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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이루어진다, 그 희망의 날갯짓…홍선미 안무의 '파랑새,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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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이루어진다, 그 희망의 날갯짓…홍선미 안무의 '파랑새,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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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미 안무의 '파랑새, 날다'
천둥소리 요란하게 치던 날/단짝으로 번쩍대던 번개/여행용 가방이 연처럼 걸린다/콧수염 실룩거리며 낭만시 내뱉던 늙은 악사/뒷골목 포차의 살바도르 달리가 취해있고/젊은 시절을 저당 잡힌 아낙이 훌쩍거린다/아이는 말간 코를 들이밀고 내민다/치통 같은 세상이 파도처럼 넘실댄다/두통 같은 홍수가 밀려들고/변방은 큰비를 지켜낼 여력이 없다/아이들 재잘거림이 유일한 희망이었던 여자/여름밤이 익어 갈수록/토슈즈 손에 걸리는 아픔 너머/선홍을 꿈꾸는 트렁크 소리/밤의 긴장은 파랑새를 키워낸다/아직, 천둥소리 요란하다

무용극의 달인, 홍선미(댄스시어터Nu 대표, SDP 국제페스티벌 예술감독, 삼육대 겸임교수)가 댄스시어터Nu 20회 정기공연으로 서강대 메리홀에서 보여준 <파랑새, 날다>는 닫힌 공간에서 희망을 꿈꾸는 자들을 불러온다. 서사적 제목을 잿빛으로 감싸고 있는 ‘가난한 빈집’이 프리셋으로 설정되고, 서막을 담당하는 발레리나는 꿈꾼다. 제목 속에 주제가 들어 있는 움직임의 두 축은 무용적(나지원)·연극적(이나경) 움직임이다. 이 작품의 노련한 조련자는 안무·연출의 홍선미(현대무용가)와 액팅코치 강애란(전 대전 MBC 성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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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미 안무의 '파랑새,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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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날다>에서 대사는 상황을 설명하고 동시에 춤은 즉각적 조응을 한다. 그 정석적 연기 위에 주변 무용수와 연기자들은 연출의 드라마투르기에 따라 심층적 묘사의 정교함을 반복적으로 능숙하게 가미한다. 무용적 움직임은 발레 동작을 변형시켜 토슈즈의 상징성을 살린 동작이 강조된다. 안무가는 <파랑새, 날다>에서 푸른 색조를 강조한다던가 인위적 의상에 초점을 두지 않고, 아그리한 의상 콘셉트로 자연스럽게 작품에 용해되는 방식으로 현대 사회의 발랄한 청춘 남녀들을 특정화시키는 데 노력한다.

<파랑새, 날다>는 ‘1장 : 홀로 서 있는 무서운 도시 2장 : 일터로 도전, 화려한 도시 3장 : 훨훨 날 수 없는 나’에 걸친 세 개의 장(場)으로 나뉜다. 주제의 감정선을 살리는 방법은 도시를 둘러싸고 힘들게 고군분투하는 젊은이들의 도시개척사, 삶에 대한 ‘나의 투쟁’이 이브 몽탕의 ‘고엽’(Autumn Leaves)을 주제곡으로 사용하여 낭만적으로 펼쳐지며, 궁상을 떨지 않는다. 당당한 전진의 모습을 보인다. 라이브연주자를 거리의 악사로 설정하고 재즈풍의 ‘고엽’과 피아노 라이브 연주로 ‘고엽’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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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미는 작품의 난해함을 쉽게 풀어냄에 있어 남다른 실력을 발휘한다. 공감의 스토리 텔링과 미장센을 구축한다. 연습과 수련을 통해 자신의 실력 향상을 깨닫게 만드는 전문가다. 1장은 화려함에 대한 호기심과 훨훨 날기 위한(돈을 벌기 위한 의지) 마음의 축성이 구축된다. 발레리나는 꿈을 통해 거리의 악사(아저씨)를 만난다. 2장은 역동적인 도시의 모습이 전개되고, 수많은 가방이 꿈을 대변한다. 3장은 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성찰의 장(場)이다. 평범함 속에 놀라운 상급 미학이 숨어있는 형식이다.
홍선미는 혼(魂)을 강조하는 예술가이다. 역사에 대한 깊은 인식, 예술에 대한 일관된 당당한 태도, 쟁취에서 벗어나 있는 초연한 태도에서 나오는 여유는 작품의 진정성을 돋보이게 한다. 그녀의 작품들은 희망과 좌절 속에 고뇌하는 인간상 구축으로 홍선미 무용극의 실존 모습을 보인다. 담대한 그녀의 작품들은 역사적 평가를 받은 신화를 현실에 재현시키고, 인기 도서였던 문학 작품을 현재와 결부시키며, 과거 담론의 주축을 이루고 있던 작품들과 겨루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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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미 안무의 '파랑새,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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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미 안무의 '파랑새, 날다'


지금까지 홍선미의 안무작들은 믿음과 만족감을 주는 독창적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파랑새, 날다>는 개인의 인생을 조망하는 ‘인간의 굴레’를 홍선미식(式)으로 다듬은 빼어난 무용극이다. 이전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역할에 충실하여 두드러진 개성을 보여주었고, 장면 분할이 분명한 섬세함은 작품의 예술성을 드높였다. 구체적인 플롯, 연기자들의 소리와 반복어 활용, 상징적 이야기 등의 연극적 요소가 극성을 강화했다. 이 작품은 예술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갖춘 명작이 되었다.

<파랑새, 날다>는 현황을 타개하고자 하는 연출가의 모든 생각이 적절한 방식과 형식으로 빼곡히 담겨 있다. 활을 에서 연출가 홍선미는 가족들이 원하는 집을 짓기 위해 희생당한 딸이 구사하는 대사(멀리, 높이, 노란 창문, 파란 대문, 하얀 침실, 초록 정원)를 통해 숨겨진 의도와 상징을 풀어낸다. 그녀는 가방 활용이라는 무대 세트 효과와 화려함과 강한 이미지의 시각적 효과를 구사하고 있다. 아울러 그녀가 선호한 조명은 위층과 아래층의 공간 분리 효과를 살리면서, 신비성과 사실적 상황을 대조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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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자는 촘촘히 상징을 식재(植栽)한다. <파랑새, 날다>에서 가방, 하나의 가방이 수많은 돈 가방으로 늘어난다. 가방은 여행을 상징하기도 하고 희생하는 만큼의 양(量)이거나 가족에게 보내는 돈을 의미하기도 한다. 거리의 악사 역을 하는 연주자는 도시를 떠돌다 만난 아저씨이며 주인공이 유일하게 대화할 수 있는 상대이다. 홍선미의 에필로그는 ‘꿈, 이젠 다른 꿈을 꾼다’로 마무리된다. ‘아저씨에게로 돌아가는 꿈’이다. 여기에서 아저씨는 모든 예술을 이해하고 포옹하는 지긋한 나이의 사람들을 뜻한다.

홍선미는 움직임이나 모티브처럼 춤을 대하는 태도나 정신을 중시한다. 그녀가 춤의 경전인 몸을 통해서 성실하고 의미 있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과학적인 태도는 아니다. 예술은 과학적 토대 위에 비과학적 행위를 하는 것이다. 발레리나 꿈은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이루어질 수 없으며, 돌아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행위와 다름없다. 매달린 트렁크 너머 언덕 위 불빛이 밤의 신기루처럼 반짝인다. 토슈즈에 샹송이 어울리면 ‘하이 키 라이트’가 따르고, 듀엣에서 군무로의 변주가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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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미 안무의 '파랑새, 날다'


홍선미는 <파랑새, 날다>로 여름을 열고, 부화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안무작의 독창적 완성미, 기교의 완전성, 우월적 구성미를 고집해 왔다. 그녀는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작품들을 꾸준히 발굴해 왔으며, 개념이 있는 그녀의 직관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그녀는 보편의 진리가 미학원리로서 작동하는 방식을 잘 알고 있다. 한국에서 홍선미처럼 무용극 창조에 적극적이며 예술적 성과를 보여주는 안무가는 드물다. 정기공연 20회 안무작 <파랑새, 날다>는 명품이었으며, 그간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