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5월 28일(목) 19시,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풀뿌리문화연구소(대표 강신구) 주최의 ‘한국예인열전 실록편’은 전통예술의 계보와 예인의 삶을 조명하는 뜻깊은 무대로 펼쳐졌다. 서영님(Suh Young Nim)의 '구고무'(이숙향류)는 실록열전 제2부의 대미를 장식하며, 71년에 걸친 춤 인생이 응축된 예술적 사유와 정서를 드러냈다. 아홉 개의 걸림 북을 두고 펼친 춤사위는 공간과 시간의 층위를 교차시키며 의례적 숭고미와 내면적 서정을 동시에 표출하였다. 절제된 움직임과 장단의 긴장감은 전통의 원형을 현대적 감각으로 환기하며, 한국 춤 미학의 심층적 가치를 부각시켰다. 이 작품은 이음의 가치를 증명해 내며, 서영님의 레퍼토리 가운데서도 독보적인 미적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구고무'(이숙향류)는 1950년대 주만향 선생에게서 비롯되어 김문숙 선생에 이르렀고, 김문숙 선생의 구고무를 이숙향 선생이 전수받아 현재 서영님으로 거듭나는 계보를 갖고 있다. '서영님의 춤, 그 향기'(2005)로 무대화된 작품은 아홉 개의 북의 리듬의 장(場) 안에서 역동적 기(氣)와 신명의 미학을 구현한다. 북 사이를 가르며 전개되는 춤사위는 공간의 긴장과 확장을 유도하며, 생동하는 움직임의 조형미를 극대화한다. 압권은 흑 장삼을 벗어 던진 뒤 북치는 장면, 존재의 속박을 벗고 새 경지로 나아가는 의식적 전환의 순간이다. '구고무'는 번뇌와 해탈, 고통과 초월이라는 상반된 가치들을 하나의 몸짓 언어로 통합하며, 인간 존재의 심연과 예술적 구원의 가능성을 장엄하게 형상화한다.
'구고무'는 이동과 제작 여건의 제약으로 자주 공연하기 어렵지만, 그러한 희소성이 서영님 예술세계의 정수를 담아낸 대표 레퍼토리로서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한다. 이 작품은 '구고무'만이 지닌 역동적 에너지와 유연한 춤결, 신명 넘치는 흥취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며 무대의 긴장감과 몰입도를 극대화한다. 특히 타고(打鼓)의 행위는 인간 삶의 희로애락과 사계절의 순환을 은유적으로 담아내며 서사적 깊이를 형성한다. 공연이 진행될수록 작품에 내재한 철학적 사유는 자연스럽게 정서적 공감으로 전환되고, 관객은 춤과 장단이 구축하는 감각적 울림 속으로 깊이 이입하게 된다. 서영님의 '구고무'는 냉정한 이성과 열정의 신앙을 하나의 범주 속에서 운용하는 진전의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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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서영님은 예원중(예원학교 전신), 서울예고, 이화여대 무용과 및 대학원을 거쳐, 세종대에서 무용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학문과 실기를 아우르는 수련 과정을 구축해 왔다. 이런 학구적 기반은 전통춤의 미학을 탐구하는 예술세계로 확장되는 토대가 되었다. ‘살풀이춤’ 이수자인 그녀는 은방초 춤의 예술적 가치와 전승 체계에 관한 연구를 지속해 왔다. 또한 서울예고 교장,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이사, 관성묘유지재단 이사장 등 다양한 문화예술 현장에서 교육자, 행정가로 활동하며 전통예술의 사회적 지평을 넓혀왔다. 나아가 님무용예술원과 은방초춤보존회를 중심으로 전승과 창조의 균형을 모색하는 그녀의 행보는 한국춤의 계보를 현재적 감각으로 계승·발전시키는 모범적 사례로 평가된다.
서영님은 근대 춤 유산인 조용자류 장구춤 복원 사업과 '서영님의 춤, 그 향기'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예술적 행보는 전통의 본질을 성찰하고 동시대적 의미를 부여하는 미학적 실천이다. '구고무'의 예술적 흐름을 함께 구축한 고수 박종훈은 장단의 구조와 호흡을 섬세하게 조율하며 작품의 내적 긴장과 에너지를 극대화하였다. 그는 제39회 전국고수대회 대명고수부 대상(대통령상)과 제16회 공주 박동진명창·명고대회 명고부 대상(국무총리상)을 수상한 바 있는 당대 대표적 고수로서, 탁월한 기량과 음악적 깊이를 인정받고 있다. 박종훈의 연주는 서영님의 춤과 긴밀한 예술적 교감을 이루며, 춤과 음악이 하나의 유기적 미학으로 완성되는 전통공연예술의 이상적 면모를 보여주었다.
서영님의 '구고무'(2026)는 춤의 미학적 성취와 정신적 깊이가 응축된 레퍼토리로서 서영님 춤 백과사전에서 수위를 차지한다. 춤과 연주가 하나 되어 유기적 구조를 이루며, 북소리는 언어를 대신하는 서사적 매개체이며, 몸짓은 소리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확장한다. 바라의 청명한 울림은 잠재된 의식을 일깨우고, 목탁의 진동은 수행적 시간성을 형성한다. '구고무'는 전통 형식미가 바탕이지만, 다층적 해석과 연상의 가능성을 열어두어 한국춤이 지닌 확장성과 현대적 수용의 지평을 제시한다. ‘구고무’를 통해 화평을 추구하고 정형의 미적가치를 추구하는 자세는 존중의 대상이 된다. 서영님의 ‘구고무’는 어지러운 세상에 경전 같은 믿음을 주는 의미 있는 춤이 되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님무용예술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