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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팜, 푸드테크관, 원 헬스...공공기관 불치병 ‘외국어 오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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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팜, 푸드테크관, 원 헬스...공공기관 불치병 ‘외국어 오남용’

[고운 우리말, 쉬운 경제 24] 뜻 모를 ‘농식품과학기술대전’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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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축산식품부(장관 김현수, 이하 농식품부)가 지난 9월 8일부터 11일까지 4일간 ‘2021 농식품 과학기술대전’을 온라인으로 개최한다고 보도자료를 냈다.

농식품부 발표에는 뜻 모를 외국어가 수두룩하게 담겼다. 미래 농업의 발전 방향 제시하고 국민 공감대를 확산한다는 취지가 무색하다.
공공기관 ‘영어 오남용’은 고치기 힘든 병이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보도자료까지 내며 공공기관 외국어 남용을 지적해도 소용이 없다.

농식품부는 테마별로 3개 전시관을 소개한다. 이 속에 들어 있는 외국어를 살펴본다.

먼저 ‘스마트 농업관’에는 스마트팜, 그린뉴딜, 모듈형 스마트농장 등이 나온다. ‘스마트’라는 외국어는 공공기관이 애용하는 단어다. ‘지능형’이라고 해석하면 된다. 스마트 팜은 ‘지능형 농장’이다. 그린뉴딜(green new deal)도 농식품부 보도자료에 자주 보인다. 정부 정책브리핑을 통해 “그린뉴딜은 환경과 사람이 중심이 되는 지속 가능한 발전 정책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말로 ‘녹색성장’이라고 하면 쉽게 이해된다. 모듈형 스마트농장에서도 ‘스마트’가 또 나온다. 농장 앞에 스마트를 지능형이라고 바꿔 ‘지능형농장’이라고 하면 되는데 지나치다.

이어 ‘푸드테크관’에서 프로바이오틱스, 3D 푸드 프린터 등 어려운 개념을 만나게 된다.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란 우리말로 ‘유익균’이다. 건강에 도움을 주는 장 속 세균을 총칭하는 말이다. 유익균도 쉽지 않지만 프로바이오틱스는 난감하다. ‘3D 푸드 프린터’는 3D 프린터로 식자재를 찍어내는 기술이다. ‘3D 식자재 프린터’라고 하면 된다.

아예 영어로 써놓은 전시관도 있다. ‘One-Health관’으로 다짜고짜 영어다. 설명에는 인간과 동·식물이 건강하게 공존할 수 있는 미래를 보여준다고 했다. 백과사전은 “원 헬스(One Health)는 사람, 동물, 생태계 사이 연계를 통하여 모두에게 가장 알맞은 건강을 제공하기 위한 다차원 접근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미국에서 나온 개념인데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세계보건의 날을 맞아 보건복지부에서 새로운 건강정책 개념으로 제시해 알려졌다. 이 용어도 ‘원 헬스’라고 쓰고 괄호 안에 (One Health)로 넣는 게 기본 표기 준칙이다. 쉽게 우리말로 다듬기 어려워 연구가 필요하다.

ICT 기반도 마찬가지다. 정보통신기술이라고 한글을 먼저 쓰고 ICT가 괄호 속에 있는 게 맞다. PRRS 생독 백신은 갑자기 뛰어나온 전문 용어다. 돼지 생식기호흡기증후군(PRRS)이라는 설명이 필요하다.
이 밖에 온라인 강연과 행사가 진행된다. 여기에도 이슈, 데이터, 헬스케어 솔루션, 인증샷, 이벤트 등 외국어가 다수 보인다. 이슈는 ‘쟁점’, 데이터는 ‘자료’, 헬스케어는 ‘건강관리’, 솔루션은 ‘해법’ 혹은 ‘해결책’, 인증샷은 ‘인증사진’, 이벤트는 ‘행사’로 순화시킨 고운 우리말들이 있다.

농식품부의 ‘농식품 과학기술대전’ 보도자료를 보고 의문이 든다. 왜 이렇게 어려운 외국어를 많이 썼을까. 행사 취지가 농식품에 대한 ‘국민공감대’ 이끌려고 하는 것인데 어려운 외국어 전문용어를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전문가 만을 위한 행사로 치르려 하거나 외국어를 사용해 잘난척하려는 것이 아닌가.

공공기관 외국어 오남용은 농식품부만이 아니다. 이들 기관들을 위해 국립국어원(원장 소강춘)의 ‘국어기본법’을 살펴보도록 제안한다. 국립국어원 2014년, 2016년에 이어 2019년 발간한 ‘한눈에 알아보는 공공언어 바로 쓰기’ 책자에 들어있다.

국립국어원은 책자를 내놓으며 “이 책이 그동안 되풀이되어 온 관행적인 잘못을 벗어나 좀 더 쉽고 자연스러운 기안문, 보도 자료, 공고문, 안내문의 작성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면 좋겠다”라며, “그럼으로써 공공기관과 국민 사이의 소통이 더 원활해지고 공공기관의 언어가 국민의 언어생활에 본보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감수 : 황인석 경기대 교수


이태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j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