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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 산책(40)] 전경과 후경을 갖는 연주 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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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 산책(40)] 전경과 후경을 갖는 연주 프레임

올리버 스톤 감독의 「플래툰」(1987)이미지 확대보기
올리버 스톤 감독의 「플래툰」(1987)
“‘런던의 교회’의 종 줄을 당기는 사나이야말로 연주에 취할 자세이다.”라고 스트라빈스키가 말한 것은 작품에 충실한 연주를 뜻한다. 연주는 우아하고 조화로우며 객관성 있는 연주가 전제되어야 하며 멘델스존처럼 전통에 충실하고 고유의 특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현대는 객관성의 범주 내에 피할 수 없는 주관성의 미도 놓치지 않아야 하고 이는 음악미학 상의 흐름이기도 하며 형식미에서 절대음악의 객관성을 주장한 한슬릭(Hanslick, E., 1825~1904)이 바그너, 리스트, 볼프 등을 공경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음악은 연주이지 결코 유희가 아니며 연주가는 음향과 형식의 범위를 넘는 음악적 주제를 구해서는 안 되며 음악 이외의 소재를 갖지 않는다. 작곡가로서 주관적인 체험을 주장하면서 연주에서 객관성을 표명한 이원성이 혼합된 스타일을 가진 음악가도 있다.

베를리오즈와 바그너가 그런 부류에 속한다. 연주자는 본질적으로 주관성을 갖고 악보의 처리는 객관적이어야 하며 작곡가의 판단을 존중한다. 연주는 음을 명확히 내고 말을 분명히 발음하는 음악적 어법인 아티클레이션과 프레이징을 준수하는 객관성이 우선이다.
연주의 주체는 템포, 음의 빛깔, 속도, 음량에 변화를 주는 표현과 강약법 등이 수긍되어야 바른 연주다. 강약법은 기호의 지시가 없으면 셈여림의 관습은 물론 국민적인 양식에도 조치가 필요하다. 음악의 기초는 박자이며 시간 차의 다양성을 통해 저절로 표현된다.
음악과 인간의 맥박은 비슷한데 고동이 사람마다 다르듯 템포의 감정도 일정치 않다. 시간적인 감정도 동양과 서양인, 인종과 시대별로 차이를 나타내는데 플롯의 명수인 크반츠(1697~1773)는 인간의 심장 박동에 비해 현대의 템포 관념은 과속이라고 말한다.

사회생활의 다변화는 속도감의 변화이다. 작곡된 시대의 속도를 표준화하기보다 그 당시에 어떤 속도감인지에 비중을 둬야 한다. 시대적인 음악상의 풍토와 관습을 중시하며 다소의 ‘점점 느리게, 와 ’점점 빠르게‘는 필요한 요소다.

과감한 템포 수정과 한 악기의 속도를 자유롭게 가감한 ‘템포 루바토’는 과거·현재에도 유행된다. 멜로디를 가수의 재량대로 속도 변화를 주는 것은 연주자의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예술적 기량이며 쇼팽은 완전한 템포변화를 통해 개성 있는 예정성을 드러낸다.
손재주만 부리는 연주가는 감상주의와 지나친 정감에 흘러 잘못을 범한다. 과장된 연주는 금물이며 정교하고 균형을 견지하는 루바토식 연주가 바람직하다. 유럽의 최고 지휘자, 오란다의 멩겔베르크(1871~1951)는 스케일이 대단한 명연주가이다.

그는 유럽음악의 전통을 고수하고 악보를 재현하는 것을 넘어 작품의 미적 효과와 작곡가의 표현 의도를 섬세히 파헤친다. 청중에게 감명을 주며 악곡의 극적 구성의 테두리를 헐지 않고 곡의 변화를 대담하게 전달한다.

20세기 최대 지휘자, 토스카니니(1867~1957)는 악곡이 지닌 ‘음악의 미’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며 작곡가의 의도를 존중했고 곡을 단지 소재로서 취급하거나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일은 전혀 하지 않았다. 곡의 내면성을 직시하고 아름다움만 표현하였다.

연주법에서 솔직한 태도는 즉물적이다. 음악가로서 바른 속도감이나 기교의 능숙함은 필연적 요소다. 악보에서 출발하여 악보로 돌아가는 것은 작품의 적응도가 뛰어나서이다. 악보대로만 아니라 보통의 개념과 다른 형태로 해석하는 연주가는 주관적 측면이 강하다.
사무엘 바버(1910~1981)는 작품을 충실히 재현할 때, 낭만적이고 자유스러운 환상미를 창출한디고 한다. 자유스런 상상력과 심향의 각도를 파악한 연주는 숙달된 훈련이 요구되며 고차원의 세계를 구현해내는 길이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플래툰」(1987)이 그 실례다.


정순영 음악평론가 겸 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