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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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압전류에 두 팔 잃고도 세계 최초 '서예크로키' 창시

[Click 도전 Record(9)] 세계 최초 의수화가 석창우 화백

그림 그려달라는 아들 부탁에 펜 잡았다가 재능 발견

국내외서 수많은 전시회…죽을 때까지 그림 그릴 것

의수화가 석창우 화백
의수화가 석창우 화백
지난 2012년 평창동계올림픽 선정을 위한 실사단 앞에서 김연아 선수의 트리플악셀을 시연하여 극찬을 받은 석창우 화백. 2014년 3월16일 소치 동계장애인올림픽 폐막식에서 4만5000여 관중 앞에서 대형 화선지(8m56㎝x2m10㎝)에 퍼포먼스를 2분40초 만에 성공적으로 완성하여 전 세계인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는 1984년 10월 전기 기사로 일하던 중 2만2000V의 고압 전류에 감전돼 두 팔을 잃었다. 29세의 나이로 10여 차례의 수술을 거친 후 무의미한 날들을 보내던 중, 그림을 그려달라는 어린 아들의 뜬금없는 말 한 마디에 처음으로 펜과 종이를 잡았다. 그게 그림을 그리게 된 시작이다. 그 때까지는 자신에게 그런 재능이 있는 줄 생각도 못했다. 붓을 잡은 이후로 나날이 실력이 늘어, 두 팔을 가지고 남들처럼 살던 옛날보다 팔은 없지만 신이 주신 재능을 찾아 마음껏 그림을 그리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는 석창우 화백이다. <편집자주>

서른 살 되던 해 새롭게 피운 꽃

의수화가 석창우 화백
의수화가 석창우 화백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중소기업의 전기관리자로 일하던 석창우 씨는 1984년 10월 2만2000V에 달하는 전압에 감전되고서 12번에 이르는 크고 작은 수술 등 힘든 나날을 견뎌냈다. 그는 어린 딸과 아들이 크면서 “너희 아빠는 양손도 없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아빠다”라는 소리를 듣게 하기 보다는 양손이 없으면서도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두 팔을 잃은 ‘그’였지만, 네 살 된 아들에게 두 팔로 그려준 ‘새’그림을 계기로 서예공부를 시작하여, 가장 한국적인 것을 추구하면서 한글의 문자추상에 주력했다. 현대 사회의 모습, 인물 등을 주제로 한국적인 것을 살려 표현하면서 그의 명성은 더욱 알려졌으며, SBS의 <놀라운 대회 스타킹>, MBC의 <성탄특집 다큐 기적을 이룬다> 외 수많은 방송에 출연하면서 그는 희망 전도사로서 감동을 전하는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석창우 화백은 전기사고라는 힘든 사건을 견뎌내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만들며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이야기로 삶에 지친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있다.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제1회 문화 예술인 대상 시상식’의 수상자이기도 한 그는 직접 자신의 삶을 통해 창의적이고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불굴의 의지를 보여 왔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불굴의 의지 한국인을 발굴해 내고자 하는 도전한국인본부의 비전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바로 석창우 화백의 전반적인 삶의 방향이다.
서예크로키라는 화법 창시한 화가

의수화가 석창우 화백
의수화가 석창우 화백
의수화가 석창우 화백
의수화가 석창우 화백
석 화백은 세계 최초로 서예크로키라는 화법을 창시한 화가이자 국내 최초의 의수화가이다. 1988년 3월부터 처제의 소개로 여태명 스승을 만나 서예공부를 시작했다. 그가 처음 찾아갔을 때에는 고개를 저으시며 “힘들 건데….” 하셨다. 그래도 “내가 포기할 때 까지만 가르쳐 달라”고 해서 허락을 받고 그에게 맞게 글씨체를 변형시켜서 가르쳐 주었고 본격적인 학습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서예의 전 분야를 섭렵하던 중에 우연히 누드 크로키를 (강의) 하시는 김영자선생을 만났는데 그 때부터 인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원래 연필로 그리는 누드크로키처럼 인체의 외곽선만을 그리는 서예를 해왔고 윤곽 전체를 일필휘지로 접목했다.

동양의 그림 재료인 먹만으로 작업을 하다가 생소한 연필이며 목탄을 가지고 본인이 원하는 선이 자유자재로 자연스럽게 나오기까지 5~6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서 완성된 것이 바로 서양의 누드크로키와 동양의 서예를 접목한 서예 크로키다. 서예크로키는 동양의 서예와 서양의 크로키를 접목한 새로운 장르이다.

SBS-TV <스타킹> 제작진이 몇 년 전부터 계속 출연을 부탁했는데 예능프로이다 보니 별로 와 닿지가 않아서 계속 거절했다. 몇 번 연락이 오다보니 도대체 어떤 프로인가 궁금해서 보게 되었는데 출연하는 사람들이 무척 다양하고 그만큼 다양한 포즈가 나오길래 ‘아, 저기 나가서 저 포즈들을 그려봐야겠다’ 생각이 들어서 내가 그리고 싶을 때 출연자들을 놓고 그릴 수 있게 해달라는 조건으로 출연을 승낙했다. 그 후로 여러 방송에 다수 출연했다.

늦깎이 의수화가로 시연만 147회

1998년 제1회 개인전부터 언론에 많이 알려졌다. 개인전은 지금까지 총 37회를 했고 (미국 3회, 독일 2회, 중국 4회, 프랑스 2회, 영국 1회 등 해외전 12회 포함), 그룹전 250여회(제8회 취리히 아트페어 등 34회의 해외 초대전 포함), 시연은 147회(독일 1회, 일본 1회, 중국 6회, 영국 28회, 러시아 1회 포함)를 했다.

개인전은 한번 할 때 약 30~40점 씩 전시를 하고 그룹전을 할 때는 한 두 점 정도를 내는데 그렇게 250여회 되니까 집에 가지고 있는 것까지 하면 작품 숫자는 다 셀 수가 없다. 붓이 사무실에 걸려있는 것 말고, 사용한 붓이 라면박스로 한 박스 따로 보관되어 있다.

양손이 없이 서예를 하니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관심을 보여 연습할 때면 많은 시선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이 계기가 되어 석 화백은 시연할 때 아무리 많은 관중들이 있어도 그들을 의식하지 않고 시연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2011년 2월16일에 2018년 평창올림픽 실사단이 평창에 왔을 때는 알펜시아리조트에서 김연아의 트리플악셀을 모델로 시연을 해 실사단을 감동시켰다.

2012년 5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후원으로 미국 워싱턴DC 한국대사관 문화원에 초대됐다. 한국문화원에서의 개인전과 시연, 스미소니언박물관 한국관 앞에서의 시연, 그리고 코리아벨 가든에서의 시연 등 미국 관객들에게 5번의 시연을 했다. 이런 시연과 개인전을 통해 신체가 멀쩡한 이들에게, 그리고 장애인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희망 전도사역을 했다고 현지 언론들은 보도했다.

2012년 7월 27일부터는 런던올림픽의 코리아 하우스에 초대돼 하루에 두 번 28회의 시연을 하여 코리아 하우스를 방문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양팔이 없이 작업을 하다 보니 SBS의 <놀라운 대회 스타킹>과 KBS의 <아침마당>, 강연 100℃, MBC의 <성탄특집 다큐 기적을 이룬다> 등 수많은 방송에 출연했다.

석창우 화백은 "다른 사람처럼 인생에 좌절한 시간이 길거나 슬럼프가 있다거나 그런 것들이 나에겐 특별히 없었다. 팔을 잃고 나서 병원에 일년 반 정도 치료를 받으며 있었지만 그 다음에 바로 나에게 맞는 일을 찾게 되어서 지금까지 즐거운 삶을 살았다. 특히 힘들지 않은 것은 항상 내 손발이 되어준 아내가 옆에 있어 불편함이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석 화백은 이어 "그림을 그리면서 외적으로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팔이 있을 때(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그냥 직장생활을 했는데 내 스스로 만족적인 삶을 살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고 나서부터는 이 일이 나에게 잘 맞으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팔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더 즐거운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고 덧붙였다. 손이 있었던 30년보다 손이 없는 30년이 더 좋았던 건 손이 사라진 후 도전할 것이 있어서이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는 석창우 화백. 대형 작업을 할 수 있는 넓은 작업실 하나와 각 나라를 순회하면서 개인전을 여는 게 소원이다.
조영관 Global Record Committee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