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최홍규 미디어학 박사/EBS 연구위원
아이가 태어나 가장 먼저 배우는 언어는 말이 아니라 촉감이다. 부드럽다는 것도, 차갑다는 것도, 아이는 손으로 먼저 알아간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그 손이 닿기도 전에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화면이 먼저 답을 보여준다.
지금의 화면은 예전 텔레비전과 다르다. 아이가 좋아할 만한 영상을 알고리즘이 골라 보여주고,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기만 해도 캐릭터가 바로 반응한다. 최신 육아 앱들은 아이가 무엇을 궁금해할지 미리 헤아려 답을 건네기도 한다. 이렇게 똑똑해진 화면일수록 아이가 스스로 만지고, 느끼고, 알아내는 시간은 그만큼 줄어든다. 색은 이미 선명하게 준비돼 있고, 소리는 이미 완성되어 나오며, 반응은 아이가 손을 뻗기도 전에 돌아온다. 나무토막의 결을 손끝으로 훑어보고, 낯선 표면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는 시간. 화면에는 이 머뭇거림이 없다. 그런데 이 머뭇거림이야말로 아이의 감각이 자라나는 시간이다.
이 질문을 실제로 확인해본 연구가 있다. 스위스 제네바대학교(University of Geneva) 심리학과 연구팀이 2024년 8월, 생후 6개월에서 36개월 사이 아기 135명을 대상으로 촉각 탐색 능력을 살폈다. 그중 6개월에서 24개월 사이 아기 74명에게는 나무 딸랑이, 손목에 거는 봉제 인형, 플라스틱 열쇠 꾸러미 세 가지를 아기 앞에 그냥 놓아두고 아무 지시도 하지 않은 채 지켜보는 놀이를 시켰다. 135명 전체에게는 여섯 개 면이 저마다 다른 촉감과 장치로 돼 있는 정육면체 장난감을 쥐여주는 놀이도 함께 시켰다. 어떤 면은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며 소리가 났고, 어떤 면은 만지는 것만으로 결이 그대로 느껴졌으며, 또 어떤 면은 손가락을 작은 구멍에 넣고 다이얼을 돌려야만 반응이 오는, 유독 정교한 손끝의 힘을 요구하는 면이었다.
두 놀이에서 확인된 결과는 이랬다. 세 가지 물건을 가지고 노는 모습에서, 화면을 더 오래 접한 19개월에서 24개월 사이 아기들은 흔드는 손짓을 유독 자주 반복했고, 던지는 손짓도 그런 경향을 보였다. 원래 더 어린 월령의 아기들이 주로 보이는 방식이다. 반대로 평소 조작 놀이나 바깥 놀이 같은 활동을 다양하게 경험한 아기일수록 물건을 누르고 돌려보는 손짓을 더 자주 했다. 정육면체 놀이에서는, 아직 화면을 한 번도 접하지 않은 6개월에서 18개월 아기들이 가장 까다로운 면-손가락을 구멍에 넣고 다이얼을 돌려야 하는 면-을 화면을 이미 접한 또래보다 훨씬 오래 붙들고 있었다. 어려운 감각일수록 더 오래 매달려 알아내려 한 것이다.
같은 연구팀이 2025년 4월에 내놓은 또 다른 연구는 손의 움직임이 아니라 감각 그 자체를 들여다봤다. 이번에는 미국의 작업치료학자 위니 던이 만든 설문지를 썼다. 아이가 일상에서 소리나 촉감, 움직임 같은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부모가 54개 문항에 답하는 방식이다. "다른 또래보다 쉽게 놀라는가", "거칠거나 차가운 표면을 피하는가" 같은 질문들이다. 연구팀은 이 설문으로 부모 159명에게 물어 아이들의 감각 반응을 네 가지 갈래로 나누어 살폈다. 자극에 얼마나 빠르고 강하게 반응하는지를 보는 항목(sensitivity), 자극을 얼마나 쉽게 알아차리는지를 보는 항목(registration), 자극을 얼마나 적극 찾아 나서는지를 보는 항목(seeking), 그리고 자극을 얼마나 피하려 하는지를 보는 항목(avoiding) 등이었다.
결과는 나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 아기들 가운데 화면을 더 많이 접한 쪽은, 어떤 자극에는 유난히 빠르고 강하게 반응하면서도 정작 주변에서 일어나는 다른 자극은 잘 알아차리지 못했다. 반응은 튀는데 관심은 흩어져 있는 셈이다. 19개월을 넘어선 아기들에게서는 다른 모습이 보였다. 화면 노출이 많을수록 새로운 자극을 끊임없이 찾아 나서는 성향(seeking)이 더 뚜렷했다. 연구팀은 이런 성향이 강한 아이들이 흔히 가만히 있지 못하고 위험을 미리 헤아리는 데 서툴다는 기존 연구 결과를 함께 짚으며, 평범한 놀이터나 거실이 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채우기엔 부족해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 결과들이 화면이 아이의 감각을 망가뜨린다고 단정 짓는 근거는 아니다. 두 연구 모두 화면에 많이 노출된 아기들에게서 특정한 경향이 함께 나타난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 그 인과관계까지 증명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손의 움직임을 관찰한 2024년 8월 연구와 감각 반응을 물은 2025년 4월 연구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는데도 비슷한 결을 보였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화면에 자주 노출된 아기일수록 손은 더 어린 시절의 방식에 머물러 있었고, 감각은 어딘가 한쪽으로 쏠려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노출된 화면은 아직 사람이 만든 콘텐츠를 그대로 재생하는 화면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화면 뒤에 아이의 표정과 반응을 읽어내는 AI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아이가 심심해할 만하면 먼저 다음 영상을 골라주고, 아이의 옹알이나 손짓에 맞춰 화면 속 캐릭터가 즉각 반응을 바꾼다. 예전의 화면이 일방적으로 자극을 쏟아내는 존재였다면, AI가 얹힌 화면은 아이 한 명 한 명의 감각 문턱을 학습해 그 아이에게 꼭 맞는 자극을 계산해서 건네는 존재다. 아이가 지루해하기 직전에 새로운 자극이 도착하고, 아이가 놀라기 직전에 반응의 강도가 조절된다. 이 정교함이야말로 지금 부모들이 진짜로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손으로 만지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그 느린 과정은, 애초에 정답도 없고 완벽하게 예측할 수도 없기에 아이의 것이 된다. 반면 AI가 아이의 반응을 미리 읽고 그에 맞춰 자극을 조율해줄수록 아이는 세상과 부딪쳐 스스로 알아내는 경험 대신 이미 자기에게 맞춰진 자극을 받아들이는 경험만 쌓아가게 된다. 그렇게 자란 감각은 얼핏 풍부해 보여도, 실은 아이 자신의 손과 눈이 세운 기준이 아니라 기계가 대신 세워준 기준일 뿐이다. 이름이 붙기도 전에 감각의 틀 자체를 남에게 내어주는 셈이다.
그러니 지금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AI를 밀어내는 일이 아니라 AI가 대신할 수 없는 자리를 분명히 지키는 일이다. 아이가 미지의 질감 앞에서 잠시 머뭇거릴 때, 그 머뭇거림을 정교한 알고리즘이 서둘러 채워주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것. 대신 그 시간만큼은 아이 곁에서 나무토막을, 흙을, 낯선 표면을 함께 만져보는 것. AI가 무엇이든 더 빠르고 더 맞춤하게 건네줄 수 있는 시대일수록 아이에게 마지막까지 남겨줘야 할 것은 스스로 손끝으로 세상을 확인하는 그 느린 시간이다.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연구위원

































